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퍼스의 수호천사 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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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수 : 2838
2013.12.02 (22:16:12)

사도행전 Tins 11

보라 인자가 ... 서신 것을 보노라

오늘의 말씀: (개역/NKJV) 7:51-60

51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가 항상 성령을 거스려 너희 조상과 같이 너희도 하는도다 52너희 조상들은 선지자 중에 누구를 핍박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저희가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 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53너희가 천사의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하니라 54저희가 이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저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55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56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 대 57저희가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심으로 그에게 달려들어 58 성 밖에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59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60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51 "You stiffnecked and uncircumcised in heart and ears! You always resist the Holy Spirit; as your fathers did, so do you. 52 "Which of the prophets did your fathers not persecute? And they killed those who foretold the coming of the Just One, of whom you now have become the betrayers and murderers, 53 "who have received the law by the direction of angels and have not kept it." 54 When they heard these things they were cut to the heart, and they gnashed at him with their teeth. 55 But he, being full of the Holy Spirit, gazed into heaven and saw the glory of God, and Jesus standing at the right hand of God, 56 and said, "Look! I see the heavens opened and the Son of Man standing at the right hand of God!" 57 Then they cried out with a loud voice, stopped their ears, and ran at him with one accord; 58 and they cast him out of the city and stoned him. And the witnesses laid down their clothes at the feet of a young man named Saul. 59 And they stoned Stephen as he was calling on God and saying, "Lord Jesus, receive my spirit." 60 Then he knelt down and cried out with a loud voice, "Lord, do not charge them with this sin." And when he had said this, he fell asleep.

 

주요 낱말(중요하게 생각되어지는 낱말을 3개 이상 적어보세요.)

문단나누기 / 말씀의 주제 정하기

 

묵상을 위한 질문과 말씀나눔(TINS) (각자 질문을 하나씩 만들어보세요.)

 

들어가는 이야기 - 누군가가 내가 고쳐야할 바른 말을 해주었을 때의 기분을 설명할 수 있나요?

1.

2. 스데반은 자신의 설교를 듣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라고 표현했으며, 그렇게 강한 표현을 써서 얻고자하는 것이 무엇이었을까요?(7:51-53)

 

성화된 그리스도인의 생애는 항상 빛과 위로와 평화를 주고 있다. 이것은 순결, 기지, 단순, 유용성으로 분명히 식별된다. 이것은 감화를 신성하게 하는 무아적 사랑에 지배된다. 이것은 그리스도로 충만하고 이것을 가진 자는 가는 곳마다 빛의 자취를 남긴다. 아비가일은 현명한 책망자요 권고자였다. 다윗의 격분은 여인의 감화와 설득의 능력으로 가라앉았다.,, 다윗은 겸손한 마음으로 그 책망을 받아들였다. 다윗은 감사히 생각하고 축복하였으니 이는 그 여인이 그를 의롭게 충고한 까닭이었다. 책망을 받을 때에 안달하지 않고 그 책망을 받기만 해도 칭찬받을만 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책망을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그들을 책망하여 악한 길에서 구원하려고 노력하는 자를 축복하는 자는 얼마나 드문가!(부조, 666-667).

 

3. 스데반이 죽음의 목전에서 본 이상 중에 예수님께서 서셨다고 했는데 그것의 의미는 무엇일까요?(7:55)

그들은 인간이라기보다는 야수처럼 행동하며 이를 갈면서 스데반에게 달려들었다. 주위의 잔인한 얼굴들을 보고서 그 죄수는 자기의 운명을 알았으나 요동하지 않았다. 죽음의 공포는 사라졌다. 그는 분노한 제사장들이나 흥분한 폭도들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의 앞에 있는 광경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의 앞에 하늘의 문이 조금 열렸으며, 안을 들여다 보았을 때, 그는 하나님의 궁전의 영광과 그리고 마치 당신의 종을 붙드시고자 방금 그의 보좌에서 일어나서 계신 듯한 그리스도를 보았다. 스데반은 승리의 음성으로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고 부르짖었다.”(행적, 100-101)

스데반에게 세상의 구주는, 깊은 관심을 가지고 하늘로부터 그를 내려다보시는 분으로 나타났다. 그리스도의 얼굴의 영광의 빛이 스데반에게 너무도 크게 비춰져서 심지어 그의 적들도 그의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이 빛나는 것을 보았다.”(청년, 113)

 

 

4. 죽음 직전에 드린 스데반의 마지막 기도는 예수님의 십자가상에서 드린 기도와 비슷한데 어떻게하면 그리스도인들이 위기의 순간에 예수님을 드러내는 기도를 할 수 있을까요?(7:59-60)

 

스데반의 순교를 목도한 모든 사람들은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의 얼굴에 나타났던 하나님의 인에 대한 기억, 그것을 들었던 그 영혼들을 감명시켰던 그의 말 등은 보는 이들의 마음 속에 간직되어 그가 선포했던 그 진리를 증거하였다. 그의 죽음은 교회에게 견디기 어려운 시련이었으나, 그것은 그의 기억에서 순교자의 신앙과 지조, 그리고 그 용모에 머물러 있었던 영광을 지울 수 없었던 사울의 양심을 일깨우는 결과를 가져왔다.”(행적, 101)

 

 

내 삶에 적용

1.

