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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01 (14:47:08)

사도행전 Tins21


사도행전 Tins 21.pdf


교회 안의 다툼과 변론


오늘의 말씀: (개역/NKJV) 행 15:1-11


1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하니라

2 바울과 바나바와 저희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에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

3 저희가 교회의 전송을 받고 베니게와 사마리아로 다녀가며 이방인들의 주께 돌아온 일을 말하여 형제들을 다 크게 기쁘게 하더라

4 예루살렘에 이르러 교회와 사도와 장로들에게 영접을 받고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셔 행하신 모든 일을 말하매 5 바리새파 중에 믿는 어떤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 주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6 사도와 장로들이 이 일을 의논하러 모여

7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8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저희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거하시고

9 믿음으로 저희 마음을 깨끗이 하사 저희나 우리나 분간치 아니하셨느니라

10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11 우리가 저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1 And certain men came down from Judea and taught the brethren, "Unless you are circumcised according to
the custom of Moses, you cannot be saved."
2 Therefore, when Paul and Barnabas had no small dissension and dispute with them, they determined that Paul and Barnabas and certain others of them should go up to Jerusalem, to the apostles and elders, about this question.
3 So, being sent on their way by the church, they passed through Phoenicia and Samaria, describing the conversion of the Gentiles; and they caused great joy to all the brethren.
4 And when they had come to Jerusalem, they were received by the church and the apostles and the elders; and they reported all things that God had done with them.
5 But some of the sect of the Pharisees who believed rose up,saying, "It is necessary to circumcise them, and to command them to keep the law of Moses."
6 Now the apostles and elders came together to consider this matter.
7 And when there had been much dispute, Peter rose up and said to them: "Men and brethren, you know that a good while ago God chose among us, that by my mouth the Gentiles should hear the word of the gospel and believe.
8 "So God, who knows the heart, acknowledged them by giving them the Holy Spirit, just as He did to us,
9 "and made no distinction between us and them, purifying their hearts by faith.
10 "Now therefore, why do you test God by putting a yoke on the neck of the disciples which neither our fathers nor we were able to bear? 11 "But we believe that through the grace of the Lord Jesus Christ we shall be saved in the same manner as they."



■ 주요 낱말(중요하게 생각되어지는 낱말을 3개 이상 적어보세요.)


■ 문단나누기 / 말씀의 주제 정하기


■ 묵상을 위한 질문과 말씀나눔(TINS) (각자 질문을 하나씩 만들어보세요.)
이야기 - 교회안에서 다투는 것을 본 적이 있나요? 그런 일이 교회에 있는 것이 이상하지 않는가요?
1.
2. 교회 안에 누구와 누구 사이에 다툼과 변론이 있었으며, 그 다툼의 원인은 무엇이었나요?(행 15:1-2a; 약 3:15-16)


“ 개종자들은 대체적으로 길을 여시는 하나님의 섭리처럼 빨리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였다. ...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에게 교인이 되는 조건으로서 유대인의 율법의 제한과 의식을 의무적으로 부과하지 아니한다면 지금까지 그들을 다른 모든 민족과 구별되게 하였던 유대인의 민족적 특수성이 복음 기별을 받아들인 사람들 가운데서 마침내 사라지게 될 것을 두려워하였다.”(행적, 189) “바울은 그가 개심하기 전에는 자신을 “율법의 의로는”(빌 3:6) 흠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는 개심 후에, 유대인이나 이방인을 불문하고 온 인류의 구속주로서의 구주의 사명에 대해 분명한 개념을 얻게 되었고 또한 산 믿음과 죽은 형식주의와의 차이를 깨닫게 되었다. 복음의 빛 가운데서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고대 의식과 예법은 새롭고 보다 깊은 의미를 갖게 되었다. 그것들이 예시하던 것은 성취되었고 복음 시대에 사는 이들은 그것을 지킬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러나 바울은 여전히 하나님의 불변의 율법인 십계명을 문자 그대로 뿐 아니라 그 정신까지도 지켰다.”(행적, 189-190)

다툼. 헬라어 스타시스(stasis). “지위”, “당파” 또는 “파벌”을 뜻한다. 막 15:7과 눅 23:19에서, 바라바가 주모자가 되었던 민란을 가리키는데 이 말이 사용되었다. 본 절에서 이 단어는 격렬한 변론을 묘사한다.

