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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수 : 4232
2013.12.15 (07:17:03)

사도행전 Tins 17

그리스도인이라 불리움

오늘의 말씀: (개역/NKJV) 11:19-30

19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을 인하여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도를 유대인에게만 전하는데 20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21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다한 사람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22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23저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은 마음으로 주께 붙어 있으라 권하니 24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더라 25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26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27그 때에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이르니 28그 중에 아가보라 하는 한 사람이 일어나 성령으로 말하되 천하가 크게 흉년 들리라 하더니 글라우디오 때에 그렇게 되니라 29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30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내니라

19 Now those who were scattered after the persecution that arose over Stephen traveled as far as Phoenicia, Cyprus, and Antioch, preaching the word to no one but the Jews only. 20 But some of them were men from Cyprus and Cyrene, who, when they had come to Antioch, spoke to the Hellenists, preaching the Lord Jesus. 21 And the hand of the Lord was with them, and a great number believed and turned to the Lord. 22 Then news of these things came to the ears of the church in Jerusalem, and they sent out Barnabas to go as far as Antioch. 23 When he came and had seen the grace of God, he was glad, and encouraged them all that with purpose of heart they should continue with the Lord. 24 For he was a good man, full of the Holy Spirit and of faith. And a great many people were added to the Lord. 25 Then Barnabas departed for Tarsus to seek Saul. 26 And when he had found him, he brought him to Antioch. So it was that for a whole year they assembled with the church and taught a great many people. And the disciples were first called Christians in Antioch. 27 And in these days prophets came from Jerusalem to Antioch. 28 Then one of them, named Agabus, stood up and showed by the Spirit that there was going to be a great famine throughout all the world, which also happened in the days of Claudius Caesar. 29 Then the disciples, each according to his ability, determined to send relief to the brethren dwelling in Judea. 30 This they also did, and sent it to the elders by the hands of Barnabas and Saul.

 

주요 낱말(중요하게 생각되어지는 낱말을 3개 이상 적어보세요.)

문단나누기 / 말씀의 주제 정하기

 

 

묵상을 위한 질문과 말씀나눔(TINS) (각자 질문을 하나씩 만들어보세요.)

 

들어가는 이야기 - 여러분은(사람들은) 어떤 사람을 일컫어 그리스도인이라 부르나요?

1.

2. “( )을 인하여 흩어진 자들대부분이 ( )들에게만 전도하였는데 몇 사람이 ( )에게 예수님을 소개하였습니다. 그 몇 사람들이 그렇게 한 이유가 있었을까요?(11:19-20)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나라에 더욱 가까운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 어두운 죄악 세상 가운데서도 주께서는 당신의 사자들을 그들에게 보내실 많은 귀중한 보석과 같은 사람들을 가지고 계시다. 어느 곳에나 그리스도를 위하여 굳게 설 사람들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어떠한 세상의 이익보다도 하나님의 지혜를 귀중히 여길 것이며, 충실한 빛의 증거자들이 될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강권함을 받아 다른 사람들도 그분께 나아가도록 강권할 것이다.”(행적, 140-141)

3. “( ) 교회가 ( )에 복음이 전파된 소문을 듣고 ( )를 보내었는데 그를 그곳에 보낸 목적은 무엇이었으며, 그는 그곳에서 무엇을 하였나요?(11:22-23)

예루살렘에 있는 신자들이 이 소식을 듣고 매우 기뻐하였다. 그리하여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바나바를 수리아의 수도 안디옥에 있는 교회를 돕기 위하여 파견하였다. 바나바는 그 곳에서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사업이 확장되자 바나바는 바울에게 도움을 청하여 함께 일했다. 이 두 사도는 일년 동안 안디옥에서 함께 일하며 사람들을 가르치고 그리스도교회의 신자를 증가시켰다.”(살아, 301)

사람과 합하고 헤어지는 것은 사소한 일이지만 하나님과 연합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많은 사람들은 교회에서 착실한 교인이 되면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꼭 생각해야 할 한 가지는 나는 주님과 연합하여 그의 진리 안에서 행하고 있는가?”이다. 만일 주님과 연합했다면 그는 곧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께 열성있고 철저한 추종자들이 매우 오랫동안 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66:5; 9:22, 33, 34; 15:18-21; 16:1-3; 딤후 3:1-5, 12 참조). 바나바가 안디옥 교회에 갔을 때에 형제들에게 굳은 마음으로 주께 붙어 있으라”(11:23)고 권면하였다. 필요한 것은 바로 그것이다. 만일 그렇게 한다면 우리는 틀림없이 하나님 자신의 백성과 함께 있게 될 것이다.”(소식, 그리스도의 계시와 실제적 복음>하나님으로부터 떠나감)

