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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02 (22:19:24)

사도행전 Tins 14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오늘의 말씀: (개역/NKJV) 9:1-19

1사울이 주의 제자들을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2다메섹 여러 회당에 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좇는 사람을 만나면 무론 남녀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3사울이 행하여 다메섹에 가까이 가더니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저를 둘러 비추는지라 4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 있어 가라사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5대답하되 주여 뉘시오니이까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6네가 일어나 성으로 들어가라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 7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섰더라 8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9사흘 동안을 보지 못하고 식음을 전폐하니라 10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가라사대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11주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자를 찾으라 저가 기도하는 중이다 12저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하시거늘 13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14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를 결박할 권세를 대제사장들에게 받았나이다 하거늘 15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16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해를 얼마나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17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가로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시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18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침례를 받고 19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1 Then Saul, still breathing threats and murder against the disciples of the Lord, went to the high priest 2 and asked letters from him to the synagogues of Damascus, so that if he found any who were of the Way, whether men or women, he might bring them bound to Jerusalem.\par3 As he journeyed he came near Damascus, and suddenly a light shone around him from heaven. 4 Then he fell to the ground, and heard a voice saying to him, "Saul, Saul, why are you persecuting Me?" 5 And he said, "Who are You, Lord?" Then the Lord said, "I am Jesus, whom you are persecuting. It is hard for you to kick against the goads." 6 So he, trembling and astonished, said, "Lord, what do You want me to do?" Then the Lord said to him, "Arise and go into the city, and you will be told what you must do." 7 And the men who journeyed with him stood speechless, hearing a voice but seeing no one. 8 Then Saul arose from the ground, and when his eyes were opened he saw no one. But they led him by the hand and brought him into Damascus. 9 And he was three days without sight, and neither ate nor drank. 10 Now there was a certain disciple at Damascus named Ananias; and to him the Lord said in a vision, "Ananias." And he said, "Here I am, Lord." 11 So the Lord said to him, "Arise and go to the street called Straight, and inquire at the house of Judas for one called Saul of Tarsus, for behold, he is praying. 12 "And in a vision he has seen a man named Ananias coming in and putting his hand on him, so that he might receive his sight." 13 Then Ananias answered, "Lord, I have heard from many about this man, how much harm he has done to Your saints in Jerusalem. 14 "And here he has authority from the chief priests to bind all who call on Your name." 15 But the Lord said to him, "Go, for he is a chosen vessel of Mine to bear My name before Gentiles, kings, and the children of Israel. 16 "For I will show him how many things he must suffer for My name's sake." 17 And Ananias went his way and entered the house; and laying his hands on him he said, "Brother Saul, the Lord Jesus, who appeared to you on the road as you came, has sent me that you may receive your sight and be filled with the Holy Spirit." 18 Immediately there fell from his eyes something like scales, and he received his sight at once; and he arose and was baptized. 19 So when he had received food, he was strengthened.

 

주요 낱말(중요하게 생각되어지는 낱말을 3개 이상 적어보세요.)

문단나누기 / 말씀의 주제 정하기

 

묵상을 위한 질문과 말씀나눔(TINS) (각자 질문을 하나씩 만들어보세요.)

 

들어가는 이야기 - 하나님께서는 왜 사울을 택하셨을까요? 하나님의 사람을 선택하는 기준은 무엇일까요?

1.

2. 사울은 무엇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 일에 그처럼 대단한 열성을 갖고 있었을까요? 올바르지 않는 일을 옳은 일이라 생각하며 내는 열성과 헌신도 하나님은 인정하실까요?(9:1-2)

 

사울은 그릇된 신앙을 옹호하기 위하여 힘과 열성으로 가득차 있었다. ... 바울은 정직한 마음으로 자기가 연약하고 무지한 광신자들을 핍박하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그는 자기가 기만을 당하고 현혹된 자로서 멋모르고 흑암의 왕자의 깃발을 따르고 있는 자라는 것은 미처 깨닫지 못하였다(원고 142, 1897) .

진리를 거역하는 마음은 모든 사물을 왜곡된 빛 가운데서 본다. 그것은 원수의 올가미에 걸려서 사물을 보되 원수의 빛 가운데서 보기 때문이다. 다소의 사울이 이런 사실의 본보기가 된다. 그는 불신자가 될 도덕적 권리를 가진 것은 아니었지만 하나님의 권고보다는 오히려 사람들의 의견을 받아 들이기로 하였다. 그도 메시야를 가리켜 보이는 예언의 말씀들을 갖고 있기는 하였지만 사람의 말인 랍비들의 어록을 더 좋아하였다. 그 자신의 지혜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고 그의 보내신 자 예수도 알지 못하였다. 후에 그는 그의 경험을 되풀이 해서 말하면서 그는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는 많은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하였다. 사울은 믿지 않는데도 정직하였고, 아무런 가식이 없었다. 예수님은 도중에서 그를 붙잡으시고 그가 어느 편에서 일하고 있는가를 보여 주셨다. 그 핍박자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받아들였고, 불충성의 길에서 돌아섰다. 사울은 자기를 사단의 길로 행하게 하여 땅에서 가장 귀한 사람들, 세상이 감당치 못할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고 죽는데에 내어 주게 하였던 불신을 무관심하게 취급하지 않았다. 자기의 판단의 착오는 용서받을만 하다고 변명하지 않았다. 회심하고 난 뒤 오랜 후에 그는 자기 자신을 죄인들 중에 괴수라고 하였다. “나는 사도들 중에 가장 작은 자.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로라고 하였다. 그는 양심에 받은 거짓된 인상을 충실히 따른 결과로 그가 행한 잔인한 행동을 조금도 변명하지 않았다(원고 9, 1898).

