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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수 : 2875
2013.10.14 (14:48:14)

사도행전 Tins 8.hwp

 

사도행전 Tins 8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

오늘의 말씀: (개역/NKJV) 5:17-32

17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 즉 사두개인의 당파가 다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 일어나서 18 사도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더니 19 주의 사자가 밤에 옥문을 열고 끌어내어 가로되 20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하매 21 저희가 듣고 새벽에 성전에 들어가서 가르치더니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와서 공회와 이스라엘 족속의 원로들을 다 모으고 사람을 옥에 보내어 사도들을 잡아오라 하니 22 관속들이 가서 옥에서 사도들을 보지 못하고 돌아와 말하여 23 가로되 우리가 보니 옥은 든든하게 잠기고 지킨 사람들이 문에 섰으되 문을 열고 본즉 그 안에는 한 사람도 없더이다 하니 24 성전 맡은 자와 제사장들이 이 말을 듣고 의혹하여 이 일이 어찌 될까 하더니 25 사람이 와서 고하되 보소서 옥에 가두었던 사람들이 성전에 서서 백성을 가르치더이다 하니 26 성전 맡은 자가 관속들과 같이 가서 저희를 잡아왔으나 강제로 못함은 백성들이 돌로 칠까 두려워함이러라 27 저희를 끌어다가 공회 앞에 세우니 대제사장이 물어 28 가로되 우리가 이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하였으되 너희가 너희 교를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니 이 사람의 피를 우리에게로 돌리고자 함이로다 29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30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31 이스라엘로 회개케 하사 죄 사함을 얻게 하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를 삼으셨느니라 32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17 Then the high priest rose up, and all those who were with him (which is the sect of the Sadducees), and they were filled with indignation, 18 and laid their hands on the apostles and put them in the common prison. 19 But at night an angel of the Lord opened the prison doors and brought them out, and said, 20 "Go, stand in the temple and speak to the people all the words of this life." 21 And when they heard that, they entered the temple early in the morning and taught. But the high priest and those with him came and called the council together, with all the elders of the children of Israel, and sent to the prison to have them brought. 22 But when the officers came and did not find them in the prison, they returned and reported, 23 saying, "Indeed we found the prison shut securely, and the guards standing outside before the doors; but when we opened them, we found no one inside!" 24 Now when the high priest, the captain of the temple, and the chief priests heard these things, they wondered what the outcome would be. 25 So one came and told them, saying, "Look, the men whom you put in prison are standing in the temple and teaching the people!" 26 Then the captain went with the officers and brought them without violence, for they feared the people, lest they should be stoned. 27 And when they had brought them, they set them before the council. And the high priest asked them, 28 saying, "Did we not strictly command you not to teach in this name? And look, you have filled Jerusalem with your doctrine, and intend to bring this Man's blood on us!" 29 But Peter and the other apostles answered and said: "We ought to obey God rather than men. 30 "The God of our fathers raised up Jesus whom you murdered by hanging on a tree. 31 "Him God has exalted to His right hand to be Prince and Savior, to give repentance to Israel and forgiveness of sins. 32 "And we are His witnesses to these things, and so also is the Holy Spirit whom God has given to those who obey H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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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낱말(중요하게 생각되어지는 낱말을 3개 이상 적어보세요.)

문단나누기 / 말씀의 주제 정하기

 

묵상을 위한 질문과 말씀나눔(TINS) (각자 질문을 하나씩 만들어보세요.)

 

들어가는 이야기 - 윗 사람의 말에 순종을 잘 하는 편인가요? 어릴 적부터 순종의 습관을 갖도록 훈련 받는 것이 중요할까요?

1.

2. 대제사장과 사두개인들이 사도들을 핍박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이 지금도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 원인이 될 수 있을까요?(5:17; 1:10-11)

 

부활을 믿지 않는 사두개인들이 사도들이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을 선포하는 것을 들었을 때에 그들은 만일 사도들이 부활한 구주를 전파하고, 예수의 이름으로 이적을 행하도록 내버려둔다면 부활이 없다는 그들의 교리는 모든 사람에게 거절당할 것이며, 머지 않아 사두개 교파는 멸절되리라는 사실을 깨닫고 분노하였다. 한편 바리새인들도 제자들의 가르침이 유대 의식들의 기초를 위태롭게 하고 희생 제사를 무효화시키는 경향이 있음을 깨닫고 분노하였다. 지금까지 이 새로운 가르침을 억누르고자 한 모든 노력이 실패했으나, 이제 사두개인과 바리새인 양편이 제자들의 사업을 중단시키기로 결심하였다. 왜냐하면 그것이 예수를 죽인 죄가 그들에게 있다고 증거하기 때문이었다. 격분한 제사장들은 베드로와 요한을 잡아 옥에 가두었다.”(행적, 78)