2.

기억할 성구 정하기 (절이나 구 단위로 기억할 성구를 기록하기)

 

 

기도제목과 기도

1.

2.

3.

 

나눔 대상 (문자, 전화로 어떤 친구에게 말씀 나눌 것인가 결정하기 / 밴드나 카톡에 감동 나누기).

 

 

 

 

질문 / 우리가 위급한 위기에 직면할 때 지금도 예수님은 보좌에서 서실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질문 / 유대인들은 양심이 찔려서 스데반을 죽였는데 우리는 양심이 찔릴 때 어떻게 반응해야할까요?

 

마치는 이야기

저스틴 마터라(103-165)는 유명한 철학자이었습니다. 변증가로서 철학자로서 인생의 의미를 깨달으려 여러 철학자들을 찾아다니며 온갖 철학을 섭렵했지만 만족할만한 진리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었습니다.

32살 되던 해 어느 날 조용한 해변을 거닐고 있었습니다. 밀려오는 파도소리를 들으면서 인생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였으나 헛되고 헛된 인생이란 생각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해변에서 한 노인을 만나 격이 없이 대화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 노인은 저스틴의 플라톤 철학사상을 논박하면서 그리스도를 전했습니다. 그 날 이후부터 저스틴의 삶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때 내 마음속에 불이 붙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때부터 나는 예언자들과 그리스도의 친구 되었던 사람들의 사랑을 발견하게 되었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믿을 수 있고 가치 있는 유일한 철학임을 알았다" 고 그는 후일에 고백했습니다.

회심한 저스틴은 기독교 단체를 찾아다니면서 그리스도교 진리에 대해 열심히 배웠습니다. 회심 후 30여 년간 그는 온 힘을 다해 기독교 신앙에 헌신할 뿐 아니라 이를 옹호하며 널리 전파하는데 힘을 썼습니다. 그러다 퀴니크스 학파(Cynic)의 철학자들과 논쟁을 벌이다 그들의 모함을 받아 다른 그리스도인 6명과 함께 로마의 장군 루스티쿠스 앞에 끌려가 심문을 받게 되었습니다.

루스티쿠스 - "로마의 신들에게 제물을 바치라"

저스틴 - "올바른 정신을 가지고 불신앙을 위하여 신앙을 포기할 사람은 없다"

루스티쿠스 - "만약 네가 내 말에 복종하지 않으면 너는 무자비한 고문을 당하게 될 것이다"

저스틴 -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문을 받고 그분의 것이 되는 것은 내가 지극히 열망하는 바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주인이요 구원자이신 주님이 행하실 더욱 무서운 우주적 심판의 때에 확실한 신임과 구원을 얻는 길이 되기 때문이다"

그는 그의 친구들과 함께 정죄를 받고 채찍질을 당하고 나서 목이 잘렸습니다. 순교를 당하는 순간에도 그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기쁨으로 기독교 진리와 자기의 믿음을 고백하였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당하는 것밖에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세상 사람들이 장차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의 자리에서 설 때 구원과 기쁨을 주는 것은 바로 이 고난임을 알기 때문이다

 

 

 

이기는 자들에게 쓰여질 면류관을 믿음으로 바라보라. 구원받은 자들이 훌륭하도다, 훌륭하도다. 죽임을 당하시고 우리를 하나님께 속량하신 어린 양이여!”하는 희열에 찬 노래에 귀를 기울이라. 이런 장면들을 현실화하여 생각하도록 힘쓰라. 그리스도교의 첫 순교자 스데반은 공회 중에서 정사와 권세와 영적 사악함과 맹렬하게 투쟁할 때에 부르짖기를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7:56)고 하였다. 세상의 구주께서 지극한 관심을 가지고 하늘에서 그를 내려다보고 계신 광경을 그는 볼 수 있었으며, 그리스도의 용모에서 비추이는 영광스러운 빛이 그의 원수들까지도 그의 얼굴이 천사의 얼굴처럼 빛나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성화, 91)

 

스데반의 눈앞에 장면은 희미해졌다. 하늘문이 조금 열리어 스데반은 하나님의 법정의 영광을 보았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을 위하여 순교를 당하게 될 당신의 종을 도우시기 위해 막 보좌에서 일어나시는 것처럼 보였다. 스데반은 승리의 말을 외쳤다.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높임, 104)

 

 

 

 

 

 

 

 

 

 

예수께서는 당신의 허락과 경고 가운데서 나를 생각하고 계신다. ... 하나님의 말씀에 기록된 경험은 나의 경험이 되어야 한다.