변론. 헬라어 제테시스(ze-te-sis). “찾는 것”, 따라서 “질문”, “토론”을 뜻하며, 철학적 탐구를 뜻하는 전문용어이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말과 생각에 대하여 다툼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것들은 어떤 목적을 지향하는 것이어야 하고 인간의 마음 속에 있는 반대와 고집을 때려 부수는 것이어야 한다. 이는 마음밭에 진리의 씨가 떨어져서 뿌리를 내리도록 하기 위하여 그들의 마음이 부드럽게 되고 순종하는 자가 되도록 하려 함이다(원고 13, 1888).


3. 안디옥 교회가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취한 방법은 무엇이었으며, 지금도 그렇게 해야할까요?(행 15:2b-4)


“안디옥 교회에서 있었던 할례 문제에 대한 고려는 많은 토의와 논쟁을 초래하였다. 마침내 교인들은 계속된 논의의 결과로 저희 중에 분열이 생길 것을 우려하여, 교회의 몇 책임 있는 사람들을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예루살렘에 보내어 그 문제를 사도들과 장로들 앞에 제시하기로 하였다. 거기서 그들은 다른 교회의 대표자들과 절기에 참석하기 위해 이미 예루살렘에 와 있는 사람들을 만날 것이었다. 모든 논쟁은 총회에서 최종 결정이 날때까지 당분간 중단해야 하였다. 그 후에 전국 방방 곡곡에 있는 다른 교회들은 이 결정을 널리 받아들여야 하였다.”(행적, 190) “당면한 주요 문제를 포함된 여러 가지 주장들로 극복할 수 없는 난관들이 의회 앞에 제시된 듯이 보였다. 그러나 그 결정에 그리스도의 교회의 번영이 달려 있고 만일 해결되지 못하면 교회의 존재까지 위태로울지 모르는 그 문제를 성령은 이미 실제적으로 해결하셨다.”(행적, 192)


4. 변론 후에 베드로가 말한 것의 요지는 무엇인가요? 구원은 어떻게 받는다는 것인가요?(행 15:7-11)


“베드로는 이 말씀의 분명한 해석을 설명하였는데, 그 말씀은 백부장에게 가서 그리스도의 신앙을 가르치라는 권고와 거의 동시에 주어졌다. 이 기별은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으시고 당신을 경외하는 사람들을 모두 받아들이시고 인정하신다는 사실을 나타내었다. ”(행적, 193)“베드로의 설교로 회중은 이방인들을 위해 일한 그들의 경험을 전한 바울과 바나바의 말을 인내심을 가지고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온 무리가 가만히 있어 바나바와 바울이 하나님이 자기들로 말미암아 이방인 중에서 행하신 표적과 기사를 고하는 것을” 들었다. ... 성령께서는 이방인 개종자들에게 의문의 율법을 부과하지 않는 것이 좋음을 아셨으므로 이 문제에 대한 사도들의 생각은 하나님의 성령의 마음과 같았다.”(행적, 194)


생각해 볼 만한 질문들


1. 일으킨 어떤 사람들(주로 바리새인들)과 바울같은 사람이 오늘날 교회 안에도 동일하게 있는데 어느 쪽이 옳은지 틀린지에 대한 판단기준은 무엇이어야 합니까? 이성적으로 판단하는데 꼭 고려해야할 것들도 있나요?


2. 베드로는 이미 하나님께서 계신 하신 뜻을 다시 살펴봄으로 “하나님을 시험” 할 수 있다고 하였는데 우리는 어떻게 하
나님을 시험하고 있나요?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이방인을 위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이미 분명히 나타냈는데도, 이방인의 입교와 관련하여 그분의 뜻을 알기 위해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느냐.” 하나님의 뜻보다 사람의 거부 의사가 더 강해야 하는가? 광야에서 유대인들은 그들을 위해 베푼 여러 기사(奇事)가 있었는데 하나님이 주신 지도자에 대해 불평함으로 하나님을 시험했다(히 3:9). 또한 그리스도를 시험했으며(고전 10:9), 그들의 불복종이 불뱀의 형벌을 초래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그들의 헌금에 관해 교회를 속이고자 함으로써 하나님의 성령을 시험했다(행 5:9). 베드로는 이방인을 받아들이는 일에 다시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청중들에게 경고하였다.