 

4. 바나바가 ( )을 찿으러 다소까지 간 행동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11:25)

 

안디옥에서의 바나바의 수고는 크게 축복을 받아서 신자의 수효가 많이 증가하였다. 사업이 발전하자 바나바는 길을 여시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사업을 진전시키기 위하여 적절한 조력자의 필요를 느꼈다. 그래서 바울을 찾으려고 다소로 갔는데, 그는 얼마전 예루살렘을 떠나 전에 잔해하던 그 믿음을 전파하면서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에서 수고하고 있었다(1:23, 21). 바나바는 바울을 찾아 목회 사업의 동역자로서 그와 함께 돌아갈 것을 권유하는데 성공하였다.”(행적, 156)

 

5. 안디옥에서 비로소 ( )이란 별명을 얻게 되었는데 그 이름을 얻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세상 사람들이 안식일교인이라 부리우는 재림교인인 우리들이 느끼는 어감과 비슷한가요?(11:26)

 

제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는 칭호를 얻은 곳도 바로 안디옥이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른 이유는 제자들이 말할 때에나 전도할 때에나 그리스도를 주제로 삼았기 때문이었다. 제자들은 그들이 예수와 개인적으로 사귈 때 일어난 사건들에 대하여 항상 자세히 이야기하였다. 그들은 끊임없이 예수의 가르침과 병자를 고치신 이적과 사귀를 내쫓으신 것과 그리고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리신 일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떨리는 입술과 눈물어린 눈으로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당하신 고민과 배반당하시고 심문과 형벌과 그의 원수들에게 고문과 능욕을 견디신 구주의 인내와 겸손 그리고 당신을 핍박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신 신적(神的)인 동정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 타락한 인류의 대언자로서 하늘에서 행하시는 중보 사업 등이 제자들이 즐겨하는 대화의 주제였다. 그래서 이방인들이 제자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른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제자들은 그리스도를 전하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기도하였다.”(살아, 301)

기도하며 겸손하고 믿음있는 그리스도인들, 저희의 행동으로 모든 사람을 연단하게 할 구원하는 진리를 알리는 것이 저희의 최대의 욕망임을 보여 주는 자들은 주님을 위하여 풍성한 영혼의 수확을 거두게 될 것이다.”(교권, 62) 그리스도인 품성의 이상은 그리스도와 같이 되는 것이다. 우리 앞에는 끊임없는 향상의 길이 열려 있다. 우리에게는 획득해야 할 표적, 도달하여야 할 표준이 있는 바 이 표적과 표준은 선하고 순결하고 고상하고 고결한 모든 것을 포함한다. 품성의 완전함을 향하여 계속적인 분투와 앞과 위로의 끊임없는 전진이 있어야 한다(8T, 63, 64). 그러나 만일 진리 안에 있는 신자들이 진리를 순종하므로 저희 마음을 정결케 하고 그리스도의 사업에 따르는 지식의 중요성과 품행의 세련됨에 대해서 깨달음이 있었다면 지금 한 영혼이 있는 곳에 20명이 있게 되었을 것이다.교회증언 468 (1876)

 

 

내 삶에 적용

1.

2.

기억할 성구 정하기 (절이나 구 단위로 기억할 성구를 기록하기)

 

 

기도제목과 기도

1.

2.

3.

 

나눔 대상 (문자, 전화로 어떤 친구에게 말씀 나눌 것인가 결정하기 / 밴드나 카톡에 감동 나누기).

 

 

 

질문 /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워졌던 경험이 있다면, 그때 어떤 느낌을 받으셨나요? 그리스도인이라 불리워지는 것이 자랑스러우신가요?

 

마치는 이야기

어느 날 밤 비켈 장군은 잠깐 쉬러 그의 방으로 가던 중에 갑단에서 불량배였다가 회심한 한 군인과 마주쳤다.

피곤했지만 그와 짧은 대화를 나누었다.

내일 --- 사관에게 성경을 갖다 줄 수 없겠는가?”

장군님, 그에게는 성경을 갖다 주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 사람에게는 성경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놀란 비켈 장군) “아니, 왜 필요하지 않다는 말인가?”

왜냐하면 아직 이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장군님이나 저에게는 필요하지만 그에게는 아직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장군님 그는 다른 성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장군님이 바로 그의 성경입니다. 그 사람은 늘 장군님을 보고 있습니다. 만일 장군님이 실패하신다면 그리스도도 실패하시는 것이되고 장군님이 그리스도처럼 사신다면 그는 분명히 그리스도를 보게 될 것입니다.”