 

3. 사울이 언제 예수님을 ( )한 적이 있나요? 왜 예수님께서는 사울에게 자신을 ( )한다고 말씀하셨을까요?(9:4)

이제 사울은 예수의 제자들을 박해함으로 실은 사단의 일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정의와 의무에 대해 가졌던 그의 확신은 모두 제사장들과 관원들에 대한 맹신에 크게 기초되었음을 알았다. ... 하늘의 빛이 비추이고 있는 그 시간, 사울의 마음은 놀랍도록 신속하게 움직였다. 그는 성경의 예언을 깨달았다. ... 그리스도께서는 여기에서 당신을 당신의 백성과 동일시하고 계신다. 사울은 예수를 따르는 자들을 박해함으로써 직접 하늘의 주를 공격한 것이었다. 사울은 그들을 대적하여 거짓되이 비난하고 증거함으로써 세상의 구주를 대적하여 거짓되이 비난하고 증거한 것이었다.”(행적, 116-117)

민족들에게서 그리고 이방인 가운데서 미천한 자들이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의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는 구주의 입술에서 나오는 말씀을 들을 때 얼마나 놀랍고 기쁜 일이 될 것인가! 그분을 따르던 자들이 칭찬하시는 당신의 말씀을 듣고 놀라움과 기쁨으로 쳐다보는 것을 바라보실 때 무한하신 사랑의 소유자이신 그리스도의 마음은 얼마나 기쁘실 것인가!”(소망, 638)

하나님의 날에, 하나님이 구원할 기회를 주신 사람들을 심문하실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구실을 붙여 말하기를 원하였으며, 그 일이 자기들에게 이익이 되지 않으면 그 선한 일을 떠맡으려고 하지 않는다. 선행의 기회를 거절한 사람들은 예수께로부터 이런 말씀을 듣게 될 것을 나는 보았다.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이사야 58장을 읽기 바란다.”(2증언, 33)

 

4. 사울은 예수님의 목소리를 듣고 알아듣고 대답하였는데 같이 있던 사람들은 ( )만 듣고 알아듣지 못했다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왜 사울은 보지 못하게 되었을까요?(9:7-8)

 

하나님을 섬기고 있노라고 생각하면서 진리를 대적하는 일에 힘을 다 쏟고 있는 동안 실상 그는 그리스도를 핍박하고 있었다는 것을 바울이 알았을 때 그 부끄러움이 어떠하였겠는가? 구주께서 바울에게 영광의 밝은 빛 가운데 계신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셨을 때 그의 마음은 자기 자신과 그가 행한 일에 대한 혐오감으로 가득하였다. 그리스도의 영광의 능력이 그를 죽여 없앨 수도 있었지만 바울은 희망에 사로잡힌 자가 되었다. 그는 그가 모독해 온 그분의 임재의 영광으로 인하여 육신적으로는 장님이 되었지만 그것은 그로 하여금 영적 시력을 갖도록 하기 위함이었고, 그의 지각을 마비시키고 우둔하게 만든 영적 혼수 상태에서 깨우기 위함이었다. 일깨움을 받은 그의 양심은 이제 스스로를 책망하는 힘이 되었다. 그가 열렬히 행한 일과 하나님의 사자들을 통하여 그에게 비추어 주셨던 빛을 완강히 거절한 것 등은 이제 그의 영혼을 정죄하였으며, 그의 영혼에는 쓰라린 후회의 마음이 가득하였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을 의로운 사람으로 생각지 않았고, 그의 사상과 정신과 행동은 율법으로 말미암아 정죄를 받았다. 자신을 볼 때 그가 핍박해 온 구주가 없으면 완전히 잃어버린 바 된 죄인이었다. 눈이 멀어 있던 날 동안에 그는 주야로 반성의 시간을 가졌고, 의지없고, 소망이 전연 없는 자신을 그리스도께 내어 맡겼다. 그분만이 그를 용서하실 수가 있었고, 그분만이 그에게 의를 입혀주실 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원고 23, 1899).

 

5. 예수님께서 직접 사울에게 가르치실 수 있었는데 어떤 이유로 번거롭게 ( )를 시켜서 사울에게 안수하게 하고, 가르치며 침례를 주게하는 그런 과정을 거치게 하셨을까요?(9:10-17) 그것은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이와 같이 예수께서는 당신의 조직된 교회의 권위를 시인하셨고 사울을 지상에서 당신이 임명하신 대리자들과 연결시키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이제 세상에서의 당신의 대표자로 교회를 가지셨고, 그 곳에 회개하는 죄인을 생명의 길로 인도하는 사업을 위탁하셨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빛과 경험에 대해 지상에서 그분이 인정하시는 제자들과 상관없이 그리스도에 대해서만 책임이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예수께서는 죄인들의 친구이시므로 그들이 근심할 때에 마음 아파하신다. 그분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계시지만 인간의 계몽과 구원을 위하여 당신께서 정하신 방법을 존중히 여기시어 당신께서 세상의 빛의 통로로 만드신 교회로 죄인들을 인도하신다. 무지한 죄과와 편견 가운데서 사울이 그가 핍박하던 그리스도에게서 계시를 받았을 때에 그는 세상의 빛인 교회와 직접 교통하도록 조치되었다. 이 경우에 있어서 아나니아는 그리스도를 대표하며, 또한 그분의 대리자로 임명을 받은 지상의 그리스도의 목사들을 대표한다. 아나니아는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 사울의 눈을 만졌다. 그는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 손을 사울에게 얹었다. 그리고 그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에 사울은 성령을 받았다. 이 모든 일이 그리스도의 이름과 권위로 이루어졌다. 그리스도는 샘이시며, 교회는 그것을 전달하는 통로이다.”(행적, 122)

 

 

내 삶에 적용

1.

2.

기억할 성구 정하기 (절이나 구 단위로 기억할 성구를 기록하기)

 

 

기도제목과 기도

1.

2.

3.

 

나눔 대상 (문자, 전화로 어떤 친구에게 말씀 나눌 것인가 결정하기 / 밴드나 카톡에 감동 나누기).

 

 

 

 

질문 / 열성을 가진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부러웠던 적이 있나요? 어떻게하면 그런 열성을 가질 수 있을까요?

 

마치는 이야기

율리우스(로마교황 337-352 AD)는 다음과 같은 꿈을 꾸었다.

어느 날 한 사람이 율리우스를 찾아왔다. 그래서 율리우스는 자기 품에 열심히 있는 것을 자랑하였다. 그 사람은 그에게 열심을 보여달라고 하였다. 그래서 그는 가슴에서 열심덩어리를 꺼내어 그 사람에게 주었다. 그러자 그 사람은 율리우스의 열심을 저울에 달아보더니 100드라크마라고 하였다. 무척 기뻐하는 율리우스 앞에서 그 사람은 율리우스의 열심덩어리를 뜨거운 물에 넣고 녹였다 굳혔다 하면서 그 구성 성분을 밝혀 냈다. 야심이 25 드라크마, 의심이 19 드라크마, 명예심이 30 드라크마 등등으로 예수에 대한 사랑은 5 드라크마도 채 안되었다. 그는 이 같은 사실을 알고 너무나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지 못하였다.