■ 내 삶에 적용
1.
2.


■ 기억할 성구 정하기 (절이나 구 단위로 기억할 성구를 기록하기)


■ 기도제목과 기도
1.
2.
3.


■ 나눔 대상 (문자, 전화로 어떤 친구에게 말씀 나눌 것인가 결정하기 / 밴드나 카톡에 감동 나누기).


/ 교회가 누가 모이는 곳이며, 교회 안에서 정당하게 인정받을 수 있는 다툼과 변론이 있을 수 있을까요?


이야기
영국에서 4차례나 수상을 역임하였던 글래드스턴이 수상 재임시절 교회에서 예배드리고 나오는데 한 사람이 질문하였다.
“학식을 갖춘 수상께서 저런 어눌한 설교를 들으러 교회에 오신다니 저로서는 이해가 안됩니다.”
“저는 영국을 사랑하기 때문에 교회에 옵니다.”
더 좋은 대답은 ...
“저는 세상을 사랑하기 때문에 교회에 옵니다. 그곳에서 저는 십자가를 지는 사랑으로 서로 사랑해야만 한다는 율법을 듣
기 때문입니다.”
한 평신도 웨스트(R. A. West)가 말하기를 “교회가 회개하기에 충분할 만큼 커질 때까지는 성공적인 대규모의 부흥은 결코
없을 것이다.”



“그대들은 오늘 하나님께 그대들 자신을 바쳐서 하나님께서 그대들을 귀히 쓰실 그릇으로 만들고 주님의 봉사 사업에 합당한 인물이 되게 하라. ”
(화잇주석, 렘 5:24)




15:1-11 SDA 성경 주석


1. 어떤 사람들.