 

3. 하나님께서 고난당하는 종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천사들을 보내셔서 옥에 갖힌 사도들을 기적적으로 구출하고, 또 핍박당할 수 있는데도 다시 그들에게 가서 성전에 서서 생명의 말씀을 전하라 명한 이유는 무엇일까요?(5:20)

능력 있는 우주의 통치자인 하늘의 하나님께서는 제자들이 투옥당한 문제를 직접 해결하셨는데, 이는 인간들이 당신의 사업에 대항하여 싸우고 있는 까닭이었다. 밤에 주의 천사가 옥문들을 열고 사도들에게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하였다. 이 명령은 유대 통치자들의 명령과는 정반대였다. 그렇지만 사도들은 그들이 관원들과 의논하여 그들의 허락을 받기까지는 그리할 수 없노라고 대답했는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셨으니 그들은 순종하였다. “저희가 새벽에 성전에 들어가서 가르쳤다.”(행적, 79-80)

 

4. 위협과 고난 중에서도 사도들이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하는 그런 믿음의 담대함은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요?(5:29)

 

과거에 그리스도를 위하여 핍박을 견딘 사람들의 힘은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하나님과 성령과 그리스도와의 연합이었다. ”(행적, 85)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순종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자들은 반대와 조롱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오직 하나님 안에서 견딜 수 있다. 그들은 그들 앞에 있는 시련을 견디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을 이해해야 한다. 오직 그들이 하나님의 성품과 통치와 목적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거기에 일치되도록 행동할 때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 성경의 진리로 마음을 견고히 방어한 자들 외에는 아무도 최후의 대쟁투를 견디지 못할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는 나는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할 것인가하는 시험이 이르러 올 것이다. 결정의 시간은 이제 박두해 있다. 우리의 발은 하나님의 변함없는 말씀의 반석 위에 굳게 서 있는가?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믿음의 보호 아래 굳게 설 준비를 갖추고 있는가?”(쟁투, 593)

 

 

내 삶에 적용

1.

2.

기억할 성구 정하기 (절이나 구 단위로 기억할 성구를 기록하기)

 

 

기도제목과 기도

1.

2.

3.

 

나눔 대상 (문자, 전화로 어떤 친구에게 말씀 나눌 것인가 결정하기 / 밴드나 카톡에 감동 나누기).

 

 

 

 

내가 시련과 고난 중에서 하나님께 기도드릴 때 하나님께서 지금도 즉각적으로 도움을 주실 것을 믿으시나요?

여호와를 의뢰하는 자는 시온산이 요동치 아니하고 영원히 있음 같도다

산들이 예루살렘을 두름과 같이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두르시리로다

저희 생명을 압박과 강포에서 구속하리니 저희 피가 그 목전에 귀하리로다

(125:1, 2; 72:14).

 

마치는 이야기

1812년 인도 선교 비전을 품은 아드니람 저드슨(Adoniram Judson)이 인도에서 선교사로 봉사하는 윌리암 캐리를 찾아갔다. 세 차례나 살해당할 뻔하였고, 인도 정부의 갖은 방해와 수고와 땀으로 이룩해 놓은 원고와 인쇄 도구들이 화재로 불타버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열정이 식지 않는 캐리 선교사는 그를 안내하여 정원의 한 편 구석으로 데리고 갔다.

여기가 바로 나의 예배 장소이자 기도와 묵상의 자리입니다. 이 자리가 없었다면 나는 계속되는 고난을 이겨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나는 매일 5시에 이 자리에 와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지으신 꽃들을 바라보며 묵상을 하고 이야기합니다. 6시경에 들어가 아침을 먹고 하루 일과를 시작합니다. 저녁이 되면 밥을 먹고 나서 손에 성경을 들고 다시 이 자리로 옵니다

젊은 저드슨은 후에 미얀마로 가서 헌신적인 선교사로 일하게 되었다.

