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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장 요한의 투옥과 죽음*

[92] Matthew11:2~6

침례 요한은 그리스도의 나라를 전파한 첫째 가는 사람이었으며 또한 고난에도 으뜸가는 사람이었다. 광야의 자유로운 분위기와 자기의 말에 귀를 기울이던 많은 무리에서 떠나서 요한은 이제 토굴 감방의 벽 속에 갇혀 있었다. 그는 헤롯 안디바의 성채 안에 있는 감옥에 수감되었다. 요한은 대부분의 봉사의 생애를 안디바가 지배하던 요단 동부 지역에서 보냈다. 헤롯 자신도 침례 요한의 전도에 귀를 기울였었다. 방탕하던 왕은 회개하라는 부름을 듣고 떨었다. “헤롯이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두려워하여 … 그의 말을 들을 때에 크게 번민을 느끼면서도 달게 들음이러라.” 요한은 헤롯이 그의 동생의 아내인 헤로디아와 죄악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을 책망하면서 그를 신실하게 대하였다. 헤롯은 얼마 동안은 자기를 속박한 정욕의 쇠사슬을 끊어 버리려고 미미하게나마 노력하였다. 그러나 헤로디아는 그를 자기의 올가미에 더욱 단단히 묶어 놓고 헤롯을 부추겨 요한을 투옥시킴으로써 그에게 복수하였다.

요한의 생애는 적극적인 활동의 생활이었으므로 그의 옥중 생활의 음침함과 무위(無爲)함이 그의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변함없는 여러 주일이 지나자 낙담과 의심의 그림자가 그를 덮었다. 요한의 제자들은 그를 버리지 않았다. 그들은 감옥에 접근하도록 허용되었으므로 예수의 사업에 대한 소식을 그에게 전하고 백성들이 어떻게 예수의 주위에 모여들고 있는지를 말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만일 이 새로운 교사가 메시야라면 그가 왜 요한을 석방시키기 위하여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는지를 의심하였다. 어떻게 그가 그의 충실한 선구자가 자유 그리고 아마도 생명까지 빼앗기도록 버려둘 수가 있단 말인가?

 

이러한 의문들은 효과가 없지 않았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의심이 요한의 마음속에 일어났다. 사단은 이 제자들의 말을 듣고 또한 그들이 여호와의 사자의 심령에 상처를 준 사실을 보고 기뻐하였다. 자기 자신을 착한 사람의 친구라고 생각하고 그에게 그들의 충성을 보이려 애쓰는 자들이 그의 가장 위험한 원수들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빈번히 입증되고 있는가! 그의 믿음을 북돋워 주기는 커녕 그들의 말로 그의 의기를 저상(沮喪)시키고 낙심시키는 일이 얼마나 흔한가!

구주의 제자들처럼 침례 요한도 그리스도의 왕국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예수께서 다윗의 보좌를 취하시리라고 예기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구주께서 왕으로서의 권위를 주장하지 않으시는 것을 보고 요한은 당황하여 근심하게 되었다. 그는 주 앞에 길이 예비되기 위해서는 산과 언덕이 낮아지며 험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고르지 않은 곳이 평지가 되리라는 이사야의 예언이 성취되어야 한다고 백성들에게 선언해 왔었다. 그는 버렸어야 할 인간적인 자만과 권력의 높은 지위들을 기대하였었다. 그는 메시야를 그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시고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는 분으로 지적하였었다. 요한은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이스라엘에게 왔다. 그는 엘리야와 같이 여호와께서 불로 응답하시는 하나님으로서 자신을 친히 드러내시기를 기대하였다.

 

 

침례 요한은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죄악을 두려움 없이 책망하는 자로서 자기의 사명을 완수하였다. 그는 담대하게 헤롯왕을 대면하여 그의 죄를 솔직하게 책망하였다. 그가 자기의 생명을 초개처럼 여긴 것은 자기에게 맡겨진 사업을 성취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이제 요한은 자기가 갇힌 옥에서 유다 지파의 사자가 압제자의 교만심을 무너뜨리고 울부짖는 가난한 자들과 자기를 구원하여 주실 것을 고대하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자기 주위에 제자들을 모으시고 백성들을 고치시며 가르치시는 것으로 만족히 여기시는 것처럼 보였다. 날마다 로마의 멍에가 이스라엘을 더욱 무겁게 누르고 헤롯왕과 그의 사악한 간부(姦婦)가 그들의 목적을 수행하며 가난한 자들과 고통당하는 자들의 외치는 소리가 하늘에 사무치고 있을 때에 예수께서는 세리들의 식탁에서 잡수시고 계셨다.

광야의 선지자에게는 이런 모든 것이 측량할 수 없는 한 신비처럼 보였다. 때때로 여러 시간 동안 마귀의 속삭임이 그의 정신을 괴롭게 하였으며, 심한 공포의 그림자가 그를 덮었다. 오랫동안 고대해 오던 구주가 아직도 나타나지 않았단 말인가? 그렇다면 자기 자신이 전하지 않을 수 없었던 그 기별은 무슨 의미가 있었던가? 요한은 자기가 전도한 결과에 쓰디쓴 실망을 느꼈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그 기별이요 요시야와 에스라 시대에 율법을 낭독함으로 끼쳤던 것과 같은 결과가 있을 것이며(대하 34; 8, 9) 회개하여 여호와께 돌아오는 심층(深層)적인 사업이 잇따를 것으로 기대했었다. 그의 온 생애는 이 전도 사업의 성공을 위하여 희생되어 왔다. 그 일은 헛된 일이었던가?