이곳에 와서 분쟁을 일으킨 이들의 이름은 명시되지 않았지만 그리스도인이 된 바리새인들로 보인다(참조 5절).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즉 유대로부터 안디옥으로 와서. 새로 온 교사들이 사도적 권위의 중심지에서 왔으나 주장하는 바를 가르칠 권한은 부여받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형제들을 가르치되. 안디옥 교회는 유대인, 이방 개종자 그리고 이교에서 곧바로 그리스도 교회로 회심한 교인으로 구성된 다민족 공동체였다(참조 11:19, 20). 더욱이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데 앞장섰던 바울과 바나바가 그곳의 걸출한 지도자였고 이미 교회로부터 직권을 위임 받았다.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그리고 대다수가 이방인 교인으로 이루어진 안디옥 교회가 유대 지방과 가장 가까웠기 때문에, 유대교의 관점에서 교회 내의 이방인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에 관한 문제가 그곳에서 발생한 것은 당연했다.
모세의 법대로. 할례는 하나님에 의해 아브라함에게 주어졌고(창 17:10~13), 모세에게 재확인되었다(레 12:3; 참조 요 17:22).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참조 7:8 주석. 이 요구는, 성경 다른 곳에 분명하게 진술되지 않은 사실 즉 바울과 바나바는 자신들의 이방인 개종자들에게 할례를 받으라고 요구하지 않았음을 입증한다. 그리스도 교회에서 일어난 최초의 중대한 논쟁에 관한 이야기가 여기서 시작된다. 이것은 그리스도 교회가 팔레스타인 지경을 넘어 확산되자마자 야기된 것이 분명하다. 그리스도 교회로 처음 개종한 이들은 유대인이었으나, 그들은 자신이 지켜온 대부분의 종교적인 관례와 편견을 여전히 간직했다. 그러므로 이방인들이 먼저 유대교로 확실히 개종하지 않은 채 그리스도 교회로 들어오는 것을 보았을 때 그들은 충격을 받았다. 고넬료의 회심이나 심지어 에디오피아인과 사마리아인들의 회심 사건으로 이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지금 반대를 제기한 그들도 고넬료와 그의 가속(家屬)이 입교하는 것을 기꺼이 수락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아마도 고넬료의 경우에는 성령의 지시로 인해 예외가 발생했기 때문에 이것으로 할례의 규정을 무효화할 수는 없다고 논박했을 것이다. 따라서 성령의 분명한 인도로 침례을 받고 입교한 자들이라 해도 이제는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선언하였다.
이 선동자들은 안디옥에 와서 자신들은 예루살렘 교회의 의장인 야고보의 이름으로 말한다고 주장했을 것이다. 그러나 야고보는 그들에게 그런 일을 위임하지 않았음을 분명히 밝혔다(24절). 하지만 야고보가 그의 개인의 삶에서 유대의 의식과 관습에 집착하는 사람으로 보였기 때문에(참조 갈 2:12), 그들은 야고보의 가르침과 자신들의 가르침을 동일시해도 괜찮다고 느꼈을 것이다. 그들은 할례가 율법의 일부이기 때문에 소홀히 여겨지거나 거부된다면 이는 모든 율법이 파기된 것이라는 입장이었다. 그들은 그리스도와 율법의 올바른 관계를 인정할 준비도, 또 그렇게 할 마음도 없었다. 유대화주의자들이 안디옥에서 한 문제를 부각시켰는데, 이 문제가 바울의 사역 기간 내내 계속적인 불화의 원인이었고, 신약의 대부분과 심지어 사도시대 이후의 그리스도교 문학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주께서 왜 지상 봉사 기간에 이와 같은 문제들을 예견하지 못했는가라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그분이 이 문제를 구체적으로 다루지는 않았으나, 진정한 종교는 외적인 준수가 아닌 마음의 종교이어야 한다는 사실에 전반적인 강조점을 두었다. 그리스도는 광범위한 기초를 놓았고 세부적인 교리보다는 오히려 원칙들을 밝혔다. 교회가 성령에 의해 한 걸음씩 온전한 진리로 인도받아야 했다(요 16:13). 이것은 교회가 권위적인 전통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는 새로운 빛을 발견하여 경험해야 한다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그리스도 교회는 새로운 발전에 직면하여 많은 문제를 해결해야 했지만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과 사례들을 변경함으로써 이루어질 것은 아니었다(롬 15:4). 새로운 빛은 예상치 못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 성경 진리에 대한 더 많은 연구와 성경적 원칙들을 교회 사업에 적용함으로써 이르러 온다.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여기에 문제의 핵심이 있었다. 오래된 관례라는 근거로 또는 교인이 되는 조건으로 할례를 이방인들에게 요구할수는 없었다. 유대화주의자들은 할례를 구원의 필수적인 단계로 제시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여”셨는데(14:27), 그것은 의문(儀文)에 속한 규례들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음을 입증해 주는 진전이었다.


2. 바울과 바나바.