 

 

우리 모두의 생애 속에는 하나님께서 주신 하나의 목적과 하나의 사업이 있다. 행동 하나 하나에는 그것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우리 삶의 체험 속에 한 자리를 차지한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계속적인 빛과 체험을 반드시 가져야 한다. 우리 모두는 빛과 체험이 필요하거니와 만일, 우리가 그것들을 취할 것 같으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마땅히 가져야 할 것보다 더 많이 주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우리 기도에 대한 하늘의 창문을 닫지 않으셨다.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도 역경을 통과할 수 있다고 자신 만만해 하는 이들이 있는데 이들에게는 더욱더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하다.”(높임, 176)

 

 

 

 

 

 

 

 

아무리 신실한 신자로 보이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계속적인 도움 없이는 사단이 하나님을 모욕하기 위해 준비해 놓은 죄에 빠질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신자라고 주장하는 모든 사람들은 우리가 사랑이 포함되고 영혼을 정결케 해주는 믿음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구원의 즐거움을 마음껏 누릴 때만 죄인을 회개시키고 소생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참다운 신자란 진리를 인정할 뿐 아니라 이를 믿고 실전하며 하나님과 함께 거하며 실족하지 않는 사람을 두고 말합니다.”(하늘, 206)

 

 

5:17-32 SDA 성경 주석

17. [그때]. (개역한글판에는 이 단어가 나타나지 않음역자 주). “그러나.” 고침을 받기 위하여 제자들에게 모여드는 군중과, 제자들에게 두 번째 핍박을 가하려고 준비하는 대제사장 사이의 대조를 가리킨다.

대제사장. 안나스(참조 4:6 주석).

그와 함께 있는 사람. 아마도 4:6에 사용된 표현, 대제사장의 문중이 다라는 표현보다 훨씬 더 포괄적인 표현이다(참조 4:6 주석). 반대파는 더 큰 세력들을 끌어 모을 시간이 있었다.

당파. 헬라어 하이레시스(hairesis). “선택”, “의견을 뜻하며, 의미를 좀 더 넓히면, “당파또는 파벌을 의미한다. 이것은 이설”(heresy)이라는 단어로 영어에 흘러들어 갔지만, 교회 당국자들이 얼마 안 있어 그 단어에 부여한 달갑지 않은 의미를 원래부터 갖고 있지는 않았다. 15:526:5에서 하이레시스를 바리새인들에게 적용했지만, 경멸하는 의미로 사용하지는 않았다. 24:528:22에서 그것을 나사렛파(그리스도인들)에게 적용했고, 경멸조로 사용되었다.

시기. 헬라어 젤로스(ze-los). “열성.” 그리고 나쁜 의미로는, 여기에서처럼 질투혹은 시기.” 두 의미 중 어떤 것도 여기에 적용될 수 있다. 여기에 강력한 당파적 감정의 강력한 표출이 있었다. 나사렛파 추종자들이 무언가 일을 낼 것이라는 염려가 있었다.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 모두 이런 느낌을 경험했을 것이다. 교육받지 못한 사도들이 주제넘게 사람들을 가르치고 있었기 때문에 적개심이 일어났다.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 모두 이런 적개심을 느꼈다. 사두개인들이 특별히 적대감을 느꼈는데, 왜냐하면 사도들은 사두개인들이 배척했던 신념, 즉 내세가 있다고 가르쳤기 때문이다. 이 사항에서 바리새인들이 사도들과 의견을 같이 했다는 사실이 사두개인들을 불쾌하게 만들었다(참조 제10, 56~59).

 

18. 잡아다가. 사두개파 당국자들이 철저하게 분기하였으며, 사도들-아마도 열두 제자 모두-이 체포되었다. 이것은 비록 누가가 일반적으로 베드로의 설교만 언급하고, 요한의 활동을 약간만 언급하긴 하지만, 나머지 사도들이 공적으로 활발하게 활동해왔다는 사실을 분명히 해 준다.

옥에. 헬라어 엔 테레세이 데모시아(en te--re-sei de-mosia). “공적으로 감옥에혹은 공공의 감옥에로도 번역할 수 있다. 후기에, 랍비들이 데모시아라는 단어를 으로 사용한 사실은 후자의 번역이 더 나음을 보여 준다.