훗날 이를 회상하며 비켈 장군은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보게들, 그날 밤 나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네. 나는 공적으로나 사적으로 늘 도둑놈, 거짓말쟁이, 스파이, 반역자, 악마 등등의 소리만 들어오며 살아왔었지. 이 소리들은 사라지지 않았어. 그런데 그날 밤 나는 당신이 그리스도처럼 살 때 그리스도도 살 수 있다. 그 남자의 영혼 속에서도 그의 집에서도 그의 마을에서도 또 4천개나 되는 마을에서도. 그리고 당신이 그리스도처럼 살아가는데 실패한다면 그리스도는 다시 한번 십자가에 못 박히실 것이다라는 말을. 이 말을 듣고 내가 어찌 잠을 이룰 수 있었겠나?“

 

크리스천은 기도하며 옳은 일을 행하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한다. 크리스천은 아무리 어려운 처지에 있더라도 무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닐스 홀름버그)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들은 지금 우리가 찬양하는 것보다 더 많은 찬양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우리는 환하게 밝은 그의 사랑을 우리의 생활 속으로 더 많이 가져와야 한다. 우리들이 믿음으로 예수를 쳐다볼 때 그의 기쁨과 평화가 우리의 모습에서 반사된다. ”(화잇주석, 66:16)

11:19-31 SDA 성경 주석

19. 스데반의 일로. 8:1~4에 나타난 대로, 순교자의 죽음은 예루살렘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광적인 핍박으로 이어졌다. 이것은 신자들의 분산을 초래하였다. 빌립은 사마리아와 가이사랴에서 일했다. 다른 사람들은 베니게의 도성인 두로와 시돈 그리고 돌레마이로 갔는데, 아마도 이들은 21:3~727:3에 언급된 교회들을 설립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구브로에는 바나바와 사울의 이후 사역을 위해서 길이 예비되었다(참조 13:4~13). 참조 280쪽 지도.

환난. 사울이 주도적인 역할을 맡았던 핍박을 가리킨다.

흩어진. 이제 이어서 나오는 내용은 8:1~4의 속편이다. 지금까지는 본제에서 잠깐 벗어나, 사마리아인과 에디오피아인에 대한 빌립의 사역, 길리기아인에 대한 바울의 사역 그리고 고넬료와 그의 가족을 위한 베드로의 사역과 관련된 이야기를 했다. 이러한 여담은 곧 이어 나오는 기사 곧 복음을 향한 헬라인들의 회심에 대한 이야기를 위해 독자를 준비시킨다.

베니게까지. 두로와 시돈이라는 중요한 도성이 있었던 지역.

구브로. 바나바의 출생지. 그곳의 주민은 대부분 헬라인들이었다. 구브로 사람들은 아프로디테 즉 비너스가 그곳의 수호여신이라고 공언하였다. 아프로디테 숭배의 중심지는 바보(Paphos)에 있었는데 그 신전의 창기-여사제들의 음란함으로 유명하였다. 금속인 쿠프룸(cuprum) 구리”(copper)라는 말이 이 섬의 이름에서 유래되었고, 수리아에서 가까운 항로에 위치한 구리 광산은 많은 유대인들을 매혹시켰다. 이곳은 그리스도인 순회 전도자들을 통해 복음이 이미 전파되었던 곳들 중 하나였을 것이다(11:19). 또한 오순절에 예루살렘에서 회심한 구브로 사람들 중에 기독교 기별을 고국에 가지고 돌아간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안디옥. 갓 태어난 그리스도 교회가 수리아의 수도와 접촉한 것에 대한 첫 언급이다. 안디옥은 로마 제국에서 로마, 알렉산드리아, 에베소 다음으로 큰 도성이었고, 오랫동안 그리스도인의 중요 거점이 되었다. 아마도 안디옥의 개종자 니골라(6:5)가 자기의 새로운 신앙을 선포하기 위해 귀환했을 것이다. 그곳으로 그리스도교가 들어간 것은 중대한 의미가 있었다. 실루기아(Seleucia) 항구에서 내륙으로 약 24킬로미터 떨어진 오론테스(Orontes) 강변에 위치했고, BC 300년경 셀류쿠스 세 니카토르(Seleucus Nicator)가 건립하여 그의 아버지 안티오쿠스(Antiochus)의 이름을 따라 명명된 안디옥은, 부와 영향력이 있는 곳으로 성장하여 아시아의 주도적인 도성이 되었다. 세상 사람들은 그곳의 학자와 문필가들을 극찬하였다. 키케로(Cicero)는 그들 중 한 사람인 아르키아스(Archias)에게 유명한 연설을 하였다. 유베날리스(Juvenal)는 로마 생활과 기호에 미친 안디옥의 영향을 인식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가 가진 편린(片鱗)이라도 헬라로부터 온 것이 있는가? 수리아의 오론테스 강은 오래 전부터 티베리스 강(Tiber)으로 흘러 들어오면서, 수리아의 방언과 풍습 그리고 피리와 경금현(傾琴絃, slanting harp-strings) 등도 함께 가져왔다”(Satires iii. 62~64; Loeb ed., 37).