유대화주의자들이 이 요구를 통해, 이 두 선교사가 길리기아와 이곳 안디옥에서 그리고 그들의 첫 번째 선교여행에서 이룬
일 즉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의 승리로 밖에 해석할 수 없었던 그런 사업에 대해 노골적인 비난을 나타낸 점에 비춰볼 때, 바울과 바나바가 이 논쟁의 중심 표적이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선포하였다. 이제 그들은 개심자들이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인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외적인 의식들을 행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있는 것을 잠잠히 방관할 수 없었다.
다툼. 헬라어 스타시스(stasis). “지위”, “당파” 또는 “파벌”을 뜻한다. 막 15:7과 눅 23:19에서, 바라바가 주모자가 되었던 민란을 가리키는 데 이 말이 사용되었다. 본 절에서 이 단어는 격렬한 변론을 묘사한다.
변론. 헬라어 제테시스(ze-te-sis). “찾는 것”, 따라서 “질문”, “토론”을 뜻하며, 철학적 탐구를 뜻하는 전문용어이다.
바울과 바나바. 복음 안에서 누리는 자유를 주장하는 대표자로, 이방인들 사이에서 벌써부터 성공적으로 일해 온 이 두 사람보다 더 나은 대표자는 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몇 사람을. 이들의 이름은 언급되지 않았다. 그들은 안디옥에 있는 선지자들 중의 몇이거나(13:1), 이방인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진, 구브로와구레네에서 온 자들(11:20)일 수 있다. 아마도 성령이 바울과 바나바를 통해 하신 일에 대한 하나의 주목할 만한 본보기가 되었을 디도가 동행했다(갈 2:1).
예루살렘에 있는. 이때의 예루살렘 방문을 갈라디아 2장의 방문과 동일시하는 것에 대해서는 이 장 끝에 있는 추가적 설명, 설명 1을 참조하라.
사도와 장로들. 베드로와 요한과 주의 형제 야고보가 예루살렘에 있었다(참조 갈 2:9; 1:19). 이들은 장로들(참조 행 11:30 주석), 구체적으로 이름이 명시되지 않은 다른 사도들과 함께 이 젊은 교회의 지도층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초기교회가 할례와 같은 어려운 문제를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 장로들의 총회에 위임한 사실은 교회 조직을 지지하는 매우 의미 있는 선례이다. 이것은 교회의 제반 문제에 대한 최종 결정을 전제 군주 같은 역할을 하는 한 사람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이론과 반대된다. 또한 거론된 문제가 교회 전체에 영향을 미칠 때는, 해당 지역 교회보다 더 넓은 차원의 조언과 권위의 필요성을 예시한다. 신약 시대의 교회에서는 예루살렘의 초기 회중에 속한 사도들과 직원들이 자연스럽게 상소 위원단을 구성하였다. 동시에 본 장의 후반부(15:22, 25)에 명시된 것처럼, 이 사건의 최종 결정은 단지 예루살렘에 있는 지도자들의 결정에 의거해서가 아니라, 이 사건을 호소하러 안디옥에서 올라온 대표자들을 포함한 참석자 전원의 합의에 근거하여 이루어졌다. 그들의 문제를 예루살렘으로 가져감으로써, 바울과 바나바 그리고 안디옥 교회 전체가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을 통한 성령의 인도에 대해 확신을 나타냈다. 그러므로 바울은 “계시를 인하여”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고 선언한다(갈 2:2). 참조 사도행적, 96.
작정하니라. 헬라어 탓소(tasso-). “임명하다”, “처리하다”(참조 13:48 주석).


3. 전송을 받고.

이 관습이 사도행전에 거듭 기록되어 있다(20:38; 21:16). 손님, 특히 떠나는 스승을 위해 멀지 않은 거리를 동행해 주는 것
이 유대인들에게는 일종의 접대 행위로 간주되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소돔으로 가는 천사들과 함께 길을 갔다(창 18:16). 고대 유대 전승은 “선생은 학생을 도시 변두리까지 [배웅하고], 동료는 다른 동료를 안식일에 제한된 거리만큼 [배웅하고], 학생은 그의 스승을 거리에 제한 없이 [배웅한다]”고 말한다(Talmud Sotah 46b, Soncino ed., 243). 랍비 메이르(Rabbi Meir, AD 150년경)의 것으로 추정된 한 포고문은 “누구든지 다른 이를 배웅하지 않거나 자신을 배웅하도록 허락하지 않는 자는 마치 피를 흘리는 자와 같다”(위의 책, 244)라고 말한다.
베니게. 안디옥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사도들의 여행길은 해안선을 따라 시돈, 두로, 그리고 아마도 가이사랴를 거쳐 사마리아를 통과했을 것
이다. 그들은 가는 도중에 “형제들”을 만났는데 설립된 교회들이 있었음을 암시하는 것 같다. 이들 중 몇은 분명히 빌립이 세웠을 것이다.
그 외 다른 교회들의 기원에 관해서는 여기의 간단한 언급 이상은 아무것도 알려져 있지 않는데, 이는 초기 그리스도 교회 역사의 얼마나 많은 부분이 보존되어 있지 않은지를 시사한다.
이방인들의 주께 돌아온 일. 이것은 바울이 중시여기는 주제가 될 수밖에 없다. 틀림없이 그는 많은 사례를 상세하게 말했으며, 베드로가 고넬료의 경우에서 한 것처럼, 할례받지 않은 자를 수용한 것에 대해 성령이 승인의 표를 날인했음을 강조했다.
형제들을 다. 11:2~4, 18과 비교하라. 교회는 바울과 바나바가 가져온 좋은 소식에 기뻐했다. 이방인에게도 할례를 강요한 자들은 유대인 그리스도인 가운데 한 무리에 불과했고, “바리새파 중에 믿는 어떤 사람들”이라고 기술된다(15:5). 바리새인들은 의식법(儀式法)의 열렬한 지지자였다.
크게 기쁘게 하더라. 여기서 사용된 동사의 형태로 볼 때 바울과 바나바가 예루살렘을 향해 가는 동안 이방인의 회심 소식이 연거푸 기쁨으로 환영받았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베니게와 사마리아 교회의 이러한 태도는, 예루살렘 교회의 편협하고 신랄한 바리새인(5절)과 그것을 위해 대변하려 했던 유대화주의 당파와는 현저한 대조를 이룬다.