 

19. [그러나]. (개역한글판에는 이 단어가 나타나지 않음역자 주). 18절과의 대조를 강조한 것임. 당국자들은 사도들을 투옥하고 천사는 그들을 풀어주었다. 이것은 마치 천사도 없고 영도 없다”(23:8)라고 가르치는 사두개인들의 행동에 대한 하나님의 항의처럼 보인다.

사자. 누가 자신이 초자연적 사건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을 기록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런 견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도 여전히 이 이야기의 역사성을 유지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사자는 열성적이고 용기 있는 몇몇 제자이고, 사도들은 밤의 어둠과 구출로 인한 흥분 때문에 이 일이 천사의 개입으로 일어난 것으로 잘못 생각했다고 제시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기적적인 구출이란 용어 외의 다른 말로 누가의 말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길은 전혀 없다. 나중에 주어진 가말리엘의 인간적 도움이 거리낌없이 자유롭게 그리고 공개적으로 기록되었다(34~39). 그러나 여기서 그 도움은 초자연적인 것으로 숨김없이 기술되었다. 사도들은 몇 시간 뒤에 다시 체포되었지만(26) 하나님은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셨고, 사도들은 그들을 위한 하늘의 개입으로 인해 위로를 받았으며, 사두개인들은 자신들이 초자연적 권세자들과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기회를 얻었다. 정녕 천사들은 부리는 영으로 구원얻을 후사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1:14)졌다.

밤에. 정확히 말해서 밤중에.”

옥문을 열고. 아무리 단단히 잠근 옥문이라도 하나님의 천사들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도들은 깊은 어둠을 틈타서였든지 아니면 보초들의 눈이 감겨있었기 때문이었든지 간에, 수직하는 자들의 바로 눈앞에서 구출받았다(참조 12:6, 7). 문들은 단단히 잠기거나 다시 자물쇠가 단단히 채워져서, 모든 것은 천사가 오기 전처럼 원상 회복되었다.

 

20. 서서. 이 말에 내포된 사상은, 성전이 가장 공적인 장소였기 때문에 그들은 공개적으로 담대하게 자신들을 드러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곳에서 그들은 처음 체포되었다(3:1, 11; 4:1~3).

이 생명의 말씀. 형용사 는 의미심장하다. 이것은 사도들이 옹호하는 생명, 즉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을 일컫는다. 이 생명은 현 세상에서 시작되어 계속되다가 영원까지 이어진다(참조 요 17:3). 이 가르침을 특별히 사두개인들은 받아들일 수 없었는데, 왜냐하면 그들은 내세를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참조 제10, 58.

 

21. 저희가 듣고. 사도들의 즉각적인 순종을 주목하라.

새벽에. 동틀 무렵.” (제임스왕역에는 이른 아침에”[early in the morning]로 되어 있음역자 주). 미쉬나는, 하늘이 밝아지자마자 아침에 성전에서 희생제사가 드려지기 시작했다고 지적한다(Yoma, 3. 1, Soncino ed. of the Talmud, p. 131; Tamid, 3. 2, Soncino ed. of the Talmud,18).

가르치더니. 사두개인들이 공회에서 사도들에게 하지 말라고 한 일이다(4:17, 18). 이 오만한 관원들은 훈련받지 못하고 권위를 부여받지 못한 갈릴리 사람들이 가르치고 있는 것과 부활을 가르치고 있다는 것과 십자가에 못박혔다가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한 분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사실로 인해 격노하였다. 그러나 사도들은 하나님의 명을 받아 그렇게 하고 있었다. 교회는 가르치는 사명, 죄로 병든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제시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다. 이 과업을 교회는 절대로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대제사장와서. 즉 옥에 갇힌 사도들을 어떻게 처리할지 결정하기 위하여 공회당 안으로 와서. 공회는 아직 그들이 불가사의하게 탈옥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공회. 즉 산헤드린(참조 제10, 75, 76). 그들 앞에 놓인 사안이 너무 중요했기 때문에 되도록 전 회원을 다 모으는 일에 전력을 기울였다. 가말리엘이 임석했다는 사실은 사두개인뿐 아니라 바리새인과 다른 사람들도 이 모임에 참석하도록 소환되었음을 가리킨다(참조 34).