 

요한은 자기의 제자들이 자기를 위한 사랑 때문에 예수에 대한 불신을 마음에 품고 있는 것을 보고 염려하였다. 그들을 위한 자기의 사업은 열매를 맺지 못하였던가? 자기가 자기의 사명에 불신실한 결과로 이제 와서 활동을 못하게 끊겨지는 것인가? 만일 약속된 구원자가 나타났다면, 만일 요한이 자기의 부르심에 충성하였다는 것이 드러났다면 이제 예수께서 압제자의 권세를 타도하시고 당신의 기별자를 해방시키지 않으실 것인가?

그러나 침례 요한은 그리스도에 대한 자기의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하늘에서 들린 음성, 성령의 비둘기 같은 강림, 예수의 흠없는 순결성, 그리고 요한이 구주 앞에 나갔을 때에 그에게 임하였던 성령의 능력, 성경의 예언들의 증언 등 이러한 모든 기억이 나사렛 예수가 약속된 분이심을 증거하는 것이었다.

[93] Matthew11:2~6

요한은 자기의 의심과 염려를 자기 동료들과 함께 토론하지 않았다. 그는 예수에게 물어 보는 기별을 보내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이 일을 자기 제자 중 두 명에게 위탁하였다. 그리고 구주와의 회견이 그들의 믿음을 확고하게 해주고 그들의 형제들에게 확신을 가져다 주게 되기를 바랐다. 또한 그는 자신에게 직접 하시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기를 갈망하였다.

제자들은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까”라는 그들의 기별을 가지고 예수에게로 나왔다.

침례 요한이 예수를 가리켜서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1:29, 27)고 선포한 지가 과연 얼마나 되었는가. 그런데 이제 “오실 그이가 당신이 오니까”라고 물은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성정으로는 너무나 심한 괴로움이요 실망이었다. 충실한 선구자 요한도 그리스도의 사명을 식별하지 못하였거늘 하물며 자기만을 위하는 무리들에게서 무엇을 기대할 수가 있었겠는가?

구주께서는 제자들의 질문에 즉시로 대답하지 않으셨다. 예수께서 침묵을 지키시는 것을 그들이 궁금히 여겨 서있을 때에 병자와 고통당하는 자들이 치유함을 받기 위하여 예수께로 나왔다. 맹인들은 군중을 뚫고 그들의 길을 더듬으면서 왔으며 온갖 종류의 병을 앓는 자들이 어떤 자는 스스로 저희 길을 재촉하며, 혹은 저희 친구들에게 운반되어 예수 앞으로 열심히 다가서고 있었다. 능력 있으신 치료자의 음성이 귀머거리의 귀를 뚫으셨다. 한마디의 말씀, 그의 손의 단번의 접촉이 맹인의 눈을 뜨게 하여 일광과 자연의 경치와 친구들의 얼굴과 구원자 예수의 얼굴을 볼 수 있게 하였다. 예수께서는 질병을 물리치시며 열병을 쫓아내셨다. 그의 음성이 죽어가는 자들의 귀에 들릴 때에 그들은 건강과 활력을 가지고 일어났다. 귀신 들려 마비된 자들이 그의 말씀에 순종할 때에 광증이 그들을 떠나고 그들은 그에게 경배하였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질병을 치료하시는 한편 백성들을 가르치셨다. 부정하다는 이유로 랍비들이 멀리하던 가난한 농부들과 노동자들이 예수의 주위에 가깝게 모였으며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의 말씀을 하셨다.

이와 같이 요한의 제자들이 모든 것을 보고 듣는 동안에 그날은 저물어 갔다. 드디어 예수께서 그들을 부르시고 그들이 목격한 것을 가서 전하라고 명하시고 이렇게 덧붙이셨다.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7:23). 그의 신성의 증거가 고통당하는 인류의 필요를 채워 주시는 가운데 나타났다. 그의 영광은 우리와 같은 낮은 처지에까지 내려오신 그의 겸비에서 나타났다.

 

제자들은 그 기별을 전하였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하였다. 요한은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 상한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를 … 전파하여”( 61:1, 2) 라는 메시야에 관한 예언을 상기하였다.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은 자기가 메시야임을 선언하였을 뿐 아니라 어떤 모양으로 그의 나라가 세워질 것인지를 보여 주었다. 광야에서 엘리야에게 이르렀던 그 같은 진리가 요한에게도 공개되었다. 곧 이 때에 “여호와의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불 후에 하나님께서 “세미한 소리”로 선지자에게 말씀하셨다(왕상 19:11, 12). 예수께서도 당신의 사업을 이와 같이 군대의 충돌과 또는 보좌와 왕국들을 뒤집어 엎으시는 것을 통해서가 아닌 자비와 자아 희생의 생애로 사람들의 마음에 말씀하심으로 하실 것이었다.

 

침례 요한 자신의 극기의 생애의 원칙은 메시야의 왕국의 원칙이었다. 요한은 이런 모든 것이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의 원칙과 소망에 얼마나 어긋나는 것인가를 잘 알았다. 요한에게 그리스도의 신성을 확신시킨 증거가 그들에게는 아무런 증거가 되지 않았다. 그들은 약속되지 않은 그런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다. 요한은 구주의 전도가 그들에게서 단지 증오와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선구자 요한은 그리스도께서 친히 남김없이 마셔야 했던 그 잔을 마시고 있는 것에 불과하였다.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고 하신 구주의 말씀은 요한에 대한 은근한 책망이었다. 요한은 이 말씀을 간과하지 않았다. 그는 이제 그리스도의 사명의 본질에 대하여 더욱 명백히 깨달았으므로 그가 사랑하던 사업의 최선의 유익을 위하여 살든지 죽든지 자신을 하나님께 굴복시켰다.