안디옥에는 유대인 거류지가 여러 곳 있었는데, 그들을 위하여 헤롯 대왕이 그 도성을 가로질러 대리석 주랑(柱廊)을 건설하였다. 안디옥은 로마의 수리아 행정 장관 즉 총독의 본부였다. 그리스도 교회는 예루살렘이나 가이사랴보다 헬라 문화에 더 가깝게 접촉하는 안디옥으로 들어갔다. 여기서 또한 그리스도 교회는 가장 유혹적이고 저급한 형태의 이교와 맞닥뜨렸다. 다프네(Daphne) 신에게 바쳐진 작은 숲들은 방탕한 우상숭배로 유명했다. 교회가 안디옥을 주요 거점 가운데 하나로 삼을 수 있었다는 것은 놀랄 만한 승리였다.

유대인에게만. 이는 물론 고넬료의 회심이 일어나기 전 혹은 고넬료의 회심이 일반적으로 알려지기 전에, 예루살렘을 떠났던 사람들에게는 예상된 것이었다. 베드로가 그랬던 것처럼, 그들은 그리스도의 예언적 명령이 최대 범위까지 수행(1:8)될 때가 이르렀다는 것을 통보받지 못했다. 유대인만 골라 말한 것은 분명히 베드로와 고넬료에 대한 앞의 이야기와 이어지는 선교사 사역에 대한 진술 모두와 대조되어 언급된 것이다.

 

20.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 이 사람들의 경우, 좀 더 국제적인 배경을 가진 이들이었기 때문에 유대인의 고향이자 편견의 본거지인 팔레스타인의 유대인 중에 있는 이방인에 비해 어울리는 데 아마도 덜 망설였을 것이다. 이 사람들이 누구인지는 짐작할 수밖에 없다. 어쩌면 13:1의 선지자 목록에 나오는 구레네 사람 루기오이거나 그리스도의 제자였던 구레네 사람 시몬일 수 있는데, 시몬이라고 추측할 만한 이유가 있다(참조 마 27:32 주석; 참조 막 15:21). 안디옥에 있는 교회의 설립자들은 알려지지 않은 것이 틀림없다.

헬라인. 본문상의 증거(참조 20)는 주로 헬레니스타이(Helle-nistai)와 헬레나이(Helle-nai)라는 두 가지 독법으로 엇갈리게 나타난다. 헬레니스타이라는 말은 헬라어를 사용하는 유대인 혹은 좀 더 넓은 의미로는 헬라어를 사용하는 사람을 가리키며, 헬레나이라는 말은 혈통상의 헬라인 혹은 신약에서는 좀 막연한 의미로 이방인을 가리키는데, 증거의 비중을 볼 때 전자를 지지하는 쪽으로 기운다. 만약 제임스왕역처럼 헬레니스타이를 채택한다면, 전도자들이 전체로서의 유대인들(그들 중 다수는 수리아인이며 아람어를 사용했을 것임)에게 설교했다기보다는, 특별히 헬라어 사용 유대인들과 개종자들에게 설교했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가정해야 한다. 만약 그렇다면, 그들이 스데반의 발자취를 따름으로 간접적으로 바울을 위한 길을 예비했던 것인데, 이는 전체로서 헬레니스타이가 인종으로서의 유대인과 이방인이었던 헬레나이 사이의 연결 고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체로 다른 증거들은 헬레나이인 헬라인(이방인)으로 읽혀지는 것을 지지하는 쪽으로 기운다. 이를 지지하는 여러 이유가 있다. (1) 헬레니스타이가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누가는 19절의 유대인 가운데 그들을 자연스럽게 포함했을 것이므로, 20절에서 다시 그들을 언급한다면 이로 인한 대조 효과는 전혀 없을 것이다. 누가는 안디옥에서의 전도가 헬라파 유대인인 헬레니스타이를 대상으로 했다는 사실에 주의를 집중시킨 경우가 거의 없었는데, 이는 이미 예루살렘 교회에 그들 중 다수가 있었고(참조 6:1), 아마 이들 헬라인과 구브로인 교사들이 바로 헬라파 유대인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들이 안디옥에 있는 헬라인(이방인)인 헬레나이에게 전도하기 시작했다면 누가의 특별한 언급은 적절한 것이다. (2) 그래서 유대인과 헬레나이 사이에 생긴 대조는 전적으로 자연스러운 것이며(참조 14:1; 18:4), 만약 헬레나이라는 단어가 진짜 원문이라면, 여기서 발전에 대한 필수적인 주의가 주어진 것이다. 다음의 참조 구절들은 수리아 안디옥에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의 존재를 분명하게 암시한다(15:1, 28~31; 사도행적, 155,, 188). (3) 또한 만일 이들이 헬레나이였다면, 회심했을 당시 그들은 전적으로 이교 우상 숭배자들이 아니었을 것이다. 아마도 고넬료처럼 그들 중 일부는 이미 하나님을 경외하고(참조 10:2 주석), 회당의 예배에 참석하고 있었을 것이다(참조 고린도전·후서; 18:4).