원로. 헬라어 게루시아(gerousia). 스파르타의 원로회의 혹은 장로들의 회집. 이 단어는 예루살렘에 있는 산헤드린을 지칭하기 위해 사용되었다(참조 제10, 75, 76). 여기서 이것은 특별한 경우들에 조언을 줄 만큼 연륜과 경험이 갖추어진 장로들의 공식적인 그룹. 이것은 22:5모든 장로들에 해당되는 회집이었을 것이다.

. 헬라어 데스모테리온(desmo-te-rion). “묶인 사람들을 가두어둔 장소.” 이것은 18절에 사용된 것과 다른 낱말이며, 아마도 사도들이 체포된 후 곧 결박당했음을 암시한다.

 

22. 관속들. 헬라어 휘페레타이(hupe-retai). 문자적으로 노예선의 ()조타수”(underrowers). 후에는 종들”, 그 후에는 산헤드린을 섬기는 관속들을 의미했다. 참조 눅 4:20; 4:1 주석.

보지 못하고. 그들이 탈옥했다는 아무런 외적 증거도 없었다(19, 23절 주석).

 

23. 우리가 보니잠기고. 만약 천사가 문들의 자물쇠를 열었다면, 그는 사도들을 자유의 몸이 되게 한 후에 다시 잠갔을 것이다. 문에 있던 경비병들은 죄수들이 도망한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베드로의 탈옥(12:6~10)과 비교하라. 또한 빌립보에서 겪은 바울과 실라의 열정적이며 극적인 경험(16:25~30)과 대조하라.

 

24. [대제사장]. 본문상의 증거(참조 20)는 이 단어를 생략하는 것을 지지한다(제임스왕역에는 이 단어가 나타나 있음역자 주).

제사장들. 아마도 제사장들의 14반열의 우두머리들이며, 대제사장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이 일. 정확히 말해서 이 말들로서, 경비병들이 돌아와서 한 보고를 가리킨다.

의혹하여. 정확히 말해서 당혹하여”, “어쩔 줄 몰라하며.” 그렇게 할 이유가 없지 않았다. 억눌러 버리려고 했던 유대 지도자들의 노력은 실패했으며, 그들이 체포했던 자들이 기적으로 풀려났으며 또한 그리스도인 도가 세력을 넓히고 있었다.

 

25. 사람이 와서. 아침이 상당히 지나간 때임이 틀림없다. 산헤드린이 소집되어 함께 모였으나 사도들의 행방은 여전히 묘연하였다. 그러는 동안 사도들이 활약하는 소식이 널리 퍼져나갔고 이제 산헤드린에 보고되었다.

옥에 가두었던 사람들이. 이 보고는 유대 지도자들에게는 거의 일종의 모욕처럼 들렸다. 즉 당신들이 그들을 옥에 가두었지만, 지금 그들은 어떤 곳에서도 하지 말라고 당신들이 금지시켰던 그 일을 성전에서 하느라 분주합니다.

서서. 문자적으로 성전 안에서 서서 가르치고.” 이것은 그렇게 하라는 천사의 명령을 가리킨다(20). 그들은 자신들이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아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그 일은 일시적으로 방해를 받았지만, 그들은 되도록 빨리 그 일에 복귀했다. 그들이 사람들을 가르친 일은 사두개인들을 격노하게 만든 행위였다. 사도들이 그저 예배드리고, 새로 발견한 신앙을 고이 간직하고만 있었다면, 그들은 평안하게 지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사명을 위임받았으며, 그것을 수행하도록 재촉받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신앙을 널리 선전해야 했다. 신앙의 보배를 나누어 주다가 핍박받는 것이 그것을 말 아래”(5:15) 감추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것보다 훨씬 낫다.

 

26. 성전 맡은 자가 관속들과 같이. 참조 4:1; 5:22 주석.

강제로 못함은. 사도들은 민심이 확실히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쏠려 있어서 대중의 소요를 쉽게 일으킬 수 있었지만, 저항하지 않고 묵묵히 순종하는 본을 보여 주었다. 최근에 그들을 통하여 행해진 기적들과 그들의 이상적 공동체 생활로 인하여 새로운 신앙은 사람들의 호의를 얻었다. 그들은 무저항의 태도를 견지함으로써 주님의 본을 좇았다. 산헤드린 앞에 평화롭게 나아옴으로써 그들은 결코 구원하는 기별을 들을 수 없었을 사람들의 귀에 복음을 선포할 절호의 기회를 얻었다.