[94] Matthew11:7~14

그 사자들이 떠나간 후에 예수께서 요한에 대하여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 지금 헤롯의 감옥에 갇힌 그 충성스러운 증인에게 구주께서는 동정을 보이셨다. 예수께서는 하나님께서 요한을 버리셨다거나 그의 믿음이 시련의 시기에 쓰러졌다고 사람들이 결론 짓도록 버려두기를 원하지 않으셨다.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고 그는 말씀하셨다.

요단 강변에 자라서 산들바람이 불 때마다 흔들거리는 키가 큰 갈대는 침례 요한의 전도를 비평하며 판단하는 자로서 서 있었던 랍비들을 상징하기에 알맞았다. 그들은 여론의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렸다. 그들은 마음을 꿰뚫는 침례 요한의 기별을 받기 위하여 자신을 낮출 마음은 없었다. 그러나 백성들이 무서워서 감히 공공연히 그의 사업을 반대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자는 결코 이러한 비겁한 마음을 갖지 않았다. 그리스도의 주위에 모여든 군중들은 요한의 사업을 목격했던 자들이었다. 그들은 요한이 죄를 두려움 없이 책망하던 말을 들었다.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바리새인들, 제사장 직을 맡은 사두개인들, 헤롯왕과 그의 조신, 방백과 병정들, 세리와 농부들, 이런 모든 사람들에게 요한은 똑같은 솔직성을 가지고 말하였다. 그는 결코 인간의 칭송이나 편견의 바람에 휩쓸리는 흔들리는 갈대가 아니었다. 감옥에서도 광야에서 하나님의 기별을 전하던 때와 같이 하나님께 대한 충성과 의에 대한 그의 열성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는 원칙에 충실함으로 바위처럼 견고하였다.

 

예수께서 계속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보라 화려한 옷 입고 사치하게 지내는 자는 왕궁에 있느니라.” 요한은 그 당시의 죄와 방종을 견책하도록 부르심을 입었으며 그의 간소한 의복과 극기의 생애는 그의 사명의 성질과 일치하는 것이었다. 부유한 옷차림과 이생의 사치는 하나님의 종들의 몫이 아니라 그 권세와 부요함을 소유하는 이 세상의 통치자들, 곧 왕궁에 사는 자들의 몫이었다. 예수께서는 요한의 의복과 제사장들과 관원들이 입은 옷사이의 대조에 주의를 돌리기를 원하셨다. 이런 성직에 있는 자들은 사치한 두루마기와 값진 장식품으로 차려 입었다. 그들은 허식을 사랑하였으며 백성들을 현혹하여 더욱 큰 관심을 모으기를 바랐다. 그들은 하나님의 인정하심을 받을 마음의 순결함을 얻기보다는 사람의 칭찬 얻기를 더욱 갈망하였다. 따라서 그들은 그들의 충성이 하나님께 바쳐진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왕국에 바쳐진 것임을 드러내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면 너희가 어찌하여 나갔더냐 선지자를 보려더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도 나은 자니라 기록된 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저가 네 길을 네 앞에 예비하리라.

 

하신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침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천사는 요한이 나기 전에 사가랴에게 선언할 때에 “저가 주 앞에 큰 자가 되”( 1:15)리라고 말하였던 것이다. 하늘이 위대하게 평가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세상에서 크다고 여기는 것 곧 그들이 가치 있게 생각하는 부나, 지위나, 훌륭한 가문이나, 지적 선물이 아니다. 만일 보다 더 고상한 어떤것들을 고려함 없이 지적 위대함이 영예를 받을 만한 것이라면 우리의 경의는 그 누구도 그에 필적할 만한 지능을 갖지 못했던 사단에게 돌려야 한다. 그러나 자기를 섬기는 데 악용될 때에 그 선물이 크면 클수록 그 저주도 크게 된다. 하나님께서 높이 평가하시는 것은 도덕적인 가치이다. 사랑과 순결이 하나님께서 가장 귀중히 여기시는 속성이다. 요한이, 산헤드린이 파견한 사자들 앞에서나 백성들 앞에서나, 자신의 제자들 앞에서 자신의 영예를 구하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예수를 약속하신 분으로서 가리켰을 때 그는 하나님 보시기에 위대하였다. 그리스도의 봉사를 보고 느낀 그의 이기심 없는 기쁨은 일찍이 사람이 나타낸 것 중에서 가장 숭고한 형태의 기쁨을 보여 준다.

예수에 대한 요한의 증언을 들었던 자들은 그가 죽은 후에 그에 대하여 이렇게 증거하였다. “요한은 아무 표적도 행치 아니하였으나 요한이 이 사람을 가리켜 말한 것은 다 참이라”( 10:41). 엘리야처럼 불을 하늘로부터 내리게 하거나 죽은 자를 일으키거나 또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모세의 능력의 지팡이를 휘두른다든가 하는 능력이 요한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다. 그는 구주의 초림을 전파하며 그의 오심을 위하여 준비하라고 그의 백성들에게 촉구하기 위하여 보냄을 받았다. 그는 그토록 그의 사명을 신실하게 이행하였으므로 백성들은 그가 그들에게 예수에 대하여 가르치던 교훈을 회상하면서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 “요한이 이 사람을 가리켜 말한 것은 다 참이라.” 주님의 제자된 자는 누구나 그리스도에 대하여 이런 증거를 전하도록 부름을 받고 있다.

요한은 메시야의 선구자로서 “선지자보다 나은 자”였다. 그 이유는 선지자들이 그리스도의 강림을 멀리서 바라보았던 반면에 요한은 예수를 보았으며 그가 메시야가 되신다는 하늘의 증언을 들었으며 그를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로서 이스라엘에게 소개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고 말씀하셨다.