 

 

 

 

 

 

그리스도인적 열성은 원칙을 따르는 것이며, 발작적인 것이 아니다. 이 열성은 진실하고 심각하고 강한 것이고 온 성품을 다하여 도덕적 감각을 활용하도록 분기시키는 것이다. 영혼 구원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관심은 가장 중요한 사건이다.”(마라나타, 126)

 

9:1-19 SDA 성경 주석

1. 제자들을 대하여. 계속된 핍박으로 생긴 희생자들의 명단이 언급되지는 않지만, 후에 바울이 고백한 대로 “[성도를] 죽일 때에 내가 가편 투표를 하였(26:10)는 말을 통해, 당시 스데반이 죽임을 당한 유일한 사람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스데반이 죽을 때 사울이 보인 열성은 그가 산헤드린 회원으로 선출되는 데 기여하였고(사도행적, 102), 곧이어 예루살렘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추적하도록 대제사장들에게 받은 권위로 무장하게 되었다. 사마리아인들이 교회에 용납되었다는 것(참조 8:1 주석)이 예루살렘에 알려졌다면, 유대인들의 증오는 의심할 여지없이 격렬해졌을 것이다.

여전히. 헬라어 에티(eti). “아직.” 9장을 8:3과 연결시킨다. 교회가 예루살렘 외부로 확장되는 동안(8:4~40) 사울은 수도 주변과 내부에서 핍박을 계속했다.

위협과 살기. 박해자의 열성은 강렬해져서 증오하는 가르침을 말살하기 위해 극단적인 행동도 불사하지 않으려 한다. 바울은 스스로 22:426:9~11에서 이를 시인한다. 그는 교회를 유린하는 데 자기가 맡았던 지독한 역할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초기 교부들은 베냐민은 물어뜯는 이리라 아침에는 빼앗은 것을 먹고 저녁에는 움킨 것을 나누리로다”(49:27)라고 한 야곱의 말과, 베냐민 지파임을 자랑으로 여기고(3:5) 자기 지파의 위대한 영웅이자 왕인 사울의 이름을 지닌 이의 행동 사이에서 반()예언적 평행을 보았다.

등등하여. 헬라어 엠프네오(empneo-). “숨을 들이쉬다또는 입김을 내뿜다.” 비유적으로 말해서, 그리스도인들을 체포하고 학살하는 것은 사울이 호흡하는 공기나 다름없었다. 셈족은 종종 분노의 감정을 호흡과 결부시켰다.

대제사장. 안나스 혹은 가야바(참조 4:6 주석). 두 사람 다 사두개인이었지만, 사울은 엄격한 바리새인인 것을 자랑으로 여겼다(26:5). 하지만 사두개인과 바리새인의 자연스럽지 못한 동맹(참조 제10, 56~58)도 이 단호한 박해자를 단념시키지는 못하였다. 전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항하여 형성되었던 사두개인과 바리새인 간의 제휴는 그분의 추종자들에 대항하여 다시 이루어졌다.

 

2. 다메섹.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로 꼽힌다. 전승에 따르면 이곳은 아벨이 살해된 현장이다. 요세푸스(Antiquities . 6. 4 [145])는 셈의 손자인 우스가 이 성읍을 건설했다고 여긴다(참조 제1, 248). 아브라함의 역사에서는 그의 청지기 엘리에셀의 출생지로 나타난다(15:2). 다윗은 이곳에 수비대를 두었으나(삼하 8:6), 르손의 지배 아래 솔로몬 반대 세력의 중심지가 되었다(왕상 11:23~25). 다메섹 강 아바나와 바르발은 문둥병자 아람(수리아)의 군대장관 나아만의 눈에 이스라엘의 어느 강보다 좋아 보였다(왕하 5:12). 이곳은 아람 왕국과 이스라엘 및 유대와의 동맹과 전쟁의 중심지였고(왕하 14:28; 16:9, 10; 1:3, 5), 에스겔의 기록에 따르면, 두로와 물품, 포도주, 흰 양털을 무역하였다(27:16, 18). BC 333년에 마게도냐 장군 파르메니온(Parmenion)이 알렉산더 대왕을 위해 이 도성을 점령했으며, BC 64년에는 로마 장군 폼페이우스(Pompey)가 점령했다. 사울의 회심 당시 이곳은 로마의 수리아(Syria) 총독 비텔리우스(Vitellius)의 관할 아래 있었다. AD 37년 디베료(Tiberius)가 죽었을 때, 비텔리우스는 서둘러 로마로 갔고, 나바태아인(Nabataeans)의 왕 아레타 (Aretas )가 다메섹의 통치권을 장악하고 그곳을 다스렸다. 이로 인해 사울은 이 도성에서 빠져나갈 당시 문제에 봉착하였다(고후 11:32).

다메섹은 수리아 사막에 오아시스를 형성했다. 동 레바논(Anti-Lebanon) 산맥의 눈 녹은 물이 흘러들어 이루어진 아바나 강은 그 지역을 적시고 매우 비옥하게 만들었다. 이 도성은 예정된 수도라는 말로 적절하게 묘사되었다. 이곳의 주민은 주로 아람인이었지만, 유대인 거주자들도 상당수 있었다. 본문의 내용(9:2, 14)은 주민 가운데 주의 제자들”(1)이 많았음을 암시한다. 이들 중 다수는 예루살렘과 그 주변에서 일어난 핍박을 피해 온 피난민이었고, 따라서 지역 회당들은 의심할 여지없이 예루살렘 산헤드린의 포고령을 집행하도록 요청받았을 것이다. 누가는 사울이 교회에 대항하는 다음 보복 대상으로 왜 이곳을 택했는지 설명하지 않지만 다음과 같은 추론이 제기될 수 있다. (1)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그리스도인들은 유대 지방에서 상당한 거리에 있는 이곳으로 피난했다. (2) 다메섹의 시민 가운데 그리스도인 회심자들이 있었다. (3) 다메섹이 확장 일로에 있는 교회의 외곽 중심지가 되었을 수도 있다. (4) 사울이 유대 당국자들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고, 그리스도인을 대항하는 데 그들의 협력에 의존할 수 있었다.