기도와 허락, 교훈과 경고는 나의 것이다.”(소망, 390)

7:51-60 SDA 성경 주석

51. 목이 곧고. 스데반의 연설 기조가 갑작스럽게 바뀐 이유는 산헤드린 회원들이 점점 흥분했고 그의 말로 인해 적개심이 치솟았기 때문이다(참조 사도행적, 100; 26:65). 자신의 죽음이 가까웠다는 것과 더 이상 논한다 해도 그 문제에 아무런 영향을 끼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은 스데반은 엄한 견책의 말을 쏟아냈다. 그가 사용한 형용사들은 옛 이스라엘의 죄들에 대해 사용된 것들이었다. 33:3, 5; 34:9목이 곧은과 레 26:41할례받지 아니한등등. “목이 곧은은 고집 센 황소에 대하여 사용되었다(참조 출 32:8 주석). “마음에할례받지 아니한이란 구절은 실제로 에스겔이 이방인에게 사용했다(44:7). 스데반이 그들의 성전 숭배가 너무 극단적이고 또 무익하다고 말하고 있던 바로 그 순간 그는 그들을 이방인의 부류에 넣었다. 이 격노한 사람들에게 이보다 더 큰 모욕적인 언사는 없었을 것이다.

항상 성령을 거스려. 정확한 역사적 요약인데, 이는 그들의 조상들이 순종하지 않았던 모세의 시대로부터 그들이 십자가에 못박았던 예수 그리스도 때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령을 거스렸기 때문이다. “거스려에 해당하는 헬라어(안티핍토[antipipto-)는 적극적이고 줄기찬 반대를 의미한다.

 

52. 선지자 중에 누구를. 여기에 그리스도 자신의 말씀이 다시 메아리되어 울려퍼지고 있다(5:12; 11:47; 13:34). 선지자에 대한 이러한 핍박의 역사는 마 5:12; 23:37 주석을 참조하라(참조 대하 36:16 주석; 살전 2:15).

의인. “의로운 사람.” 이 존귀한 칭호는 3:1422:14에도 사용되었다. 이미 이 이름은 유대 문헌에서 고대하던 메시야에게 적용되어 왔으며(에녹서 38:2), 11:4, 5에 암시되어 있을 수 있다. 빌라도의 아내가 예수를 지칭하면서 이렇게 묘사하였다(27:19). 초기교회는 그 이름을 받아들인 것처럼 보이며, 그렇게 사용한 예는 요일 2:1에서 볼 수 있다. “의로우신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여기 의인에 대해서 사용된 것과 같은 단어이다. 악인으로 정죄를 당하였던 그리스도는 의인으로서 모든 사람들과 구분되었다. 이 동일한 의를 나누어 줌으로써, 스데반은 사악한 분노 가운데서 그를 처형하려는 사람들과 크게 대조된다.

예고한. 정확히 말해서 가 된.”

잡아준 자요 살인한 자. 자신에게 고통을 안겨 주는 자들의 얼굴에서 곧 닥칠 운명을 읽은 스데반은 그들에게 그리스도에게 행한 그들의 이전 행동을 상기시켜 준다.

 

53. 천사의 전한. 문자적으로 천사의 포고로서.” 시내산에서 율법을 주신 분은 그리스도 곧 하나님의 아들이었다(참조 출 20:2 주석). 그분은 언약의 천사였다(참조 출 23:20 주석). 그러나 천사의 무리가 시내산에서 여호와와 함께 있었다(참조 신 33:2; 68:17; 3:19; 2:2 주석). 33:270인역에는 그의 오른쪽에 천사들이 있고라고 되어 있으며, 요세푸스(Antiquities xv. 5. 3)도 동일하게 생각한다.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이 말씀은 앞의 구절, “너희가율법을 받고도와 극적인 대조를 이루며, 그 말을 들은 자들에게 호된 일격이 되었음에 틀림없다. 그들은 율법의 자구(字句), 그 취지도 지키지 않았다. 천사에게 받은 율법은 그들의 영광이 될 수 있었지만 그렇게 되지 못했다. 율법에 대한 곡해와 악용은 수치와 멸망을 재촉하였다.

 

54. 저희가듣고. 정확히 말해서 이제 그들이 듣고 있을 때에.”

마음에 찔려. 참조 5:33 주석. 이 말은 2:37마음에 찔려보다 더 에는 고통을 기술하고 있으며, 이제 그것은 회개가 아니라 맹렬한 분노를 낳았다.

저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이 비유적 표현은 드물지 않다(8:12; 13:42). 그러나 그것은 외적으로 표현된 사실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유대인들은 분노를 통제할 수 없게 되었다. 화가 나서 말문이 막힌 그들은 마치 짐승이 먹이를 이빨로 물어뜯듯이 그를 갈기갈기 찢기를 원했다.