백성들[]두려워함이러라. 21:26, 46 주석과 비교하라. 사람들이 그 당시 믿는 사람들에게 호감을 갖고 있었다는 증거는 많다.

 

돌로 칠까. 제사장들이 사도들에게 돌을 던질 태세가 되어 있듯이, 분명히 사람들은 관원들에게 돌을 던질 태세가 되어 있었다.

 

27. 대제사장이 물어. 기록된 것만으로 판단해 보건대, 산헤드린은 사도들의 탈옥 문제를 회피하였다. 그들은 이 경우에 초자연적 개입이 있었다고 믿지 않았거나 그것에 관하여 언급하는 것을 반대하였거나 둘 중의 하나이다. 이러한 태도는 놀라운 것이 아니다. 이는 그들은 그보다 더 큰 기적, 즉 그들이 못박은 분의 부활을 믿기를 이미 거절했기 때문이다.

 

28. 우리가엄금하였으되. 본문상의 증거(참조 20)우리가 명령으로써 명하였으되라는 독법을 지지한다. 이 표현은 흔한 히브리 관용어의 반영이며, 누가가 원래 아람어로 되어 있는 질문을 문자적으로 번역했을 것임을 암시한다. 이 명령은 베드로와 요한에게만 주어졌지만(4:18) 실은 열두 제자 모두에게 주어진 것이다. 사도들은 그 명령을 지키지 않을 것이며 또 담대하게 계속 전도하겠다고 선언했다(4:19, 20, 31). 그들은 더 높은 권위 곧 그들의 주님께 순종하고 있었다(28:19, 20; 1:8).

이 이름으로가르치지 말라. 3:16; 4:17 주석과 비교. 이렇게 한 것이 사도들이 저지른 큰 죄였다. 유대인들은 그 이름을 언급하는 것조차 하지 말라고 명령했다. 그 이름은 그들이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분, 그러나 이제는 살아 계신 분으로 선포되고 있는 분, 그들이 도저히 부인할 수 없는 능한 일들을 그분의 추종자들이 행하고 있음을 그들이 알고 있는 분의 이름이었다. 이 이름과 그 이름을 주축으로 행해지는 활동이 사두개인들의 공격 표적이었다.

(너희) . 정확히 말해서 가르침.” 7:28가르치심으로 번역된 동일한 원어이다. 그러나 가르침은 일반적으로 딤전 4:16에 예시된 대로,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교리의 특성과 의미를 급속도로 지녀가고 있었다.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니. 사도들이 예루살렘에 복음을 선포함으로써 그리스도의 명령(참조 1:8)의 첫 번째 부분을 성취하기 위하여 신실하게 그리고 성공적으로 일했다는 것에 대하여 원수 자신들이 발한 무의식적 증언이 여기에 있다.

이 사람의 피. 그들은 예수의 이름을 언급하는 일을 피했다. 이것은 경멸했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는데, 왜냐하면 그들은 십자가에 못박힌 갈릴리인을 멸시했거나 그분의 죽음에 대한 자신들의 책임을 깨달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아니면 그 이름이 얼마나 권세가 있는지 입증되었다는 것을 그들이 알았기 때문에 두려워해서 그랬을 수도 있다. 이전에 서슴없이 베드로는 이 예수를 못박은 것에 대해 그들을 비난하였으며(2:26; 3:13~15; 4:10), 그들의 경멸을 무의미하게 만들고, 그들의 두려움을 합당하게 만들었다. 그들의 입장이 공명정대하였다면 제사장이자 재판관인 이 사람들은 그들에게 형벌을 가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고발당할 범죄자의 위치에 놓여 있음을 알게 되었다. 빌라도의 법정에서 그들이 발했던 끔찍한 부르짖음이 그들의 귀에 들려왔음에 틀림없다.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27:25). 그들은 이미 이 사람의 피를 그들 자신에게로 돌렸다.

(돌리)고자 함이로다. 정확히 말해서 너희들이 원한다.” 이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베드로는 그들의 정죄가 아니라 그들의 구원을 원했다.