회당. 이곳은 국제적인 도성이었고, 따라서 각 나라에서 온 유대인들이 살았을 것이다. 예루살렘에서처럼(참조 6:9 주석) 유대 동족들은 자신들의 회당을 세웠을 것이다. 당시 다메섹에는 30개 내지 40개의 회당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여전히 그리스도인들은 회당에 신실하게 참석하고 있었고, 따라서 사울이 바로 그들을 잡으러 가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공문. 사울의 권세와 위임”(26:12)을 정한 문서들. 이는 로마가 도주한 유대인들을 송환하는 권력을 대제사장에게 부여함으로써 유대 당국자들과 협력했음을 드러낸다. 이 권세는 아마도 BC 56년경부터 주어졌을 것이다(Josephus Antiquities xiv. 8. 5 [146~ 148]; 참조 마카베오115:15~24).

청하니. 사울 자신을 위해 청하니.” 산헤드린으로 승진하는 것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 도를 좇는 사람. 그 도에 속한 자들.” “라는 단어는 초기 시대에 그리스도교 신앙을 지칭하는 동의어로 나타난다(참조 19:9, 23; 22:4; 24:14, 22). 누가의 이름”(5:41), “말씀”(4:4; 8:4; 14:25), “구원의 길”(16:17), “주의 도”(18:25)에 대한 용례와 비교해 보라. 이 용어는 그리스도가 자신을 ”(14:6)이라고 선포한 것 또는 좁은 ”(7:14)에 대한 그리스도의 언급에서 유래되었을 것이다.

무론 남녀. 예상 희생자 가운데 여성을 포함시킨 것은 사울이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품은 격분의 강도를 강조한다(참조 22:4).

예루살렘으로. 그리스도인들의 죄목이 지방 법정의 사법적 관할권을 넘어서서(참조 마 10:17 주석) 예루살렘 산헤드린(참조 제10, 75, 76)에 회부해야 했음이 사울의 임무 가운데 암시되어 있다. 제사장의 권세가 매우 커서(위의 공문에 관한 주석을 참조하라) 유대 당국자들에게 외국 땅에서도 원하는 자들을 체포하는 일이 허용되었다.

 

3. 행하여. 사울과 그의 일행이 어느 길로 갔는지 지금은 알 수 없으나,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적어도 두 개 있었다. 하나는 애굽에서 다메섹에 이르는 대상(隊商)들의 주요 노정이었는데, 이 길은 팔레스타인 해안선을 따라 평행으로 놓여 있었고 갈릴리 호수 위쪽에서 요단강을 건너기 위해 동쪽으로 꺾어졌다. 다른 한 길은 사마리아까지 이르러 갈릴리 호수 남부 요단강을 건너 가다라(Gadara)까지 횡단한 뒤 북동쪽으로 다메섹에 이르는 길이다. 1주일에 240킬로미터를 갈 수 있었을 것이다.

다메섹에 가까이. 사울이 계시를 본 장소는 알려져 있지 않다. 상반되고 근거 없는 전승들은 각기 다른 네 곳을 지적한다. 그러나 그곳은 다메섹에 비교적 가까웠을 것인데, 이는 그의 일행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8; 참조 사도행적, 117)갔기 때문이다.

사도행전은 다메섹 가까이에서 이제 발생하려는 사건에 대해 세 개의 기사를 기록하고 있다. 성경의 평행 기사들에 나타나는 사소한 차이에 대해서는 마태복음 제3장에 대한 추가적 설명을 참조하라. 아래의 도표는 세 기사에 나타난 주요 사항을 비교하고 있다.

비추는지라. 더 정확히 말해 번쩍였다.”22:626:13은 이 시각이 정오라고 밝히고 있다. 동방의 한낮의 태양 광선도 눈부셨지만, 후에 바울은 하늘로부터 온 그 빛을 해보다 더 밝은 빛”(참조 26:13 주석)이었다고 말한다. 이 광채 가운데서 바울은 영광스럽게 된 그리스도를 너무도 선명하게 보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부활 후 주님을 바라보는 특권을 받은 사람들 가운데 자신을 포함시킨다(9:17; 고전 9:1; 15:8; 사도행적, 115). 출현한 모양에 대해 말하자면, 스데반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모습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럽다(참조 7:55, 56 주석).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라고 한 순교자 스데반의 말은 불 같은 열성을 지닌 바리새인인 사울에게는 신성모독처럼 보였다. 그런데 바로 그 사울이 성부의 영광 중에 있는 인자를 본 것이다. 사울의 동행자들은 음성을 들었으나 말소리를 분별하지는 못했다(참조 22:9; 참조 9:7 주석). 그들은 빛을 보았으나(22:9), 말하는 그분의 형상을 감지하지는 못했다(참조 12:29 주석). 이런 세부 사항들은 사건의 실재성을 증명한다.

 

4. 엎드러져. 하늘에서 비친 빛에 압도되어 여행자들은 모두 땅에 엎드러졌지만(26:14), 누가는 여기서 사울만 언급한다. 여행자들 중 그 누구도 말 위에 있었다는 증거는 없다.

들으매. 9:722:9의 비교는 사울이 그에게 말한 목소리를 듣고 이해한 반면, 그의 일행은 무슨 말이었는지 이해하지 못한 채 소리만 들었음을 시사한다(참조 9:7 주석).

사울. 지금까지 기사에서는 사울의 이름이 헬라어 형태인 사울로스(Saulos)로 언급되었다. 그러나 이곳과 9:17; 22:7, 13; 26:14에서는 히브리어 형태인 사울(Saoul)이 사용되었다. 이것은, (1) 26:14에 나타난 대로 히브리(아람) 방언으로 말했던 예수(참조 제1, 30)(2) 유대인이기 때문에 히브리어(아람어)로 말했을 아나니아가 실제로 사용한 단어가 무엇인지를 반영할 것이다. 하나님이 자신의 뜻을 전달할 때 이름을 반복하여 부르는 것에 대해서는 창 22:11; 삼상 3:10; 23:37; 10:41; 22:31을 참조하라.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그리스도가 박해자에게 던진 통렬한 질문이다. 이것은 그의 행동의 기초에 도전하는 질문이며, 따라서 그가 그렇게도 잔혹하게 핍박했던 분을 알지 못했음을 드러냈다. 그리스도가 자신을 제자들과 너무나 동일시한 나머지 그들의 고통이 자신의 고통이 된다고 한 사실을 주목하라(사도행적, 117). “그들의 모든 환난에 동참”(63:9)하며, “너희를 범하는 자는 그의 눈동자를 범하는 것”(2:8)으로 여겨졌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행한 것을 자신에게 행한 것으로 여겼다(10:40).