 

55. 스데반이. 미쳐 날뛰는 그의 적대자들과 완전히 대조적임을 가리킴.

충만하여. 갑작스런 영감이 아니라 계속된 경험을 암시함. 시작 때에 그러했던 것처럼(6:5) 끝에도 스데반은 성령이 충만하였다.

하늘. 스데반은 하늘이 열리”(참조 행 7:56; 6:1 주석)는 것을 보았다. 그렇게 열린 하늘의 영광을 본 구경꾼들은 아무도 없었으며, 이 영광을 보았다는 스데반의 진술은 그의 죄책을 더욱 무겁게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들이 본 것이 영적 눈으로 본 것인지, 아니면 육체적 감각의 확장을 통해서인지는 오로지 선지자들만이 말해줄 수 있을 것이다(참조 마 3:16; 고후 12:1~6).

우러러 주목하여. 참조 1:10 주석.

하나님의 영광보고. 3:24; 13:21; 1:14; 7:2 주석과 비교하라. 스데반의 설교는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언급으로 시작하여 그의 마음을 비추는 거룩한 영광에 대한 계시를 보고함으로써 끝마친다. 그는 매우 넋이 나간 표정으로 저 영광을 응시했다. 그는 그 순간의 치명적 위험도 잊고 하늘의 장면에 온전히 정신을 집중했다.

예수께서서신. 그리스도는 통상적으로 하나님의 오른편에 서 계신 것으로 묘사되었다.

하나님 우편. 참조 마 26:64 주석. 이렇게 아버지와 아들을 보고 나서 이 신실한, 고난받는 하나님의 종이 힘을 얻었다.

 

56. 인자. 복음서를 제외하고 신약에서 이 낱말은 여기와 계 1:13; 14:14에만 나온다. 스데반은 주님의 입술로부터 이 칭호를 직접 들었든지 아니면 초기교회에서 배웠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설교는 어떤 복음서도 쓰여지기 이전에 행한 것이기 때문이다. 산헤드린 회원들은 그리스도가 친히 그들 앞에서 심문당할 때에 사용한 이 구절을 기억했을 것이다(26:64). 그들은 그때 주님의 주장이 신성모독이라며 정죄하였다. 이 칭호에 대한 언급은 막 2:10 주석을 참조하라.

 

57. 저희가지르며. 정확히 말해서 그러나 그들이 소리지르며.” 즉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 가운데서 그의 말을 듣고 죄를 깨닫는 대신 스데반을 침묵시키려고 시도하면서.

(귀를) 막고. 헬라어 쉬네코(sunecho-). “누르다”, “감싸 잡다.” 그들은 스데반의 말을 신성모독으로 여기고 더 이상 듣기를 원치 않았다. 그렇게 하여 그들은 51절에 주어진 자신들이 묘사를 받아 마땅함을 입증하였다. 스데반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이 신성모독자였다.

그에게 달려들어. 정확히 말해서 그에게 일제히 달려들어.” 사단은 사람에게 사형 선고를 내릴 때 율법이 요구하는 그런 종류의 일치(13:9, 10)를 산헤드린에서 이루어냈다. 그들은 공식적 판결을 기다리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욕구와 결정에서 만장일치를 보였다. 이처럼 약식 재판 절차의 사법적인 측면들을 보려면 마 26:59 주석을 참조하라.

 

58. 성 밖에 내치고. 24:14에 따르면, 돌에 맞을 사람은 반드시 진영 바깥으로 데려가야 했는데, 스데반 당시에는 예루살렘 성 바깥을 의미했다.

돌로 칠새. 문자적으로 그에게 돌을 던지고 있을 때.” 마치 처형의 행위가 마치 그 순교자가 기도하는 중에 진행된 것처럼 보인다(59, 60). 돌로 치는 것은 모세의 율법 아래서는 신성모독죄에 대한 처형 방법이었다(참조 레 24:14~16; 8:7 주석). 하지만 산헤드린이 아무리 이 법을 면밀하게 따른다하더라도, 로마의 지배 아래서 그들은 특별히 스데반이 로마 시민권자라면(참조 행 6:5 주석) 그를 사형에 처할 아무런 권한이 없었다. 그러나 그저 침묵을 지키도록 로마의 관리들을 뇌물로 매수할 수 있었다(사도행적, 98, 101,). 여전히 총독이었던 빌라도(참조 제10, 74~77)가 당시 도성 밖에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를 심문하면서 굴욕적인 경험을 한 후에는 스데반에 대한 공격에 개입하려 하지 않았을 개연성이 높다.

옷을 벗어. 율법은 고발자가 먼저 사형의 돌을 던지도록 요구하였다(참조 신 17:7; 8:7 주석). 겉옷으로 입은 헐겁게 늘어진 옷은 사형 집행자들이 팔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것을 방해했을 것이기 때문에 벗어서 옆에 두었다(참조 행 22:20).