선지자 요한은 두 시대를 연결시키는 고리였다. 그는 하나님의 대표자로서 율법과 선지자가 그리스도교의 시대와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보이기 위하여 섰었다. 그는 더욱 큰 빛으로 인도하는 작은 빛이었다. 요한의 마음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밝아진 것은 그 당시의 백성들에게 빛을 비추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다른 어떤 빛도 예수의 교훈과 모본에서 비춰나오는 것만큼 타락한 인류에게 그렇게 명백히 비춰주었거나 비추일 빛은 없다. 그리스도와 그의 사명은 예표된 희생 제물로써 표상되어 희미하게 이해되어 왔을 뿐이었다. 심지어 요한까지도 구주로 말미암은 미래의 영원한 생명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요한이 그의 사명 가운데서 발견하였던 기쁨을 뺀다면 그의 생애는 슬픔의 생애였다. 그의 음성은 광야 이외의 곳에서는 거의 들을 수 없었다. 그의 생활은 고독하였다. 더구나 그는 자신의 활동의 결과를 보도록 허락되지 않았다. 그리스도를 모시고 그보다 큰 빛에 따르는 하늘의 능력의 나타남을 목격하는 것은 그의 특권이 아니었다. 눈먼 자가 시력을 회복하고 앓는 자가 나음을 입고 죽은 자가 살아서 일어나는 것을 그는 볼 수 없을 것이었다. 그는 그리스도의 모든 말씀을 통하여 비췬 빛이 예언의 약속 위에 영광을 발산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리스도의 능력 있으신 이적을 보고 그 말씀을 듣던 가장 작은 제자라도 이런 의미에서 침례 요한보다 더욱 훌륭한 특권을 받은 것이므로 그보다 더 크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95] Matthew14:1~12

요한의 전도에 귀를 기울였던 많은 군중을 통하여 그의 명성은 전국에 퍼졌다. 그들은 요한의 투옥의 결과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졌다. 그러나 그의 흠없는 생애와 그를 옹호하는 대중의 강력한 여론 때문에 그를 해치기 위하여 가혹한 조치가 취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헤롯은 요한을 하나님의 선지자로 믿고 그를 풀어 주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헤로디아가 무서워서 그의 목적을 지연시켰다.

헤로디아는 직접적인 방법으로는 요한을 죽이게 하는 일에 헤롯의 동의를 얻을 수 없을 것을 알고 술책으로 자기의 목적을 수행하기로 결심하였다. 왕의 생일에 국가의 관원들과 왕궁의 고관들에게 연회가 베풀어질 예정이었다. 이 곳에서는 잔치와 술취함이 있을 것이었다. 이렇게 되면 헤롯이 경계하는 마음을 버리고 자기의 뜻대로 좌우될지도 모를 것이었다.

 

그 성대한 날이 이르러서 왕이 그의 제후들과 더불어 먹고 마실 때에 헤로디아는 그의 딸을 그 연회석상에 보내어 손님들을 환대하는 춤을 추게 하였다. 살로메는 여자다움이 한창 꽃피던 때였으므로 그녀의 육욕적인 아름다움은 오만한 이 방탕자들의 관능을 사로잡고 말았다. 궁정의 숙녀들이 이런 연회석상에 나타나는 것은 관례가 아니었으므로 이 이스라엘의 제사장들과 방백들의 딸이 손님들을 즐겁게 하기 위하여 춤을 추었을 때에 그들은 헤롯에게 아첨하는 찬사를 보내기를 아끼지 않았다.

 

왕은 술에 취하여 정신이 나가 있었다. 정욕에 완전히 사로잡혀서 이성은 착란되었다. 그는 단지 연회석상의 쾌락, 곧 술에 취한 손들과 연회 식탁과 거품이 이는 포도주와 번쩍이는 불빛과 그리고 자기 앞에서 춤을 추는 젊은 여자만을 보았다. 잠시 동안 그는 전후의 생각 없이 자기 나라의 위인들 앞에서 자기를 높여줄 어떤 과시를 하고 싶은 생각이 났다. 그는 헤로디아의 딸이 무엇을 원하든지, 심지어 나라의 절반이라도 주겠다고 맹세하고 약속하였다.

살로메는 무엇을 구해야 할지를 알기 위하여 급히 자기 어머니에게로 달려 갔다. 대답은 준비되었다. 그것은 곧 침례 요한의 머리였다. 살로메는 그의 어머니의 마음속에 간절한 복수심이 있는 것을 알지 못했으며, 그 요구를 제출하기를 꺼렸다. 그러나 헤로디아의 결심이 이기고야 말았다. 그 소녀는 돌아와서 “침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담아 곧 내게 주기를 원하옵나이다”( 6:25)라는 끔찍스러운 청원을 하였다.

 

헤롯은 놀라서 당황하였다. 광적인 환락은 그치고 불길한 침묵이 환락의 장소에 내려 앉았다. 왕은 요한의 목숨을 앗는다는 생각을 하고 공포에 질려버렸다. 그러나 그는 이미 언약했으므로 변덕을 부리거나 경솔하게 보이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는 손님들의 명예에 걸어 맹세는 하였지만 만일 그들 중에 하나라도 그가 약속을 이행하는 것을 반대하는 말을 하였다면 즐거이 요한을 살려 주었을 것이다. 그는 그들에게 그 죄수를 위하여 말할 기회를 주었다. 그들은 요한의 전도를 듣기 위하여 먼 거리를 여행하였었으므로 그가 죄 없는 사람이요 하나님의 종임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소녀의 요구에 충격은 받았지만 간언(諫言)으로 중재하기에는 너무나 취하여 있었다. 하늘의 사자의 생명을 살리라는 음성은 나오지 않았다. 거기에 있던 사람들은 국내의 신뢰할만한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중대한 책임이 그들에게 맡겨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감각이 마비되기까지 환락과 술취함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그들의 머리는 음악과 춤의 어지러운 장면 때문에 돌아 버리고 양심은 잠자는 상태에 빠져 버렸다. 그들은 침묵함으로써 한 파렴치한 여인의 복수심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하나님의 선지자에게 사형 선고를 선포한 것이다.