 

5. 주여 뉘시오니이까. 아직 사울은 라는 단어를 신약에 나타난 온전한 의미로 사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것은 경외심에서 나온 자연스러운 발언이었다(참조 요 1:38 주석). 하지만 사울은 신적 존재를 어렴풋하게나마 감지하고 라는 말을 사용하여 경외심을 표했다.

네가 핍박하는. 앞에 나온 라는 대명사와 마찬가지로 도 헬라어 구문상 강조하는 표현이다. 사랑과 능력과 영광으로 옷 입혀진 그리스도와, 핍박하는 자였으나 이제는 엎드려 두려워하는 사울이 극명하게 대조되어 있다.

예수. “나사렛 예수혹은 나사렛 사람 예수라는 독법을 지지하는 몇몇 본문상의 증거(참조 20)가 있다. 하지만 이것은 바울 자신의 이야기에 나오는 22:8에서 삽입되었을 것이다. 나사렛 예수는 스데반을 고소하던 자들이 경멸조로 사용했던 이름(6:14)이며, 사울이 남녀들에게 모독하도록 강요했던 바로 그 이름(26:11; 참조 9)이다. 사울에게 나타난 천상의 존재는 그 이름을 사용함으로 자신이 명백하게 그리스도임을 밝힌다. 박해자는 굴복하고야 말았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깨달음은 사울이 회심한 시점과 그의 광적인 핍박의 종언(終焉)을 나타낸다. 그는 자신의 스승 가말리엘이 전에 예수를 핍박하는 일이 하나님을 대적하는일일지도 모른다고 지적했던 사실(5:39)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참조 22:8; 26:15 주석.

[고생이니라]. (이 구절이 개역한글판에는 생략되어 있음 - 역자 주). 본문상의 증거(참조 20)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라는 구절이 생략된 것을 입증한다. 그렇지만 이 구절을 지지하는 본문상의 증거(참조 20)26:14에 나타난다. 이 구절은 많은 라틴어 본문의 9:5에 나타나지만, 헬라어 필사본들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제임스왕역을 번역할 때 사용한 헬라어 성경에 이 구절이 존재하는 것은 에라스무스(참조 제10, 105, 106)가 헬라어 신약본을 출판하는 과정에서, 라틴어 본문을 헬라어로 번역하면서 이 구절을 삽입했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이 구절에 대해서는 26:14 주석을 참조하라.

6. [그가 떨며]. 본문상의 증거(참조 20)그가 떨며 놀라 가로되 주여 제가 무엇을 하기 원하시나이까 하니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제임스왕역에는 이 구절이 포함되어 있음 - 역자 주)이라는 구절이 생략된 것을 입증한다. 반면에 22:10에 나타난 주여 무엇을 하리이까라는 사울의 질문은 적절한 본문상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 5절 후반부와 같이(참조 9:6“[고생이니라]”), 본 구절은 어떤 헬라어 필사본에서도 발견되지 않으며, 명백히 에라스무스가 라틴어 불가타역에 삽입한 과정을 통해 제임스왕역에 포함되었다.

일어나. 사울은 넘어졌던 곳에 계속 엎드러져 있었다.

성으로 들어가라. 이는 사울과 그와 같이 가던 사람들이 다메섹 근처에 있었음을 시사한다(참조 3).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26:16~18에서 바울은 자기에게 주어진 그리스도의 지시를 더 자세히 보도한다. 여기에 나타난 누가의 기록은 더 간단하다. 15~17절에서 아나니아를 통해 추가적인 지시가 주어진다.

 

7. 사람들. 사울에게는 박해할 권한뿐 아니라 다수의 보좌관도 주어졌다. 분명 이것은 다메섹 도성에서 그리스도교를 송두리째 뿌리뽑으려는 계획이었을 것이다.

소리만 듣고. 헬라어 아쿠온테스테스 포네스(akouonteste-s pho-ne-s). 얼른 보기에 이 진술은 동행자들이 소리는 듣지 못하더라”(포넨 우크 에쿠산[te-npho-ne-n ouk e-kousan])라고 바울이 말한 22:9의 기록과 모순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두 기록을 주의깊이 연구해 보면 이런 외관상의 모순을 설명하는 데 도움을 얻을 수 있다. “듣다라는 뜻의 동사 아쿠오(akouo-)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의 능력(참조 마 11:15; 13:15)이나, 들은 것을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의 능력(참조 막 4:33; 고전 14:2)을 가리킨다. 본 구절에서 소리”(포네스[pho-ne-s])라고 번역된 단어는 소유격이다. 헬라어에서 이것은 사울의 동행자들이 목소리만 듣고, 말해진 것을 이해할 수는 없었음을 가리킨다. 22:9에서 소리”(포넨[pho-ne-n])로 번역된 단어는 대격이며, 따라서 이것은 부정어 못하다와 함께 사용되어 그들이 소리를 듣고도 말은 뚜렷하게 이해할 수 없었음을 의미한다(참조 9:4. 여기서 누가는 알아들은 사울에 대해 말하면서 대격을 사용하여, “[소리를]들으매”[에쿠센 포넨]라고 말한다). 이 설명은, 22:9에도 사람들이 빛은 보았다고 되어 있는 반면, 본 구절에는 그들이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라고 되어 있는 사실로 더욱 뒷받침된다. 그들은 눈부신 빛을 보았지만, 그들의 시력은 빛 가운데서 사울에게 나타난 그분을 식별할 정도로 명확하지 못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들이 목소리는 들었지만, 알아들을 정도로 명확히 듣지 못했다고 이해하는 것이 이치에 맞다.

아무도 보지 못하여. 그들은 천상의 빛(22:9)을 보았지만 사울이 본, 빛 가운데 휩싸인 거룩한 형상은 인식하지 못하였다.

말을 못하고. 그들의 경험이 자신들의 지도자가 겪은 경험보다 덜 강렬했는데도, 그들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섰더라. 그들 또한 엎드러졌다(26:14). 아마도 그들은 사울보다 먼저 일어났던 것 같다.