본 장에서 헬레나이가 회심한 때가 고넬료의 회심 이전인지 이후인지는 알 수 없는데, 이는 대답을 제공하기에는 정보가 불충분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안디옥에서 여러 달 동안 헬라파 유대인과 기타 유대인들 가운데서 사역이 진행되었으며, 따라서 고넬료 사건으로 비유대인들에게 전도하는 것을 막는 장벽을 제거해 준 분위기가 이미 형성된 후에 구브로와 구레네 사람들이 도착했을 것이다.

말하여. 여기서 사용된 헬라어 동사의 시제는 그들이 전하기 시작했고 계속해서 전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21. 주의 손. 구약에서 하나님이 세상 역사에 직접 관여하는 것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표현이다. 참조 출 14:31: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베푸신 큰 일(“을 뜻하는 히브리어 야드[yad])을 보았으므로.” 애굽 술객들의 진술과 비교해 보라. “이는 하나님의 권능이니이다”(8:19; 제임스왕역에는 이는 하나님의 손가락이니이다라고 되어 있음). 이것은 매우 인격적인 하나님에 대한 진리를 생동감 있게 표현한다.

수다한 사람이 믿고. 이는 교회의 놀랄 만한 증가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다. 참조 9:31; 11:24 주석; 2:47; 4:4; 5:14; 6:7; 8:6, 12.

 

22. 이 사람들의 소문. 즉 안디옥의 이 회심자들에 관한 소문. 만약 새로 회심한 이 사람들이 이방인이었다면, 그들의 회심 소식에 대해 나타낸 예루살렘의 호의적인 승인은 틀림없이 고넬료를 이미 용납했던 승인 덕분이었을 것이다.

바나바를보내니. 이는 안디옥에서의 사역을 강화하고 예루살렘 교회의 승인과 지침을 전달하기 위한 것으로,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로 파송된 것(8:14)과 같은 맥락이다. 바나바가 안디옥에서 진행되고 있던 사역에 동조했다고 알려졌기 때문에 아마도 바나바가 낙점을 받았을 것이다. 그는 사울의 친구였고, 예루살렘에 있던 제자들 일부에게 사울을 소개했으며(9:27), 이방인에 대한 사울의 확신과 소망을 알았음에 틀림없다. 그러므로 사울은 같은 길에서 일할 기회를 환영했을 것이다. 안디옥에서 일하는 선교사들 일부와 같은 지역 출신이라는 사실 때문에 그는 더욱 적임자였을 것이다.

안디옥까지. 바나바는 안디옥으로 가는 길에 다른 회중들도 방문했을 것이다.

 

23. 하나님의 은혜. 3:24 주석-헬라어 카리스(charis). 신약에 약 150번 등장한다. 바울은 신약의 다른 어떤 기자보다 이 의미심장한 단어를 자주 사용했는데, 그의 편지서에만 약 100번 나타난다. 그의 절친한 동료인 누가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서 약 25번 사용하였다. 그러므로 이 두 사람이 사용한 횟수는 신약에서 사용된 총 횟수의 약 6분의 5를 차지한다. “은혜는 결코 사도들이 만들어낸 새로운 단어가 아니었다. 이 단어는 70인역과 고전 및 후기 헬라 문헌에서, 문맥과 관련하여 다양한 의미로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그러나 신약에서는 자주,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특별한 의미가 은혜에 부여된 것으로 보인다. 일차적으로 은혜기쁨과 즐거움을 주는것을 의미하며 따라서 아름다움, 우아함, 사랑스러움, 바라보는 사람을 기쁘게 하는 어떤 것이라는 개념을 지니고 있다. “은혜를 입술에 머금으니”(70인역의 시 45:2; 참조 잠 1:9; 3:22)와 비교하라. 동일한 개념이 신약에 나타나는 몇몇 경우에 들어 있다. 나사렛에서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 그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은 그 입으로 나오는바 은혜로운 말[문자적으로, 은혜의 말씀들]을 기이히”(4:22) 여겼다. 바울은 골로새에 있는 신자들에게 항상 은혜 가운데서”(4:6) 말하라고 권면했다..