 

 

 

헤롯은 자기의 맹세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다렸으나 수포로 돌아갔다. 그리하여 그는 할 수 없이 선지자를 처형하도록 명령하였다. 요한의 머리가 곧 왕과 그의 손님들 앞에 운반되어 왔다. 헤롯에게 죄의 생활에서 돌이키라고 충성스럽게 경고하던 입술은 영원히 봉하여졌다. 이제 더이상 사람들을 회개하도록 요청하던 그 음성은 들리지 않을 것이었다. 하룻밤의 환락이 가장 위대한 선지자 중 하나의 생명을 희생시켰던 것이다.

정의를 수호하는 자들이 되었어야 할 자들의 부절제로 말미암아 무죄한 자의 생명이 얼마나 자주 희생되어 왔던가! 취하게 하는 잔을 입술에 대는 자는 그가 취기(醉氣) 아래서 저지르는 모든 불의에 대하여 책임이 있다. 그는 그의 감각을 마비시킴으로 냉정한 판단을 하거나 옳고 그른 것에 대한 명료한 지각력을 갖지 못하게 된다. 그는 사단이 죄 없는 자들을 압박하고 멸하는 일에 자기를 통하여 역사하도록 길을 열어 준다. “포도주는 거만케 하는 것이요 독주는 떠들게 하는 것이라 무릇 이에 미혹되는 자에게는 지혜가 없느니라”( 20:1). 그같이 하여 “공평이 뒤로 물리침이 되고 … 악을 떠나는 자가 탈취를 당하는도다”( 59:14, 15). 동료 인간의 생명을 주관하는 사법권을 가진 자들은 부절제함으로 범한 죄과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한다. 법을 집행하는 자들은 모두 그 법의 준수자가 되어야 한다. 그들은 자제력이 있는 사람들이어야 한다. 그들은 지적 활력과 높은 정의감을 소유하기 위하여 그들의 육체적·정신적·도덕적 능력들을 완전히 통제할 필요가 있다.

 

 

침례 요한의 머리는 헤로디아에게로 운반되었다. 그녀는 악마처럼 만족하게 그것을 받았다. 그녀는 복수하게 된 것을 광란적으로 기뻐하며 이제는 혜롯의 양심도 다시는 가책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자위하였다. 그러나 그녀가 지은 죄가 그녀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지는 않았다. 헤로디아의 이름은 악명높고 증오스럽게 되는 한편 헤롯은 요한의 경고를 받을 때에 느낀 것보다도 더 심한 양심의 가책을 받았다. 요한의 교훈이 끼친 감화는 잠잠하지 않고 세상 끝날 때까지 각 세대에 걸쳐서 미칠 것이었다.

헤롯의 죄는 항상 그의 앞에 있었다. 그는 끊임없이 범죄한 양심의 비난에서부터 평안을 발견하려고 애썼다. 요한에 대한 그의 확신은 흔들리지 않았다. 요한의 자기 부정의 생애, 그 엄숙하고도 진지한 호소, 그의 권고 중에 나타난 건전한 판단력 등을 회상하고 그가 어떠한 죽음을 당하였던가를 생각하자 헤롯은 평안을 얻을 수가 없었다. 국사(國事)에 종사하며 사람들의 존경을 받으면서 그는 미소를 짓는 얼굴과 위엄있는 태도를 나타냈지만 한편으로 늘 자기에게 저주가 임한다는 공포에 눌린 채 괴로운 마음을 품고 있었다.

헤롯은 아무것도 하나님에게서 숨길수는 없다고 한 요한의 말에 깊은 감동을 받았었다. 그는 하나님께서 모든 곳에 계시므로 연회실의 방탕함을 목격하시고 요한을 참수(斬首) 하라는 명령을 들으시고 또한 헤로디아의 기뻐 날뜀과 그녀를 책망하던 자의 절단된 머리에 그녀가 나타낸 모욕을 보셨을 것이라고 확신하였다. 그리하여 헤롯이 선지자의 입술을 통하여 듣던 많은 것들이 이제는 광야에서 하던 설교보다도 더욱 명백하게 그의 양심에 말하였다.

 

 

헤롯은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에 대하여 듣고 몹시 괴로워하였다. 그는 하나님께서 요한을 죽음에서 일으키셔서 더욱 위대한 능력으로 죄를 지적하기 위하여 그를 보내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요한이 자기와 자기의 집에 정죄의 선고를 내림으로 자기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하지나 않을까 하고 늘 두려워하였다. 헤롯은 죄의 길의 결과가 그러하리라고 선언하신 그것을 거두고 있었으니 곧 “마음으로 떨고 눈으로 쇠하고 정신으로 산란케 하시리니 네 생명이 의심나는 곳에 달린 것 같아서 주야로 두려워하며 네 생명을 확신할 수 없을 것이라 네 마음의 두려움과 눈의 보는 것으로 인하여 아침에는 이르기를 아하 저녁이 되었으면 좋겠다 할 것이요 저녁에는 이르기를 아하 아침이 되었으면 좋겠다 하리라”( 28:65-67) 고 말씀하신 것이다. 죄인들 자신의 생각이 곧 그의 고소자가 되므로 범죄한 양심의 가책보다 더 심한 고문은 있을 수 없는데 이는 죄인에게 밤이나 낮이나 늘 안식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96] Matthew14:1~12

침례 요한의 운명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깊은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왜 요한이 감방에서 신음하다가 죽도록 버림을 받아야 했던가 하고 그들은 묻는다. 우리 인간적인 통찰력으로는 이 어두운 섭리의 신비를 투시할 수 없다. 그러나 요한이 그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한 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기억할 때에 그것이 우리의 하나님께 대한 신뢰를 결코 흔들 수 없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자들은 희생의 면류관을 쓸 것이다. 그들은 분명히 이기적인 사람들의 오해를 받을 것이며 사단의 맹렬한 공격 목표가 될 것이다. 사단의 왕국은 이 자기 희생의 원칙을 파괴시키기 위하여 세워졌으며 그는 어디에서 이 정신이 나타나든지 그것에 대항하여 싸울 것이다.