4. 교회…에게 영접을 받고.

예루살렘에 도착한 처음에는 사도들이 대부분의 교인에게서 따뜻하게 환영을 받은 듯하다. 사도들이 이방인에 대한 자신들의 성공을 공공연히 강조하자 반대파가 정체를 드러냈다.
말하매. 6절과 비교해 보면, 바울과 바나바가 선교 활동에 대해 보고했던 예비 모임이 있었다는 사실을 시사하는 듯하다. 이것이 아마도 바울이 나중에 언급한 “유명한 자들”과 “사사로이” 만난 그 모임이다(갈 2:2). 이방인 개종자들의 순결과 사랑뿐 아니라 그들의 행위와 고난,표적과 기사에 대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 시간이 다소 소비되었을 것이다. 그런 이야기는 후에 회의에서 토의되고 결정된 문제에 대한 최선의 서론이었다고 볼 수 있다.


5. (바리새)파.

헬라어로 하이레시스(hairesis). 참조 5:17 주석. 바리새인 중 어떤 이들이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그들은 예수를 하나님이 보
낸 선생으로 받아들였는데(참조 요 3:2),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으로써 이 사실이 입증되었다. 따라서 예수가 왕국의 머리가 되어 율법과 성전이 제 위치를 찾고, 이방인은 할례를 조건으로 입교가 허락되는, 회복된 영광스런 유대교를 인류에게 전수할 것이라고 그들은 기대하였다. 바로 이들이 일어나 바울과 바나바가 지금까지 해온 일에 항의한 것이다. 전반적인 문제가 아마도 일개인의 사례 즉 개종의 순차적 단계를 밟지 않은 이방인 디도의 사례(참조 갈 2:3)를 들어 논의되었다. 이 논쟁에 연루됨으로써 디도는 후에 낡은 종교형식에 대한 유대화주의자들의 끈질긴 요구에 대항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출 수 있었다(참조 딛 1:10, 14, 15).
일어나. 유대화주의자들이 이렇게 들고 일어났기 때문에 한층 공식적인 회의의 소집이 불가피하게 되었을 것이다.
모세의 율법. 참조 6:13 주석. 유대화주의자들이 그리스도인에게 시행하라고 제안한 요구 사항은 할례뿐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단지 쐐기를 박는 것에 불과했다.


6. 사도와 장로들.

참조 2절 주석; 11:30. 15:23과 비교해 보면 교회의 지도자들뿐 아니라 오늘날 평신도로 알려진 “형제들” 또한 총회에서 어떤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7. 변론.

헬라어 제테시스(ze-te-sis). 참조 2절 주석. 여기서 결정된 것과 같은 중대한 문제를 취급하는 데 드러난 인간적 요소는, 지도하는 성령이 사람과 함께, 사람을 통하여 일하며 그들의 약점과 불화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뜻을 이루신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
베드로가 일어나. 베드로는 최고는 아니지만 권위있는 위치에 서 있었다. 그는 총회의 의장이 아니었고, 따라서 그가 발언한 것은 총회 결정의 기조가 되었으나 최종적인 결정을 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최초의 이방인 곧 로마사람 고넬료를 회심시키는 일에 도구가 된 사람이 바로 베드로였다는 것과 그 회심이 교회에서 인증을 받았다는 사실(참조 11:1~18) 때문에, 그는 이제 또 다른 이방인들을 교회가 받아들이자고 촉구하는 데 특별히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되었다.
내 입에서. 베드로는 지위의 우위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대변자로 나선 것이다.
오래 전부터. 문자적으로 “초창기부터.” 베드로는 아마도 십수 년 전에 있었던 고넬료의 회심(10장)을 암시했다. 현재의 문제와 관련된 많은 일들이 그때 이후에 발생했다.