기뻐하여. 바나바는 오직 이 새로운 사역에서 자신의 승인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았으며, 교회에 교인들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에게 크나큰 기쁨의 이유가 되었다. 사실 그리스도인의 경험과 사역 전체는 언제나 지속적이고 쇠하지 않는 즐거움이 되어야 한다.

굳은. 바나바는 그들이 시편 기자와 같이 나의 마음이정해졌”(57:7; 108:1)다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랐다.

주께 붙어 있으라. 충성은 예수 그리스도 그분에게 드려져야 하며, 앞 구절에서 지적한 것처럼 굳은 마음으로그분 안에 남아 있어야 한다. 바나바는 안디옥 교인들 위에 임한 하나님 은혜가 이룬 효력의 결과를 보았지만, 모든 참 목사가 아는 바와 같이 그는 사람의 의지 혹은 의지의 부족이 그 은혜를 방해할 수도 있음을 알았다. “한번 구원받으면 영원히 구원받는다라는 말은 옳지 않으며, 사람은 뒤로 물러가 변절하기 때문에 의지의 협력이 성화의 과업을 완성하는 데 필수적이다.

권하니. 혹은 권하기 시작했으니.” 시제는 지속적인 행동의 시작을 암시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24. 착한. 혹은 올바른”(참조 눅 18:18, 19). 바나바에게 쓰인 이 말은 극찬이었으며, 의심할 여지없이 이 사람에 대한 누가의 개인적인 의견이 표현된 것이었다. 누가는 기록에 이런 좋은 점을 남기는 데 아마도 신중했을 것인데, 이는 바나바가 누가의 친구이자 동역자인 다소 사람 사울과 결별해야만 했던 말다툼을 조금 후에 이야기해야 했기 때문이다(15:39).

성령이 충만한. 안디옥의 헬라계 유대인들 사이에서 저명했던 바나바와 같은 성품의 소유자라면 그 도성에 있던 유대인과 헬라인 모두에게 지대한 영향력을 끼쳤을 것이다. 동일한 자격이 스데반에게도 주어진다(6:5). 전도자들이 안디옥으로 왔던 것은 바로 스데반의 죽음 후에 이른 핍박의 결과였다. 그들 중 일부는 스데반을 순교로 몰고 간 그 사역에서 활동적이었던 헬라파 유대인들이었을 것이다.

큰 무리. 21절과 관련된 사역 이후 많은 증가를 암시함. “위로의 아들바나바의 기쁨과 격려 가운데 표현된 것처럼, 예루살렘 교회가 이뤄진 일에 대해 승인한 것은 그리스도를 위한 이 진실한 일꾼들의 열성을 증가시켰을 것이다.

 

25. 바나바가다소에. 이것은 의미심장하다. 이것은 사울이 안디옥에서 진행되고 있던 일에 찬성할 것임을 전제하며, 사울이 그곳 사역을 원조할 적임자라는 바나바의 신임을 보여 준다. 또한 사울이 예루살렘을 떠난 이 후 서신이나 사자를 통해 사울과 어느 정도 왕래가 유지되었음을 암시한다. 추측하건대, 사울은 다소나 그 근처에 머물면서, 그곳과 길리기아의 이웃 성읍에서 복음을 전파했을 것이다(참조 15:41 주석).

사울을 찾으러. 문자적으로 사울을 뒤져내러”(to hunt up Saul). 주님의 현현을 경험했고 이방인들에게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할 택한그릇”(9:15)으로 지정되었던 그는, 이때 안디옥에서 이방인들에게 전파하는 이 새로운 사역을 위해 바나바에게 동참하도록 요청받았다. 의심할 여지없이 그곳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효력을 발하고 있음을 이미 들었기 때문에, 사울은 초청을 수락하였다.

 

26. 교회에. 교회 건물이 아니라 회중을 가리키는데, 3세기가 되어서야 건물들이 교회의 소유에 들었기 때문이다. 관심 있는 사람들은 신자들과 만나 복음 기별을 전적으로 받아들이기가 무섭게 교회 조직으로 편입되었다.