요한의 유년 시대와 청년 및 장년 시대는 견고함과 도덕적 능력이 그 특징을 이루었었다.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3:3)는 그의 음성이 광야에 들리자 사단은 자기의 왕국의 안전을 인하여 두려워하였다. 죄의 죄악됨이 사람들을 무서워 떨게 하는 그러한 방법으로 나타내졌다. 많은 사람들을 자기의 지배 아래 두었던 사단의 권세는 파괴되었다. 사단은 하나님께 송두리째 바친 그의 생애에서 침례 요한을 돌이키게 하려고 집요하게 노력해 왔었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그리고 또한 예수를 정복하는 일도 실패하였다. 사단은 광야의 시험에서 패배하였으므로 그의 분노는 극심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요한을 침으로 그리스도를 슬픔에 빠지게 하려고 결심했다. 사단은 자기가 범죄하도록 꾈 수 없었던 그분에게 고통을 안겨 주려 했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종을 구해 내시려고 개입하지 않으셨다. 예수께서는 요한이 그 시험을 견뎌낼 것을 아셨다. 구주께서는 친히 임재하심으로 감방의 음울함을 밝게 하시기 위하여 즐겨 요한에게 오셨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원수의 수중에 두심으로 자신의 사명을 위태롭게 하지 않으셨다. 그는 그의 충성스러운 종을 즐겨 구출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후년에 감방에서 죽음을 당할 수다한 사람들을 위하여 요한은 순교의 잔을 마셔야 하였다. 예수를 따르는 자들이 외로운 옥중에서 신음하고 칼이나, 고문대나, 화형주에서 죽임을 당하여 겉으로는 하나님과 사람에게 버림을 당한 것처럼 보일 때에, 그리스도께서 친히 그의 충성됨을 증거하셨던 침례 요한도 그와 유사한 경험을 겪었다는 생각에 그들의 마음이 얼마나 든든함을 느낄 것인가!

사단은 하나님의 사자의 지상 생애를 단축시키도록 허용은 받았지만 그 파괴자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 3:3)어진 저 생명은 어찌할 수 없었다. 사단은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슬픔을 가져다 준 것을 매우 기뻐하였으나 요한을 정복하는 일에는 실패하였다. 죽음 그 자체는 다만 요한을 영원히 시험의 권세의 피안(彼岸)에 두게 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사단은 이 전쟁에서 자신의 성품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는 목격하고 있는 우주 앞에서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그의 적개심을 드러내고 말았다.

요한에게 기적적인 구출은 허락되지 않았을지라도 그는 버림을 당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항상 하늘의 천사들이 동무가 되어 주었다. 그들은 그에게 그리스도에 관한 예언들과 성경 말씀의 귀중한 허락들을 공개하여 주었다. 이것이 그의 지주(支柱)였으며 이것은 또한 미래의 시대를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이 의지할 지주가 될 것이었다. 요한의 뒤를 따랐던 자들에게와 같이 침례 요한에게도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 때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28:20)고 하신 보증이 주어져 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이 만일 처음부터 종말까지를 볼 수 있고 하나님의 동역자로서 그들이 성취하고 있는 그 목적의 영광을 식별할 수 있다면 그들이 인도받기를 선택하였을 그 길 이외의 어떤 다른 길로는 결코 그들을 인도하지 않으신다. 하늘로 승천한 에녹이나 불병거를 타고 하늘로 승천한 엘리야일지라도 결코 옥중에서 외롭게 죽은 침례 요한보다 더 위대하거나 영예를 더 많이 받지는 않았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 1:29). 그리고 하늘이 사람에게 주실 수 있는 모든 선물 중에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그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 가장 가치 있는 신임이요 가장 높은 영예인 것이다.

22 Imprisonment and Death of John*

 

John the Baptist had been first in heralding Christ’s kingdom, and he was first also in suffering. From the free air of the wilderness and the vast throngs that had hung upon his words, he was now shut in by the walls of a dungeon cell. He had become a prisoner in the fortress of Herod Antipas. In the territory east of Jordan, which was under the dominion of Antipas, much of John’s ministry had been spent. Herod himself had listened to the preaching of the Baptist. The dissolute king had trembled under the call to repentance. “Herod feared John, knowing that he was a just man and an holy; . . . and when he heard him, he did many things, and heard him gladly.” John dealt with him faithfully, denouncing his iniquitous alliance with Herodias, his brother’s wife. For a time Herod feebly sought to break the chain of lust that bound him; but Herodias fastened him the more firmly in her toils, and found revenge upon the Baptist by inducing Herod to cast him into prison.

The life of John had been one of active labor, and the gloom and inaction of his prison life weighed heavily upon him. As week after week passed, bringing no change, despondency and doubt crept over him. His disciples did not forsake him. They were allowed access to the prison, and they brought him tidings of the works of Jesus, and told how the people were flocking to Him. But they questioned why, if this new teacher was the Messiah, He did nothing to effect John’s release. How could He permit His faithful herald to be deprived of liberty and perhaps of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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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se questions were not without effect. Doubts which otherwise would never have arisen were suggested to John. Satan rejoiced to hear the words of these disciples, and to see how they bruised the soul of the Lord’s messenger. Oh, how often those who think themselves the friends of a good man, and who are eager to show their fidelity to him, prove to be his most dangerous enemies! How often, instead of strengthening his faith, their words depress and dishearten!