 

8. 눈은 떴으나. 눈을 뜨고 있었지만 볼 수 없었다.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그는 천상의 빛의 눈부신 영광으로 눈이 멀었다(참조 22:11). 눈먼 것은 그가 본 것이 단순한 환각이 아니었음을 증명하였다. 당사자인 사울에게는 눈멂이 영적인 의미를 지녔을 것이다. 그는 자신을, 분명하게 본다고 자랑하는 소경의 인도자로 여겨왔다. 이제 그는 한동안 내적 및 외적 빛이 자신에게 비칠 때까지 눈멂을 받아들여야 했다. 새로 태어난 영혼은 마치 언어가 아닌 울음으로 빛을 향해 부르짖는 아이처럼되어야 했다.

일부 주석자들은 이 경험이 그의 시력에 영구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증거를, 그가 통상 편지서들을 받아쓰게 했다는 점(참조 살후 3:17), 그가 기록할 때 큰 글자를 사용했다는 점(참조 갈 6:11 주석) 그리고 그를 치라고 명령한 대제사장을 알아보지 못했다(참조 행 23:2~5)는 사실에서 찾는다. 그의 육체의 가시가 무엇인지에 관한 여러 이론 가운데 가장 그럴듯한 것은 그것을 발작적 통증이 수반된 안질로 보는 것이다(참조 고후 12:7 주석). 이런 가정에 근거하여, 갈라디아 교인들이 가능하다면 그들의 눈이라도 빼서 바울에게 주려고 했던 간절한 소원은 각별한 의의를 지닌다(참조 갈 4:15 주석).

끌려. 그의 동행자들의 시력은 비교적 영향을 받지 않았다. 아마도 그들은 강렬한 영광을 직접 쳐다보지 않았거나, 충만한 광채가 그들 위에는 비추지 않았을 것이다. 어느 경우든 그들은 손을 잡아끌며 수장으로 출발했던 사울을 인도할 수 있었다. 사울의 자만은 그때 굴욕으로 바뀌었다. 그의 임무는 이미 다메섹에 알려졌고, 제사장 무리는 그의 도착을 열렬히 기대한 반면 그리스도인들은 두려워하고 있었다. 바야흐로 그가 왔지만 그 임무는 좌절되었다. 회당들에 갈 공문은 전달되지 않았다.

 

9. 사흘 동안. 양심이 살아난 사울의 영혼 속에서 치열한 갈등이 있었겠지만, 평안을 얻기까지 꼬박 사흘이 필요했다. 게다가 하나님의 영은 두려움에 사로잡힌 마음을 조명하기 위해 이 눈먼 사흘을 활용하였다. 어두운 정적 가운데 사울은 메시야의 예언들을 상기하고, 이 예언들을 나사렛 예수에게 적용하고, 그의 새로운 확신의 빛 가운데 자기의 과거를 판단할 수 있었다. 그의 고뇌가 얼마나 컸겠으며, 용서받기 위한 기도가 얼마나 불타올랐겠으며, 그리스도의 용서의 선물이 얼마나 감미로웠겠는가! 참조 사도행적, 118,.

식음. 금식이 전적으로 참회의 행위는 아니었다. 그의 정신적 고뇌는 일시적으로 정상적인 식욕을 압도해 버렸다. 눈멂의 사흘은 바울에게 자기 성찰과 회개의 기간이었다.

 

10. 아나니아. 이 이름의 의미에 관해서는 5:1 주석을 참조하라. 아나니아는 유대인들에게 흔한 이름이었다. 바울이 그를 율법에 의하면 경건한 사람으로 거기[다메섹에] 사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칭찬을 듣는라고 묘사한 22:12을 제외하고는, 성경에서 이 특정 제자를 언급한 곳은 아무데도 없다. 이런 자질로 인해 그는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지도자와 사울을 향한 주님의 사자가 되는 일이 가능하였다. 그가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되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그는 그리스도의 지상 봉사 기간에 구세주를 따랐거나, 오순절이나 그 이후 유대인 회심자들 중에 속해 있었을 것이다. 그런 뒤 스데반의 죽음 후에 이어졌던 박해로 인해 예루살렘에서 도망할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이것은 단지 추측에 불과하다. 그러나 아나니아가 사울을 방문하기를 꺼려하는 심정을 나타내는 데 사용한 표현으로 보아(9:13, 14), 여전히 예루살렘과 신뢰할 만한 교신을 왕래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박해자 사울이 일으켰던 만행과 다메섹에 온 그의 목적을 아나니아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환상 중에. 아나니아가 환상을 통해 사울을 방문하도록 준비된 것처럼, 사울 역시 환상을 통해 아나니아의 방문을 받도록 준비되었다(12). 환상을 통한 예비라는 점과 베드로와 고넬료(10:1~18)의 예비와의 유사점을 두고, 코니비어(Conybeare)와 하우슨(Howson)은 이렇게 말한다. “아나니아와 사울의 마음이 동시에 예비된 것과 베드로와 고넬료의 마음이 동시에 예비되었다는 점, 베드로가 이의를 제기하고 주저했다는 것과 아나니아가 이의를 제기하고 주저했다는 점, 한 사람은 자기가 이방인과 우정을 가꿀 수 있는지 의혹을 품은 반면 다른 한 사람은 자기가 교회의 원수에게 접근할 수 있는지 의혹을 품었다는 점, 하나님의 뜻이 분명히 알려졌을 때 각각 주저하지 않고 순종했다는 점, 각각 주가 그들에게 뭐라 말할지 알기 위해 기다렸던 바리새인과 백부장의 마음 상태 등이 유비되는데, 사울의 침례와 고넬료의 침례를 이야기하고 있는 사도행전의 연속되는 두 장[9장과 10]을 경건한 마음으로 읽는 이들은 이러한 긴밀한 유사성을 놓치지 않을 것이다”(The Life and Epistles of the Apostle Paul, 94).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이 말은 주의 지시를 수행하려는 아나니아의 자발성을 표현한다. 사무엘(삼상 3:1~10)과 이사야(6:8)의 모본과 비교해 보라.

 

11. 직가. 오늘날 술타니예(Sultaniyeh)라고 알려진 긴 직선 도로가 여전히 고도(古都) 다메섹을 동에서 서로 가로지르고 있는데, 아나니아가 유다의 집에서 사울을 만나기 위해 걸었던 바로 그 길일 것이다. 현재 거리의 고도(高度)가 사울 당시보다 약 30보 이상 높으므로, 사울이 머물렀던 집을 알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거리. 헬라어 뤼메(rhume-). 늘어선 집들 사이로 난 좁은 통행로를 가리킴. 이 명칭은 점차 좀 더 넓은 도로를 가리키는 말로 전용되었다. 그렇지만 이런 거리는 서양의 기준으로 보자면 좁았을 것이다.