일 년간. 앞선 사례들과는 달리, 여기서는 기간이 정확하게 주어진다. 사울은 다메섹과 예루살렘에서, 말하자면 목숨을 걸고 전파하였다. 안디옥에 있는 교회에서 그는 그의 열심에 어울리는 안정도와 광범위한 기회를 발견하였다.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더 정확하게는 그리스도인이라는 호칭을 받게 되었더라.” 배교자(the Apostate)라고 불린 로마 황제 율리아누스(AD 361~363)는 풍자 형태로 별명을 창안하는 경향이 당시 안디옥 주민의 특성이었다고 언급하였다. 분명히 동일한 경향이 그리스도교가 최초로 나타났던 시기에도 유행하였다. 그리스도인이라는 단어의 첫 음절은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헬라어 크리스토스(Christos)에서 온 것인 반면 마지막 음절은 본래 라틴어인데, 이는 폼페이우스(Pompey)의 추종자들인 폼페이아니(Pompeiani) 같은 단어 및 다른 호칭들과 비교할 만하다. 유사하게 복음서에도 헤롯 당원(헤로디아나이[He-ro-dianai], 22:16)이라는 유사한 용어가 나타나는데, 이는 로마와 관계를 맺고 있음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어쩌면 이교도들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조롱조로 이 호칭을 붙였을지도 모르는데, 루테라니(Lutherani) 곧 루터파라는 용어가 1,500년 이후 루터 추종자들의 적들에 의해 조롱조로 사용되었던 것과 어느 정도 유사하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이 호칭을 자신들에게 붙이지는 않았을 것이고, 이 호칭의 사용은 이 호칭을 지닌 이들이 그리스도 곧 메시야의 추종자들임을 암시하는 것이기 때문에 유대인들이 그들에게 이 호칭을 붙이지도 않았음이 분명하다. 새로운 용어를 사용한 이유는 분명하다. 이들 새 이방인 회심자들이 안디옥 교회에 동참했을 때, 이전의 어떤 이름도 국제적인 전체 조직을 포함하지 못했다. 그들은 모두 더 이상 나사렛인도 갈릴리인도 헬라파 유대인도 아니었으며, 따라서 안디옥 사람들의 눈에는 특이한 혼종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라틴어 어미를 지닌 헬라어 즉 혼종어(混種語)그리스도인이 그들에게 어울리는 것으로 보였다. 처음에는 조롱하는 말이었지만 후에는 영광스러운 이름이 되었다.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은즉, 부끄러워말고”(벧전 4:16).

그러나 전승에서는 이 호칭의 기원을 안디옥의 1대 주교인 유오디우스(Euodius)에게 돌린다. 그곳 교회의 지도자로서 유오디우스의 계승자인 이그나티우스(Ignatius)는 이 호칭을 자주 사용하였다.

 

27. 선지자들이이르니.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2:17)에서 인용되었던 요엘의 예언에 대한 성취로서, 어린 교회에 선지자들이 있었음이 분명하다(참조 행 13:1, 2; 2:20). 그러나 우리는 신약 기록들로부터 이 선지자들의 직무가 무엇이었는지 분명히 알 수 없다. 그들은 성령의 은사를 소유했고, 때때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고 해석하는 일에 종사했으며, 때로는 여기서 아가보가 그랬듯이 미래 사건들을 예언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었다(참조 행 13:1; 15:32; 19:6; 21:9, 10; 12:6; 고전 12:10, 28, 29; 13:2; 14:6, 29~37). 선지자들의 사명은 분명히 사울과 바나바가 안디옥에서 수행하고 있었던 사역에 대해 예루살렘 교회가 부여한 부가적 승인으로 여겨졌음에 틀림없다.

 

28. 아가보. 바로 이 선지자가 후에 가이사랴와 관련된 이야기에 등장한다(21:10, 11).

성령으로 말하되. 21:11의 진술과 비교하라.

천하. 헬라어 오이쿠메네(oikoumene-). 사람이 살고 있는 땅을 가리키는 단어. 2:1; 4:5과 신약의 다른 곳에서, 이것은 로마 제국을 가리키는 데 사용된다.

크게 흉년. 이 흉년은 아마도 요세푸스가 언급한 것으로 보이는데(Antiquities xx. 2. 5), 그는 티그리스(Tigris) 강 동편 아디아베네(Adiabene)의 여왕인 헬레나(Helena)가 예루살렘을 방문하는 동안 어떻게 백성들을 위해 알렉산드리아의 옥수수와 구브로의 마른 무화과를 얻어다가 도와주었는지를 말한다. 이 흉년은 마 24:7에 있는 예수의 예언에 대한 부분적인 성취로서 보여질지도 모른다. 이 사건과 신약 연대기의 관계를 알려면 제12장에 대한 추가적 설명, 설명 1을 참조하라.

글라우디오. (제임스왕역에는 가이사 글라우디오[Claudius Caesar]). 본문상의 증거(참조 20)가이사가 생략됨을 입증한다. 글라우디오의 통치는 AD 41년부터 54년까지 지속되었는데, 이 기간은 빈번한 흉년으로 유명하다(Suetonius Claudius xviii. 2; Tacitus Annals xii. 43).