Like the Saviour’s disciples, John the Baptist did not understand the nature of Christ’s kingdom. He expected Jesus to take the throne of David; and as time passed, and the Saviour made no claim to kingly authority, John became perplexed and troubled. He had declared to the people that in order for the way to be prepared before the Lord, the prophecy of Isaiah must be fulfilled; the mountains and hills must be brought low, the crooked made straight, and the rough places plain. He had looked for the high places of human pride and power to be cast down. He had pointed to the Messiah as the One whose fan was in His hand, and who would thoroughly purge His floor, who would gather the wheat into His garner, and burn up the chaff with unquenchable fire. Like the prophet Elijah, in whose spirit and power he had come to Israel, he looked for the Lord to reveal Himself as a God that answereth by fire.

In his mission the Baptist had stood as a fearless reprover of iniquity, both in high places and in low. He had dared to face King Herod with the plain rebuke of sin. He had not counted his life dear unto himself, that he might fulfill his appointed work. And now from his dungeon he watched for the Lion of the tribe of Judah to cast down the pride of the oppressor, and to deliver the poor and him that cried. But Jesus seemed to content Himself with gathering disciples about Him, and healing and teaching the people. He was eating at the tables of the publicans, while every day the Roman yoke rested more heavily upon Israel, while King Herod and his vile paramour worked their will, and the cries of the poor and suffering went up to heaven.

 

To the desert prophet all this seemed a mystery beyond his fathoming. There were hours when the whisperings of demons tortured his spirit, and the shadow of a terrible fear crept over him. Could it be that the long-hoped-for Deliverer had not yet appeared? Then what meant the message that he himself had been impelled to bear? John had been bitterly disappointed in the result of his mission. He had expected that the message from God would have the same effect as when the law was read in the days of Josiah and of Ezra (2 Chronicles 34; Nehemiah 8, 9); that there would follow a deep-seated work of repentance and returning unto the Lord. For the success of this mission his whole life had been sacrificed. Had it been in vain?

John was troubled to see that through love for him, his own disciples were cherishing unbelief in regard to Jesus. Had his work for them been fruitless? Had he been unfaithful in his mission, that he was now cut off from labor? If the promised Deliverer had appeared, and John had been found true to his calling, would not Jesus now overthrow the oppressor’s power, and set free His herald?

 

But the Baptist did not surrender his faith in Christ. The memory of the voice from heaven and the descending dove, the spotless purity of Jesus, the power of the Holy Spirit that had rested upon John as he came into the Saviour’s presence, and the testimony of the prophetic scriptures,?all witnessed that Jesus of Nazareth was the Promised One.

 

John would not discuss his doubts and anxieties with his companions. He determined to send a message of inquiry to Jesus. This he entrusted to two of his disciples, hoping that an interview with the Saviour would confirm their faith, and bring assurance to their brethren. And he longed for some word from Christ spoken directly for himself.

 

The disciples came to Jesus with their message, “Art Thou He that should come, or do we look for another?”

How short the time since the Baptist had pointed to Jesus, and proclaimed, “Behold the Lamb of God, which taketh away the sin of the world.” “He it is, who coming after me is preferred before me.” John 1:29, 27. And now the question, “Art Thou He that should come?” It was keenly bitter and disappointing to human nature. If John, the faithful forerunner, failed to discern Christ’s mission, what could be expected from the self-seeking multitude?

The Saviour did not at once answer the disciples’ question. As they stood wondering at His silence, the sick and afflicted were coming to Him to be healed. The blind were groping their way through the crowd; diseased ones of all classes, some urging their own way, some borne by their friends, were eagerly pressing into the presence of Jesus. The voice of the mighty Healer penetrated the deaf ear. A word, a touch of His hand, opened the blind eyes to behold the light of day, the scenes of nature, the faces of friends, and the face of the Deliverer. Jesus rebuked disease and banished fever. His voice reached the ears of the dying, and they arose in health and vigor. Paralyzed demoniacs obeyed His word, their madness left them, and they worshiped Him. While He healed their diseases, He taught the people. The poor peasants and laborers, who were shunned by the rabbis as unclean, gathered close about Him, and He spoke to them the words of eternal life.

 

Thus the day wore away, the disciples of John seeing and hearing all. At last Jesus called them to Him, and bade them go and tell John what they had witnessed, adding, “Blessed is he, whosoever shall find none occasion of stumbling in Me.” Luke 7:23, R. V. The evidence of His divinity was seen in its adaptation to the needs of suffering humanity. His glory was shown in His condescension to our low estate.

The disciples bore the message, and it was enough. John recalled the prophecy concerning the Messiah, “The Lord hath anointed Me to preach good tidings unto the meek; He hath sent Me to bind up the brokenhearted, to proclaim liberty to the captives, and the opening of the prison to them that are bound; to proclaim the acceptable year of the Lord.” Isa. 61:1, 2. The works of Christ not only declared Him to be the Messiah, but showed in what manner His kingdom was to be established. To John was opened the same truth that had come to Elijah in the desert, when “a great and strong wind rent the mountains, and brake in pieces the rocks before the Lord; but the Lord was not in the wind: and after the wind an earthquake; but the Lord was not in the earthquake: and after the earthquake a fire; but the Lord was not in the fire:” and after the fire, God spoke to the prophet by “a still small voice.” 1 Kings 19:11, 12. So Jesus was to do His work, not with the clash of arms and the overturning of thrones and kingdoms, but through speaking to the hearts of men by a life of mercy and self-sacrifice.