사울. 이 이름의 의미는 삼상 9:2 주석을 참조하라. 사울의 이전 이력(履歷)과 스데반의 순교 현장에 참석한 일, 나중에 이름이 바울로 바뀐 것 등에 관해서는 추가적 설명, 설명 2를 보라.

청년. 헬라어 네아니아스(neanias). “청년은 남자로서 20세에서 40세 사이의 폭넓은 연령층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이 용어는 바울의 생애 연대를 결정짓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참조 몬 9주석).

 

59. 저희가 돌로치니. 정확히 말해서 저희가 돌로 치고 있을 때에.” 스데반은 돌에 맞는 동안 기도하였다.

스데반이 부르짖어. 스데반이 방금 하나님 우편에 서 계신 것을 본 주 예수께 요청했다는 것을 이 기도 자체가 보여 준다(56).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참조 마 27:50; 8:55; 7:60 주석. 예수께서 돌아가시면서 드린 이와 유사한 기도를 누가가 어떻게 기록하는지 주목하라(23:46).

 

60. 무릎을 꿇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 것을 본 적 있는 그분에게 기도하면서 그리고 그분을 숭경하면서 그렇게 하고 있다. 물론 그가 돌에 맞아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없었다는 데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긴 하지만.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스데반은 그를 핍박하는 자들의 과거의 죄에 관해서는 어떻게 해볼 일이 없었지만, 그들의 현재의 죄에 대한 용서를 요청할 개인적 권리가 있었다. 그들을 위해 간청하는 태도를 통해서 그는 그의 주님을 특징지었던 저 용서의 정신을 얼마나 온전히 습득했는지 드러내 보였다(참조 눅 23:34).

자니라. 참조 막 5:39; 11:11 주석. 자신을 변호하는 전체 시간 동안 스데반이 보인 행동은 그를 고발한 자들의 행동과 현저하게 대조된다. 그들은 복수에 목말라 격분으로 충만했지만, 그는 그리스도께서 재판정에서 나타내셨던 것과 같은 침착함과 평온함을 유지한다. 이제 누가는 순교자의 사역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면서 “(그가) 자니라고 하는 마지막 구절로 거룩한 분위기를 보존한다. 이제 투쟁은 끝났고, 그는 승리를 얻었다. 하나님의 신실한 용사는 그 소동을 떠나 부활의 날까지 조용히 잠들어 있다. 이어지는 장들은 그의 죽음이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FN4 FTB 7장에 대한 추가적 설명

설명 1

스데반의 설교는 그 목적, 내용과 사실에 대한 질문들에 다소 어려운 문제를 제시한다. 이 문제들에 접근할 때 몇 가지 고려 사항을 명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1) 설교는 이 사건 30년 후 사도행전을 기록할 당시 그가 이해하고 있었을지도 모를 그 [설교] 내용과 의미를 누가가 기록한 것이 아니라, 가령 사울(바울) 같은 청중 가운데 하나나 그 이상의 사람들 혹은 회심한 제사장들 가운데 한 사람이 그에게 전해준 것을 기록한 것일 것이다(6:7). 물론 하나님께서 설교 내용을 누가에게 직접 전달해 주실 수도 있으셨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2) 그 설교는 결코 끝마치지 못했다. 왜냐하면 듣던 자들이 격노하여 스데반에게 달려들어 그를 도성 바깥으로 끌고 나가 돌로 쳐죽였기 때문이다. (3) 스데반의 설교는 그보다 앞선 베드로의 설교처럼(2, 3), 그리고 그 뒤 바울의 설교처럼(13, 22, 26) 역사적인 것에 관한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개인의 신학 사상은 거의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때까지 발전되어 온 스데반의 신학을 그가 추적했던 역사에 관련된 것들 가운데서와 그의 원수들의 고발 가운데서 찾지 않으면 안 된다. (4) 그의 강연은 안수받은 후에 일곱 명이 증거했던 복음 기별(6:7~10)과 스데반이 헬라파 유대인들의 회당에서 하고 있었던 복음 제시의 연장선이었음에 틀림없다(참조 9절 주석). 그러므로 그의 변론은 그것을 분석하고 평가하려는 오늘날의 연구자들에게 도움이 될 많은 것들을 당시 청중들이 당연히 알고 있을 것으로 간주하고 생략했다. (5) 이 설교가 제시하는 듯이 보이는 몇 가지 역사적 및 주석적 난제들이 있다. 가령 데라가 죽을 때까지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나지 않았던 것(7:4), 애굽에서 요셉과 함께 있었던 히브리 사람이 모두 75명이라는 것(14), 아브라함이 세겜에서 산 것으로 되어 있는 땅 한 필지(16), 그 땅에 야곱이 묻힌 것(15, 16), 스데반이 암 5:26, 27을 인용하면서 바벨론을 다메섹으로 대치시킨 것 그리고 언급된 이방신들의 이름들이 그것이다. 이런 난제들은 스데반은 알고 있었을 정보를 우리가 부분적 혹은 전체적으로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야기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스데반의 설교에서 세 가지 아주 명백한 목적들을 추론해 낼 수 있다.