유다. 기록은 이 유다가 누구인지, 사울이 왜 그의 집으로 인도되었는지 아무런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전체적인 기사 내용은 주님의 지식과 계획이 얼마나 면밀했는지를 보여 준다.

다소 사람 사울. 이 구절은 성경에서 사도 바울의 출생지를 처음 언급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참조 제7장에 대한 추가적 설명, 설명 2; 230쪽 지도). 다소는 지리적인 위치 때문에 중요한 곳으로 여겨졌다. 이곳은 16킬로미터가량 내륙에 위치했지만, 도성과 바다 사이에 안전한 항구가 있었기 때문에 작은 배가 이 성읍까지 들어올 수 있었다. 도성의 경계 너머로 타우루스(Taurus) 산지가 솟아 있었는데, 길리기아 문(Cilician Gates)으로 알려진 협곡을 통해 소아시아 내륙으로 통하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 고대 도성은 전략적 요충지 말고 다른 것으로도 유명했다. 이곳은 대학가로 이름이 나있었고, 소아시아의 아덴(Athens of Asia Minor)으로도 알려졌다. 이곳의 학자들은 과학 기술로 인해 존경받았고, 이곳의 철학자들 중에는 사울의 견해에 일부 영향을 주었을지도 모르는 유명한 스토아 철학자들도 있었다. 상업 영역에서 볼 때, 사울의 생업이었던 장막 제조업(18:3)이 두드러진 위치를 차지했다는 것 또한 의미심장하다.

기도하는 중이다. 이 표현은 기도의 지속성(참조 살전 5:17)을 가리킨다. 박해자가 다메섹 가까이 이르렀을 때 내뿜었던 위협과 살기 그리고 지금 그가 생활로 삼고 있는 겸비한 회개의 기도에 나타난 극명한 대조가 여기에 나타난다. 사울의 기도에는 과거에 대한 용서, 미래를 위한 빛과 지혜, 이제 부름받은 사역을 위한 능력, 그가 전에 핍박했던 자들을 위한 간구가 포함되었을 것이다.

 

12. [환상 중에]. (이 구절이 개역한글판에는 생략되어 있음역자 주). 본문상의 증거(참조 20)는 이 구절을 그대로 두는 것과 생략하는 것으로 엇갈리게 나타난다. 아마도 사울은 환상 중에 기별을 받았을 것이다. 다메섹 도상에서 자신을 드러냈던 주님이 서로 만나도록 계획된 사람들에게 거의 동시에 환상을 보여 줌으로써 그분의 계획의 성공을 이때 보증했다고 보아도 이상할 것이 없다.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 예수가 아나니아에게 이야기하고 있지만 사울의 관점에서 말하고 있다. 이 표현을 볼 때 아나니아가 당시에 사울에게 알려져 있지 않았음이 분명해진다.

들어와서. 주님이 여기서 아나니아에게 지시를 내린 간접적인 방법을 주목하라. 그분은 환상을 자세히 말하고, 아나니아가 사울을 찾아 시력을 회복시켜 줌으로써 환상을 실현할 것을 고대하고 있다.

 

13.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아나니아는 여기에 암시된 명령에 순종하기를 꺼려한다. 아나니아는 순종적이었지만, 사울의 악명 때문에 인간적인 마음에서 그를 보살피기를 망설였다. 그는 공손하게 주께 간언했다. 이 구절은 아나니아가 다메섹에 살고 있었으나, 예루살렘에서 여기로 이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참조 10절 주석). 이것은 또한 사울이 교회를 맹렬하게 핍박한다는 소문이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었음을 가리킨다. 딱하게도 이런 소문들은 예루살렘에서 이 도성으로 도망온 피난민들을 통해 확인되었다.

성도. 이 용어의 히브리어 배경에 대해서는 시 16:3 주석을 참조하라. 그리고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사용된 이 용어의 의미를 알려면 롬 1:7 주석을 참조하라. 신약에서, 여기에 나타난 이 단어의 초기 용례(참조 마 27:52)를 사울의 교사로 보냄받은 아나니아가 사용했으며, 후에 사도 자신도 이 단어를 매우 자주 사용했다는 것은 흥미롭다(1:7; 15:25; 16:2; 고후 1:1; 1:1; 1:1 ).

적지 않은 해. 참조 8:1, 3; 9:1 주석.

 

14. 부르는 모든 자. 그리스도를 부르는 것은 그분을 믿는 것을 말한다. 참조 2:21 주석; 9:21; 고전 1:2; 딤후 2:22.

권세. 사울이 개인적으로 청한, 문서로 명시된 공식적인 권세를 말한다(참조 1, 2).

 

15. 가라. (제임스왕역에는 “go thy way”[네 길을 가라]라고 되어 있음역자 주). “네 길이라는 구절은 어떤 헬라어 본문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아나니아가 당황해 한 것은 사건의 형편을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님은 이 상황에서 모든 처지를 알았고, 그에 맞게 그분의 종에게 지시하였다.

내 이름을전하기. 이것은 사울을 택한 주님의 목적을 설명하는데, 그는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해야 했다. 다시 말해 그분의 성품을 드러내야 했다(참조 3:16 주석).

이방인. 목록 가운데 이방인이 첫 번째에 놓인 이유는 사울이 노고를 쏟을 분야가 특별히 그들 가운데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참조 롬 1:13, 14; 11:13 주석). 이것은 독실한 유대인으로서 온 세상이 그리스도에 대해 들어야만 한다는 것을 아직 깨닫지 못한 아나니아에게는 깜짝 놀랄 계시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는 대단한 박해자로만 알았던 사람 안에서, 선택받고 훈련받아 세상 도처에 복음을 퍼뜨리는 사역에 다른 어떤 사람보다 더 적합해진 사람을 보고 있다.

임금들. 이 구절은 바울이 아그립바 앞(26:1, 2)과 아마도 네로 앞에서 연설한 것(참조 딤후 4:16 주석)에서 충분히 성취되었지만, 꼭 그 일들만 가리키지는 않을 것이다.

이스라엘 자손들. 사도는 이방인들에게 가지만, 바울은 기회가 닿을 때마다 유대인들에게도 설교하였다(참조 13:5; 14:1; 17:1, 10; 18:4, 19; 19:8).