8. 마음을 아시는.

신약의 다른 곳에서는 오직 행 1:24에만 이 표현이 사용되었다. 하나님이 할례받지 않은 자를 할례받은 자와 동등한 위치
에 두었기 때문에 교회도 그에 맞게 따를 수밖에 없었다.


9. 마음을 깨끗이 하사.

믿음이 고넬료와 그의 집안 사람들의 마음을 깨끗케 했다. 오직 깨끗함을 판단할 수 있는 하나님이 보기에 마음이 깨
끗하다면, 의문의 법을 지키는 것은 불필요하고 무의미했다. 율법의 의식들은 정결을 위한 것이지만, 바리새인들이 주장한 것보다 더 높은 표준의 정결이 여기 있었다. 의문의 율법과 장로들의 유전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바리새인들은 이방인들을 부정함이라는 총괄적인 죄목의 범주 아래 두었다. 베드로는 아무도 속되거나 부정하다고 칭해서는 안 되며(10:28), 정결은 육체보다는 마음에 관한 것임을 배웠다(참조 딛 1:15).
분간치 아니하셨느니라. 곧 “구별이 없다”는 말이다. 하나님은 오순절에 성령을 처음으로 주신 것처럼 할례 없이 입교한 이방인 회심자들에게도 똑같은 성령을 부어줌으로써, 유대인과 이방인을 구별하지 않았다. 이것은 분명 이방인들을 교회로 완전히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미했다.
동일한 원칙에 대해 바울이 후에 한 진술을 참조하라(롬 10:12).


10.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다시 말해, 이방인을 위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이미 분명히 나타냈는데도, 이방인의 입교와 관련하여 그분의 뜻을 알기 위해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느냐.” 하나님의 뜻보다 사람의 거부 의사가 더 강해야 하는가? 광야에서 유대인들은 그
들을 위해 베푼 여러 기사(奇事)가 있었는데 하나님이 주신 지도자에 대해 불평함으로 하나님을 시험했다(히 3:9). 또한 그리스도를 시험했으며(고전 10:9), 그들의 불복종이 불뱀의 형벌을 초래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그들의 헌금에 관해 교회를 속이고자 함으로써 하나님의 성령을 시험했다(행 5:9). 베드로는 이방인을 받아들이는 일에 다시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청중들에게 경고하였다.
능히 메지. 하나님이 원래 뜻하신 바 모세 율법의 의식 규정은 견딜 수 없을 만큼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다만 유대인들이 율법의 참된 의미를 잃어버리고, 그것을 지킴으로 구원을 얻고자 하여 율법을 일상적으로 되풀이되는 의식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이 일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멍에가 되었다. 더욱이 랍비들은 율법 둘레에 울타리를 만들고, 그들 자신이 추가한 규칙으로 율법의 조항을 둘러싸서 전혀 계명을 위반하지 못하도록 하고자 했다. 그 결과 유대인의 의식법은 견딜 수 없는 짐이 되었다.
멍에. 베드로가 말하는 멍에는 유전적인 추가 조항이 더해진 의식법을 가리키는 말로(참조 사도행적, 194), 유대인들은 이를 통해 구원을 얻으려 했다. 바울이라도 이보다 더 단호한 표현을 쓰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러한 표현은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쉬운” 멍에와 비교하여(마 11:30) 바리새인들의 유전의 “무거운 짐”(마 23:4)에 대해 말한 표현을 연상시키며, 또한 바울이 갈라디아인들에게 “다시 종의 멍에를 메지”(갈 5:1)말라고 한 바울의 경고를 미리 말한 것이다.


11.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을 가져오는 것이 율법과 일치된 삶이 아니라 주의 은혜라고 베드로는 주장했다. 이 진술이 그의 논증의 끝맺음이
었다.
구원받는 줄을. 하나님이 약속하는 구원은 은혜에 의한 것이다(참조 롬 3:21~26; 5:1, 2; 11:5, 6; 엡 2:5, 8). 행위는 은혜로 구원의 선물을 받을 때 따라 온다(롬 8:4; 엡 2:9, 10; 빌 2:1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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