1. 자신이 히브리 역사에 정통하다는 사실을 산헤드린에게 보여 줌으로써 승인을 얻거나 비난을 누그러뜨리기 위하여 그리고 자신의 정통성을 입증한 토대를 마련하기 위하여.

2. 어떻게 하나님께서 히브리인들을 인도하려고 애쓰셨는지, 어떻게 그들이 모세와 선지자들과 오리라고 오래 전에 예언된 메시야를 통하여 주어진 지도를 끈덕지게 배척했는지 역사적으로 보여 주기 위하여.

3. 반드시 깨달아야 하는바, 하나님의 우편에서 그리스도께서 새로 시작하신 사역과 관련하여, 하나님께서 부조들과 그분의 선민을 위해 규정하신 예배의 본질과 의미를 보여 주기 위하여. 이것은 가장 중요한 것으로 생각되지만, 제일 희미하게 진술되어 있다. 이것과 관련하여 네 가지 사실들을 주목해야 한다.

a. 제자들이 그들의 공중 사역을 시작했을 때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6:7)게 되었다고 처음으로 언급되었다. 이런 결과는 스데반과 다른 집사들이 복음을 제시하는 일에 특별히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일어났을 것이다. 스데반은 그들 가운데 선도적 복음 전도자로 부상하고 있었다.

b. 스데반은 거룩한 곳”, 즉 성전과 율법과 그리고 규례”(6:13, 14)를 거스려 가르쳤다는 이유로 엄중한 고발을 당하였다.

c. 스데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야곱과 그의 후손들을 돌보신 하나님의 섭리적 돌보심(7:2~17), 모세의 지도 아래 애굽에서 히브리인들이 해방된 것(7:2~17), 광야 교회를 위해 장차 한 선지자가 일어날 것에 대한 모세의 증언(37, 38), 히브리인들의 불경한 희생제사와 거짓 예배(39~43), 모세에게 보이신 식양대로 지어진 광야 성막(44, 45), 솔로몬의 성전(46, 47) 그리고 하나님은 인간이 만든 성전을 필요로 하지 않으신다는 사실(48~50)을 강조하였다. 예배에 대한 이 같은 강조는 스데반이 하늘에서 행하시는 그리스도의 사역이라는 주제로 이끌어 가고 있었음을 제시한다.

d. 스데반의 경험은 70이레 예언과 관계가 있으며, 그 관련성을 우리는 알아낼 수 있다(9:24~27). 70이레는 BC 457년에 시작하였으며, 그 마지막 이레에 메시야가 끊어져 없어질것이었으며, 중보의 효과적 수단으로서 지상의 예표적 희생제도는 종언을 고할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지상의 제사장 제도는 끝날 것이었다. 본 주석은 십자가 처형이 그 이레의 절반에AD 31년에 일어났다는 견해를 받아들인다(참조 41~46). 그러므로 예언된 70이레의 끝은 반드시 AD 34년에 끝나는 것이 틀림없다. 스데반의 봉사는 복음이 이방인에게 제시되기 전, 예언된 마지막 이레 동안 택한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호소를 극적으로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스데반의 순교 시기를 AD 34년으로 잡는 것은 합당해 보인다. 이는 스데반의 살해는 한 민족으로서 유대인이 복음을 최종적으로 거절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배경에서 볼 때 스데반의 설교는 초기교회 역사의 결정적인, 중요한 시기에 극적이고 중대한 대목인 것처럼 보인다.

 

설명 2

7:58에 소개된 젊은 사람 사울은 신약 장면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에, 그의 이름이 처음 등장할 때부터 면밀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직접적인 전기적 내용들은 빈약하지만, 간접적인 언급은 그의 초기 생애를 상당히 확실하게 재구성할 수 있게 해준다.

어머니에 대한 사울의 간접적 언급(1:15)과 그의 히브리 조상들에 대한 일반적 언급들(24:14; 1:14; 딤후 1:3)을 제외하곤 성경은 그의 가문에 대한 어떠한 단서도 제공하지 않는다. “바울의 생질이 소개된 행 23:16을 고려해 볼 때 그가 아주 어린아이는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그리스도인이 된 바울을 배도자로 여긴 가족들은 그와의 관계가 소원해지고, 모든 관계를 단절했을 가능성이 있다(3:8). 그가 회심하기 전 가족들 중 몇몇이 이미 그리스도인이 되었음은 분명하지만(16:7), 그들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그에게는 고통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제롬이 맨 처음 기록한 AD 2세기의 전승은 사울의 조상이 원래는 갈릴리 지방 기스칼라(Gischala)에 살았다고 한다. BC 4세기경 그들은 포로가 되어 노예로 소아시아 길리기아의 수도인 다소로 잡혀왔는데 그곳에서 그들은 마침내 자유를 얻고 번성하여 로마 시민이 되었다. 후에 사울이 그곳에서 태어났다.