그릇. 헬라어 스큐오스(skeuos). “그릇”, “기구.” 이 단어는 신약에서 광범위한 의미로 사용되었다(참조 13:48; 8:16; 19:29; 10:11; 9:21; 고후 4:7; 살전 4:4). 고전 작가들은 이 단어를 쓸모 있고 신뢰할 만한 노예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했다. 주님이 이방인을 위한 당신의 은혜로운 뜻을 실현할 도구로서 사울에게 스큐오스라는 단어를 적용한 것도 바로 이런 의미에서이다. “택한”(chosen)에 해당하는 에클로게(ekloge-)라는 단어가 신약에서 처음으로 여기에 나타나는데, 다른 경우에는 모두 택하심”(election)으로 번역되었다.

 

16. 내가보이리라. 아마도 환상을 통해(참조 20:23) 그리스도가 사울에게 전해 주었을 특별한 지시를 가리킨다. 예상된 고통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대업에 착수하는 일을 단념하곤 한다. 하지만 다소 사람 사울에게는 그러한 예상이 오히려 도전이 되었다. 이것으로 과거를 속죄하지 못한다고 해도, 그는 적어도 자신의 회개에 합당한 열매들을 맺을 수 있을 것이었다. 예고된 고난의 성취가 고후 11:23~28에 기록되어 있고, 고후 6:4, 5에는 간단하게 나와 있다. 참조 마 5:10~12; 14:22; 8:17; 딤후 2:12 주석.

 

17. 아나니아가 떠나. 그는 주님의 보증을 받아들이고 즉각적인 순종을 나타냈다.

안수하여. 이 행동에는 두 가지 목적이 있었다. (1) 치료하기 위해서(참조 막 16:18), (2) 성령을 부어주기 위해서(참조 행 6:6 주석). 이 행동은 사울의 환상(9:12)을 확증하고 하늘에서 파송된 방문자임을 확인하는 데 기여하였다.

형제 사울아. 이전의 박해자는 유대 당국과 인연을 끊고,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을 용납할 것이라고 다소나마 기대했을 것이다. 아나니아가 형제라는 명칭을 사용하여 그를 안심시켜 두려움에서 놓이게 하였다. 아나니아는 예수가 다메섹 도상의 환상 중에 이미 사용한 대로(참조 4절 주석) 히브리어(아람어) 형태의 이름(사울[Saoul])을 사용한다.

주 곧예수. 이 합성 명칭은 사울이 천상의 회담자를 지칭하기 위해 이미 사용한 명칭(5)과 그리스도가 자신을 예수”(5)라고 밝힌 것을 결합한 것이다. 이 말은 두려움에 사로잡힌 사울을 안심시켰을 것이다.

나타나시던. 사울이 지금까지 몰랐던 아나니아라는 사람이 다메섹 도상에서 본 계시에 대해 이미 알고 있다는 사실은, 사울 자신이 보고 들었던 것의 사실성을 확증해 주었을 것이다.

나를 보내어. 이것은 바울의 환상과 아나니아의 방문을 연결시켜 준다. 사울은 이때 약속된 지시를 기대할 수 있었는데(6), 자세한 내용이 2:14~16에 나온다.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문자적으로 쳐다보게 하시고.” 즉 네 시력을 다시 얻게 하시고. 여기서 안수하는 것과 시력의 회복과 성령으로 충만해지는 것 사이에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

충만하게. 참조 행 2:4; 4:31; 5:18 주석.

 

18. 비늘. 헬라어 레피데스(lepides). 히포크라테스는 안질을 가리키는 전문 용어로 이 단어를 사용하였다. 사울의 눈멂은 초자연적 현시의 결과로 생겼으므로, 그의 병을 현대 의학 용어로 정확하게 밝히려고 시도하는 일은 무익하다. 그러나 누가가 사울의 상태를 묘사하기 위해 의학 용어를 사용한 것은 이해할 만하다.

다시 보게 된지라. 문자적으로 그가 쳐다본지라.” 시력을 회복했다는 뜻이다.

침례를 받고. 22:16에 있는 자세한 설명은 아나니아가 이 예식에 임하도록 사울에게 권고했음을 보여 준다. 침례가 입교 조건으로 여겨졌음이 분명하다(참조 마 3:6; 22:16 주석). 주님의 환상과 계시도, 개인적인 확신의 강렬함도 사울에게서 침례를 면제시켜 주지는 않았다. 침례는 아마도 나아만의 이야기(왕하 5:8~14)에서 언급된 아마나 또는 바르발강 중 한 곳에서 행해졌을 것이다. 이 예식은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사도행적, 122) 아나니아가 거행하였다.

 

19. 음식을 먹으매. 19절 첫 문장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18절 마지막에 있어야 더 적합한 것 같다. “음식”(meat)이라는 용어에 대해서는 마 3:4 주석을 참조하라. 사울은 사흘 동안의 금식으로 기력이 없었을 것이다.

강건하여지니라. 칼뱅이 말한 대로, “그의 영혼이 힘을 얻고 나서야 음식으로 몸의 원기가 회복되었다.” 그러자 몸과 영혼이 그들 앞에 놓여진 과업을 위해 강건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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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71 2013-12-02
Selected 14. 행 9:1-19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앤드류
2714 2013-12-02
69 13. 행 8:26-40 일어나 광야로 가라!
앤드류
2797 2013-12-02
68 12. 행 8:1-13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앤드류
2785 2013-12-02
67 11. 행 7:51-60 보라 인자가 ... 서신 것을 보노라
앤드류
2624 2013-12-02
66 10. 행 6:8-15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
앤드류
2474 2013-12-02
65 9. 행 6:1-7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을 택하라
앤드류
2540 2013-12-02
64 8. 행 5:17-32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 파일
앤드류
2628 2013-10-14
63 7. 행 4:23-35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전하니라 파일
앤드류
2838 2013-10-05
62 6. 행 4:1-12 모퉁이 돌되신 예수 파일
앤드류
2597 2013-09-29
61 5. 행 3:1-10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파일
앤드류
2991 2013-09-23
60 Chapter 20 The Sabbath 파일
앤드류
2718 2013-09-16
59 제20장 안식일 파일
앤드류
2304 2013-09-16
58 4. 행 2:36-47 성령충만한 교회-칭찬받는 교회 파일
앤드류
2801 2013-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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