 

29. 베드로와 사도들이. 베드로와 사도들이란 표현은 베드로가 사도들로부터 축출되었다거나 그가 그들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시사하지 않는다. 의문의 여지없이, 그는 이전의 모든 장면들에서 가장 적극적이었으며, 그렇기에 그의 이름과 개성이 그 이야기 속에서 자연스레 두드러지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정확히 말해서, “우리는 해야 한다.”로서 도덕적 강요의 뜻을 지녔다(참조 1:16). 이것은 베드로와 요한이 앞서 사용했던 논증을 더 분명하게 표현한 진술이지만(4:19), 결과를 개의치 않고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사실을 보다 더 크게 강조한 것이다. 그들은 위대한 분부를 통해 예수의 명령과 그분을 위해 증인이 되어야 할 과제(1:8)를 받았고, 최근에는 천사의 명시적 명령을 받았다(5:20). 예수께서는 가이사와 하나님, 둘 모두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원칙을 제시했다. 가이사가 받아 마땅한 것에 대해서는 가이사에게 순종해야 하고, 하나님이 받아 마땅한 것에 대해서는 하나님께 순종해야 한다(22:21).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6:24; 16:13). 오직 한 주인만 궁극적인 충성을 받을 수가 있으며, 그 주인은 반드시 하나님이어야 한다. 이 기본 원칙을 베드로가 매우 분명히 하고 있다. 산헤드린의 지도자들이 예수의 이름을 언급조차 하지 않았던 것과 꼭 마찬가지로, 베드로는 이 원칙을 말로 표현할 때에 그들의 이름을 넣지 않는다. 그가 앞에 서 있는 것과 같은 그런 권세자들일지라도 그는 그저 사람이라고 말할 뿐이다. 베드로는 산헤드린 회원들을, 한때는 하나님의 대리자였지만 이제는 하나님께 대한 자신들의 의무를 망각한 사람들로 간주한다.

루터는 보름스 공회에서 이렇게 선언하였다. “나의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있으며, 나는 철회할 수도 없고 철회할 용의도 없습니다. 이는 양심에 배치되게 행동하는 것은 안전하지도 않고 올바르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여, 저를 도우소서. 아멘”(E. G. Schwiebert, Luther and His Times, 505에서 인용). 이것은 고상한 원칙을 설명하고 고상한 경험을 드러내는 고상한 말이다.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이 이것을 본받기를 바란다.

 

30. 너희가죽인. 헬라어 본문에서 너희는 강조형이며, 주님이 하신 것과 그들의 행위를 대비시킨다. “죽인이란 단어는 십자가에 못박은 행위의 죄책이 마치 유대인 자신들이 그 행위를 저지른 것만큼이나 강력하게 그들에게 지워져있음을 암시한다.

달아. 문자적으로 너희가 나무에 달아매어 죽였다.” 이 표현은 유대적 처형 방식이 아닌, 로마의 방식을 묘사한다. 이 어법은 70인역의 신 21:23에서 찾아볼 수 있다. 거기에서 그것은 교수형과 말뚝에 꿰찔러 죽이는 것과 같은 형태의 형벌을 포함하여 좀 더 넓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럼에도 유대인들은 이미 죽은 자들만 매달았다(21:22, 23; 10:26). “나무에 달아라는 구절은 베드로가 한 번 더 사용했을 뿐(10:39), 신약에서는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대속에 관하여 기술하면서(벧전 2:24) 베드로는 십자가대신 나무라는 낱말을 사용한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16:24 주석과 갈 3:13을 참조하라.

그러나 주님을 찾는 죄인은 유대인이나 로마인에게 죄의 책임을 씌울 수 없으며, 정확히 말해서 그의 주님을 죽인 것은 자기 자신의 죄라는 것을 안다.

죄를 알지도 못하신 분인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하여 죄로 삼으신 바 된 것은 값으로 헤아릴 수 없는 은혜로운 교환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하나님의 의를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고후 5:21).

우리 조상의 하나님. 사도들은 자신들을 이스라엘과 분리시키지 않았다. 그들은 산헤드린이 섬긴다고 주장하는 동일한 하나님을 섬겼다(참조 3:13).

살리시고. 이 구절에 대해서는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그것은 하나님의 선물인 성육하신 그리스도를 가리키거나(참조 3:22), 아니면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일으키시는 하나님의 행위를 가리킬 수도 있다(참조 10:40; 13:37). 둘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는 해석이다.