사울의 삶은 다소에서 시작되었으며(22:3), 그는 거기에서 생후 8일 만에 할례를 받았고(3:5) 관습에 따라 이름이 지어졌다(참조 눅 1:59 주석). 그가 베냐민 지파 출신이었던 까닭에(11:1; 3:5), 동일한 가문에 속한, 이스라엘 첫째 왕의 이름을 딴 것으로 보인다.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부러워할 만한 특권을 지녔다. 그는 로마 시민으로 태어났다(22:28). AD 1세기에 로마 시민권은 선망의 대상이었고, 사울의 가문은 보통 수준 이상의 부를 누리는 상당히 지체 높은 집안이었다. 이런 시민권을 보유한 사람은 여러 모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고, 자연스럽게 로마 제국에 대하여 호의적인 성향을 나타냈을 것이다. 게다가 사울은 고향인 이 유명한 도시에 대한 충성심이 있었다. 그는 다소의 시민이었다(21:39). 이것은 그가 단순히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이 아니라 시민의 권리가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의 가족들이 그 도시에 행한 봉사 때문에 아마도 그는 이 특권을 누렸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회적 특권 외에 사울은 자신의 민족적, 종교적 유산을 귀중하게 여겼다. 그는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이요”(3:5; 고후 11:22)라는 묘사를 자랑스럽게 여겼으며 조상의 전통을 지키는 일에 열성적이었다. 이것은 그가 로마 시민권과 다소의 시민권에 대해서 갖고 있었던 긍지와 그리 모순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AD 70년에 이르러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그들의 법적 권리를 박탈할 때까지 유대인들은 이방 로마의 환경 내에서도 그들 특유의 민족성을 보존할 수 있도록 허용되었다. 자신의 종교적 배경에 이처럼 만족하는 것 외에도 그는 자신이 속한 바리새파에 대해 특별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그는 종교의 가장 엄한 파를 좇아 바리새인의 생활을 하였다”(26:5; 참조 23:6; 3:5). 일부 주석자들은 사울이 바리새주의를 아버지에게 물려받았다고 제시하지만, 가말리엘 문하에서 받은 훈육 때문에 그가 바리새인이 되었다는 것 또한 그 못지 않게 가능성이 있다(참조 행 5:34 주석).

아마도 열두 살 때인 어린 나이에 사울은 예루살렘으로 보내졌고(26:4), 그곳에서 저명한 가말리엘 세 문하에서 교육받았다(참조 22:3; 5:34 주석). 그는 율법의 엄한 교훈으로 훈육받았고 율법과 및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으며” “하나님에 대하여 열심이 있는 자로 또 그의 조상들의 유전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는 자로 성장하였다(22:3; 24:14; 1:14). 그는 자기 종파를 스승보다 더 광신적으로 지지했던 사람이었던 것 같다(참조 5:34 주석). 그렇게 하여 그는 후일 그리스도 교회 박멸운동을 적극적으로 벌일 토대를 구축했다(8:1, 3; 22:4, 5; 26:9~12). 이런 배경과 환경에서 사울은 사도행전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온다(7:58). 가장 엄격한 유대교 분파의 열성적인 구성원으로서 그는, 유대교에 비평적인 것처럼 보이는 스데반의 죽음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친히 임석하여 그의 죽음에 찬성했다. 그가 그곳에 있었다는 사실은 그가 계속 예루살렘에서 살았음을 알려주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사역과 죽음, 그에 뒤이어 점점 더 강력해지는 사도들의 증거를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메섹 도상에서 초자연적으로 예수를 만난 경험만을 그가 언급한 사실로 미루어(22:7, 8; 26:14, 15; 고전 15:8) 그가 육체 가운데 계신 그분을 만난 적은 없는 듯 보인다. 사울은 반()그리스도인 박해자로서 잘 준비된 사람이었으며, 그가 첫 순교자의 죽음에 참여한 것은 조금도 이례적인 것이 아니다.

사도행전 중간 즈음 이름이 바뀐 것에 대해 상당한 논의가 집중되어 왔다. 13:9“(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라 기록되었는데, 다른 번역본에는 사울, 달리 말해서 바울로 되어 있다. “사울이 이미 7:5813:9 사이에서 18차례나 사용되었는데, 왜 두 번째 이름이 여기에 소개된 것일까? 제롬의 시대로부터 새로 소개된 이 이름은 구브로의 총독 서기오 바울(Sergius Paulus)의 이름과 관련이 있었다. 그 총독이 그리스도인으로 돌아선 것에 경의를 표하기 위하여 사울이 이 시점에서 바울이라는 이름을 썼다고 제시되어 왔다. 그러한 설명은 옳지 않아 보인다. 왜냐하면 사울이 어린 시절부터 한 가지 이상의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고 결론을 내릴 유력한 이유들이 있기 때문이다.