 

29. 제자들이. 즉 안디옥 교회의 제자들.

그 힘대로. 문자적으로 각각 번영한 대로.” 예언의 영향으로 모금 활동은 흉년이 임하기 전에 이뤄졌을 것이다. 의심할 여지없이 사울과 바나바는 이방인들을 적극적으로 독려하여 후원하도록 했을 것이다. 이것은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15:25, 26)을 위한 모금 활동의 시초로, 후에 바울의 사역에서 매우 두드러졌으며(참조 행 24:17; 고전 16:1; 고후 9; ) 사도가 교회의 유대인 계층과 이방인 계층 사이의 연합을 위한 끈으로 간주했다. 예루살렘의 회심자들은 타오르는 첫사랑에서 나온 관대함(2:45)과 그에 수반된 핍박(8:1)으로 인해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보다 가난의 압박에 더 노출되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흉년이 다가왔을 때, 흉년에 영향받지 않은 지역에 위치한 교회들의 도움에 많이 의존했을 것이다. 안디옥 교회는 다른 교회들에게 훌륭한 모본을 보였다.

 

30. 장로들. 헬라어 프레스뷔테로이(presbuteroi). 문자적으로 연만한 [남자].” 이것은 그리스도 교회의 이 직원에 대한 최초의 언급이다. 그들은 아마도 사도는 아니었을 것인데, 이는 15:2, 4, 6에서 장로를 사도와 구분하여 언급하기 때문이다. 이 후부터 그들은 교회 조직의 두드러진 요소로 등장한다. “장로라는 용어, 넓게는 이것이 언급하는 교회의 직책은 이방인과 유대인 생활 모두에 배경을 두고 있었다. 애굽의 파피루스는 장로들이 지역 주민들의 경제 생활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음을 입증한다. 그리하여 토지 임대와 세금 납부와 관련된 질문들로 인해 그들에게 간청이 들어왔다(참조 J. H. Moulton and G. Milligan, The Vocabulary of the Greek Testament, 535). 소아시아에서 이 용어는 시의회 의원을 가리켰고, 애굽에서는 신전의 사제를 가리켰다(참조 A. Deissmann, Bible Studies, 156, 233). 유대인 생활에서 장로”(프레스뷔테로스[presbuteros])는 지역 회당의 지도자를 가리키는 데 사용되었는데, 이는 테오도투스 명각(Theodotus Inscription)을 통해 입증된다(참조 6:9 주석). 이것은 또한 산헤드린의 평민 의원(히브리어로 즈케님[zeqenim])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었다(참조 4:5 주석). 이렇게 하여 이 용어는 그리스도 교회가 지역 회중 가운데 주요 책임들을 맡은 직원들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될 수 있도록 준비되었다. 이 지역 책임자들뿐 아니라, 예루살렘 교회의 장로들 또한 유대 산헤드린의 즈케님의 지위와 약간 유사한 지위를 점하고 있었을 것인데, 이는 사도들과 함께 그들이 자신들의 회중의 한도에 상관없이 어떤 권위를 가지고 있었다고 15장에 나타나기 때문에 그렇다. 이번 경우에서 안디옥에서 모금된 기금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분배되도록 바나바와 사울의 손을 통해 보내진 대상이 바로 이들이었다.

초기교회에서 장로는 또한 감독이라는 뜻의 에피스코포스(episkopos)로 알려졌는데, 이것은 영어에서 “bishop”이라는 단어로 편입되었다. 역사상 적어도 AD 3세기 이후 장로감독”(bishop)이라는 용어는 교회의 서로 다른 두 직책을 나타냈지만, 신약의 증거는 사도 시대에는 두 용어가 동일한 직책을 가리켰음을 분명하게 지적한다(참조 딤전 3:2~7과 딛 1:5~9; 참조 행 20:28 주석; 참조 빌 1:1). 로마의 클레멘트(Clement of Rome, AD 96년경)는 이 둘을 동일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고(Epistle to the Corinthians 44), 크뤼소스톰(Chrysostom, AD 407년 사망)옛날에는 장로들이 감독관들(혹은 감독들)과 그리스도의 성직자들(혹은 집사들), 감독관들이 장로들로 불렸다고 단언하였다(First Homily on Epistle to the Corinthians 1, in Migne, Patrologia Graeca, vol. 62, col. 183).

야고보의 서신에 의하면 장로의 의무 중 하나는 환자들을 방문하여 그들의 건강 회복을 위해 주님에게 기도하고, 치유를 위해 그들에게 기름을 붓는 것이었다(5:14). 후기의 장로와 감독 직책의 발전 과정에 관한 논의를 보려면 제12권 논문 초기 그리스도 교회장을 참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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