 

31. 회개케 하사. 사도들의 기본적인 가르침과 침례자 요한과 예수의 가르침이 기본적으로 일치하고 있음을 주목하라(참조 마 3:2; 4:17 주석). 사도의 가르침에 관한 기록은 구주의 대리적 죽음을 통하여 용서가 마련된 방법을 좀 더 완벽하게 드러낸다.

죄사함. 정확히 말해서, “죄를 취하여감”(참조 2:38 주석). 회개는 용서에 앞서는 필수적 선결 행위이다. 용서는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이르러 오는 공동의 선물이다(참조 막 2:7~11 주석). 의롭고 공의로운 하나님은 죄인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를 죄를 지시는 분(벧전 2:24)으로 알고, 개인의 구주로 그분을 영접할 때(3:23~26)를 제외하고는 죄인을 그분의 임재 안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죄를 지시는 분으로서의 그분의 사역을 통하여 회개한 죄인의 죄가 용서되거나 제거되며(참조 요 1:29 주석), 그렇게 하여 그는 그분 보시기에 의로워진 사람으로 서게 된다.

오른손으로. 혹은 오른편에”(참조 2:33 주석). 오른손은 권위와 권세를 나타내는 흔한 성경적 상징이다(참조 출 15:6).

높이사. 헬라어 휩소오(hupsoo-). 3:14; 12:32에는 들어 올리다라는 뜻으로, 2:9과 사 52:13에 대한 70인역의 번역에는 높임을 받다라는 의미로 쓰였다. 베드로는 이 두 가지 정의를 언급한 바 있는데(참조 행 2:33), 지금은 두 번째 의미를 다루려고 한다.

임금. 참조 3:15 주석. 주권을 나타내는 직함은 구원을 보증하는 직함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리스도는 사람의 구주가 되실 수 있도록 사람들을 다스리기 원하신다. 그분이 우리를 다스리지 않는 한 우리는 그분을 우리의 구주로 모실 수 없으며, 만일 그분이 우리의 삶을 통치하신다면 그분은 우리를 구원하실 것이다. 그분의 두 가지 직함은 분리시킬 수 없다.

 

32. 증인. 본문상의 증거(참조 20)그의”(his)를 생략하고, “그 안에”(in him) 혹은 그에게”(to him)를 추가하는 것을 지지한다. 참조 1:8 주석. “이 일5:30, 31에 언급된 위대한 구원의 사실들, 즉 예수의 구원 곧 죽으심, 장사 그리고 부활을 가리킨다.

하나님이주신. 사도들은 성령이 아버지께로서 왔다고 이해하였다(참조 요 14:26; 15:26; 1:4 주석).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사도들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지도를 진실하게 따르고, 그렇기에 그분을 순종하는 모든 사람에게도. 창조주께 대한 피조물의 순종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는 일의 기초요 핵심이다. 천사들은 하나님을 순종하지만(103:20, 21), 차가운, 율법주의적 형식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그렇게 한다(산상보훈, 109). 사람은 순종해야 하지만(103:17, 18; 12:13), 사랑 가운데서 그렇게 해야 한다(14:15). 순종은 어떤 제사보다도 낫다(삼상 15:22). 진리(2:8), 바른 교훈(6:17) 그리고 복음(살후 1:8; 벧전 4:17)에도 순종해야 한다. 은혜로 제공되고 믿음으로 받는(2:5, 8) 영원한 구원은 순종하는 자들,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는 자들이 얻을 수 있다(5:9). 사도행전 5:29 주석과 비교해 보라. 진실한 순종은 하나님의 거룩한 계명에 대한 사랑어린 순종으로 드러난다(요일 5:3).

성령도. 본문상의 증거(참조 20)”(also)를 생략하는 것을 지지한다. 그리스도는 이 땅에 계실 때 성령이 나를 증거하실 것이라고 선언하셨다(참조 요 15:26; 16:13, 14 주석). 성령은 모든 것생각나게”(14:26) 하심으로써 그리고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경험이 어떻게 예언들을 성취했는가에 대한 깨달음을 주심으로써 사도들을 위해 이 일을 행하셨다. 성령은 오순절의 부어 주심 이래 사도들을 지배했던 능력들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증거했다. 그 성령은 또한 신자들의 심령 속에 부활에 대한 내적 증거를 주었다. 참조 행 4:33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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