사울은 여러 언어가 사용되는 세계에 태어났다. 잡다한 인종들이 놀라울 정도로 다른 언어들을 사용하여 매우 혼잡했지만, 각 집단은 그 나름의 본토 말이 있었다. 이런 바탕 아래서 문명화된 제국 전역의 공용어(참조 제9, 54)인 헬라어와 로마 제국 행정부의 공용어인 라틴어가 함께 사용되었다. 결과적으로 그 시대의 많은 사람은 자신들의 본토 말뿐 아니라 헬라어와 라틴어도 구사했다. 따라서 많은 사람이 한 가지 이상의 이름 혹은 그 이름이 사용되는 사회 혹은 언어에 맞추어 동일한 이름이지만 다른 형태의 이름을 지니게 되었다. 다른 경우에서, 서로 언어적 관련성이 없는 이름들, 즉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번역될 수 없는 그런 이름을 지니기도 했다. 사울의 경우는 그 과정이 다음과 같았을 것이다. 할례 때에 그는 사울이라는 유대인 이름을 받았지만, 이방 사회에서 살았기 때문에 바울(Paulus)이라는 라틴 이름도 지니게 되었다. 이름을 두 개 갖고 있는 많은 예를 들 수 있다. 벨사살, 다니엘, 에스더-하닷사, 마가 요한 등을 들 수 있다(참조 행 1:23; 13:1; 4:11). 누가는 사울과 바울이란 두 이름을 그 사도가 갖고 있음을 자신이 알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누가는 행 13:9 이전에는 그를 주로 히브리적 환경에서 묘사했으며, 그렇기에 그의 히브리 이름인 사울을 사용했다. 이제 13:9에서 누가는 사울이 로마의 관리와 얼굴을 마주 보고 있는 것을 본다. 그 관리는 자연스럽게 그에게 당신 이름이 뭔가?” “고향은 어딘가?” 하는 식으로 질문했을 것이다. 그러한 질문에 그 로마 시민은 예루살렘의 바리새인인 사울이라고 대답하지 않고 오히려 다소 출신의 로마 시민 바울이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누가가 자신의 영웅의 다른 이름을 드러낸 것은 매우 적절했던 것처럼 보인다. 그렇게 하는 것이 상황에 적절했으며, 이렇게 한 것에 대한 어떤 다른 설명도 거의 필요하지 않다. “사울”(22:7, 13; 26:14)이란 이름에 대한 세 번의 회고적 언급을 제외하고, 누가는 이 시점에서부터 그 이방 이름을 사용한다. 이것은 누가가 바울의 강론을 얼마나 정확하게 보도했는지를 보여 준다. 이것은 전적으로 합당한데, 그 이유는 사도행전 후반부 기간에 바울의 사역이 거의 완전히 비유대인을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울이라는 이름은 이방인에 대한 그의 봉사와 함께 어우러졌다. 이런 사실은 사도 자신이 편지서에서 바울이라는 이름을 한결같이 사용한 것으로부터 가장 강력한 지지를 얻고 있다(1:1; 고전 1:12; 고후 10:1; 5:2; 4:18 ).

고려해 볼 만한 다른 해석이 있다. 라틴어 파울루스(헬라어로는 파울로스)작은혹은 적은을 뜻하며, 사울의 신장(身長)에 대한 기술로 받아들여져왔다. 이 견해는 AD 160~180년경 작품인 외경 바울과 데클라의 행적의 지지를 받고 있는데, 전적으로 신뢰할 만한 것은 아니지만, 이 위대한 사도의 외모에 관하여 신빙성 있는 전승을 반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관련 구절은 이렇다. “작은 체구에, 대머리에, 안짱다리에 건장한 체격을 가진, 눈썹은 서로 맞닿아 있고, 코는 길지만 은혜가 충만한 사람이다. 어떤 때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또 어떤 때는 천사의 용모를 지니기도 했다”(ANF, vol. 8, 487). 하지만 이런 설명을 받아들이는 것은 바울이라는 이름이 더 나중에 사용되었다고 받아들이는 것을 뜻한다. 왜냐하면 신체적 특징들이 명백하게 드러나기 전까지는 이런 설명을 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울의 다른 이름의 기원이 어떠하든지, 그 이름 자체는 로마식이었으며 제국의 수도에 복음을 전하려는 그 사도의 궁극적 목적에 매우 적합했다(참조 행 19:21; 1:15 주석). 더욱이 누가는 자기 책의 주 논제인 바울의 이방인 사역 문제에 들어가면서 사도의 로마식 이름을 일관되게 사용한다.

달리는, 그리고 더 흔하게는 바울로 알려진 사울 생애의 잠정적 연대기는 62~68쪽을 참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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