The principle of the Baptist’s own life of self-abnegation was the principle of the Messiah’s kingdom. John well knew how foreign all this was to the principles and hopes of the leaders in Israel. That which was to him convincing evidence of Christ’s divinity would be no evidence to them. They were looking for a Messiah who had not been promised. John saw that the Saviour’s mission could win from them only hatred and condemnation. He, the forerunner, was but drinking of the cup which Christ Himself must drain to its dregs.

The Saviour’s words, “Blessed is he, whosoever shall find none occasion of stumbling in Me,” were a gentle reproof to John. It was not lost upon him. Understanding more clearly now the nature of Christ’s mission, he yielded himself to God for life or for death, as should best serve the interests of the cause he loved.

 

After the messengers had departed, Jesus spoke to the people concerning John. The Saviour’s heart went out in sympathy to the faithful witness now buried in Herod’s dungeon. He would not leave the people to conclude that God had forsaken John, or that his faith had failed in the day of trial. “What went ye out into the wilderness to see?” He said. “A reed shaken with the wind?”

The tall reeds that grew beside the Jordan, bending before every breeze, were fitting representatives of the rabbis who had stood as critics and judges of the Baptist’s mission. They were swayed this way and that by the winds of popular opinion. They would not humble themselves to receive the heart-searching message of the Baptist, yet for fear of the people they dared not openly oppose his work. But God’s messenger was of no such craven spirit. The multitudes who were gathered about Christ had been witnesses to the work of John. They had heard his fearless rebuke of sin. To the self-righteous Pharisees, the priestly Sadducees, King Herod and his court, princes and soldiers, publicans and peasants, John had spoken with equal plainness. He was no trembling reed, swayed by the winds of human praise or prejudice. In the prison he was the same in his loyalty to God and his zeal for righteousness as when he preached God’s message in the wilderness. In his faithfulness to principle he was as firm as a rock.

Jesus continued, “But what went ye out for to see? A man clothed in soft raiment? Behold, they which are gorgeously appareled, and live delicately, are in kings’ courts.” John had been called to reprove the sins and excesses of his time, and his plain dress and self-denying life were in harmony with the character of his mission. Rich apparel and the luxuries of this life are not the portion of God’s servants, but of those who live “in kings’ courts,” the rulers of this world, to whom pertain its power and its riches. Jesus wished to direct attention to the contrast between the clothing of John, and that worn by the priests and rulers. These officials arrayed themselves in rich robes and costly ornaments. They loved display, and hoped to dazzle the people, and thus command greater consideration. They were more anxious to gain the admiration of men than to obtain the purity of heart which would win the approval of God. Thus they revealed that their allegiance was not given to God, but to the kingdom of this world.

But what,” said Jesus, “went ye out for to see? A prophet? yea, I say unto you, and more than a prophet. For this is he, of whom it is written,?

 

Behold, I send My messenger before Thy face,

 Which shall prepare Thy way before Thee.

 

Verily I say unto you, Among them that are born of women there hath not risen a greater than John the Baptist.” In the announcement to Zacharias before the birth of John, the angel had declared, “He shall be great in the sight of the Lord.” Luke 1:15. In the estimation of Heaven, what is it that constitutes greatness? Not that which the world accounts greatness; not wealth, or rank, or noble descent, or intellectual gifts, in themselves considered. If intellectual greatness, apart from any higher consideration, is worthy of honor, then our homage is due to Satan, whose intellectual power no man has ever equaled. But when perverted to self-serving, the greater the gift, the greater curse it becomes. It is moral worth that God values. Love and purity are the attributes He prizes most. John was great in the sight of the Lord, when, before the messengers from the Sanhedrin, before the people, and before his own disciples, he refrained from seeking honor for himself, but pointed all to Jesus as the Promised One. His unselfish joy in the ministry of Christ presents the highest type of nobility ever revealed in man.

The witness borne of him after his death, by those who had heard his testimony to Jesus, was, “John did no miracle: but all things that John spake of this Man were true.” John 10:41. It was not given to John to call down fire from heaven, or to raise the dead, as Elijah did, nor to wield Moses’ rod of power in the name of God. He was sent to herald the Saviour’s advent, and to call upon the people to prepare for His coming. So faithfully did he fulfill his mission, that as the people recalled what he had taught them of Jesus, they could say, “All things that John spake of this Man were true.” Such witness to Christ every disciple of the Master is called upon to bear.

 

 

 

As the Messiah’s herald, John was “much more than a prophet.” For while prophets had seen from afar Christ’s advent, to John it was given to behold Him, to hear the testimony from heaven to His Messiahship, and to present Him to Israel as the Sent of God. Yet Jesus said, “He that is least in the kingdom of heaven is greater than he.”

 

The prophet John was the connecting link between the two dispensations. As God’s representative he stood forth to show the relation of the law and the prophets to the Christian dispensation. He was the lesser light, which was to be followed by a greater. The mind of John was illuminated by the Holy Spirit, that he might shed light upon his people; but no other light ever has shone or ever will shine so clearly upon fallen man as that which emanated from the teaching and example of Jesus. Christ and His mission had been but dimly understood as typified in the shadowy sacrifices. Even John had not fully comprehended the future, immortal life through the Saviour.

Aside from the joy that John found in his mission, his life had been one of sorrow. His voice had been seldom heard except in the wilderness. His was a lonely lot. And he was not permitted to see the result of his own labors. It was not his privilege to be with Christ and witness the manifestation of divine power attending the greater light. It was not for him to see the blind restored to sight, the sick healed, and the dead raised to life. He did not behold the light that shone through every word of Christ, shedding glory upon the promises of prophecy. The least disciple who saw Christ’s mighty works and heard His words was in this sense more highly privileged than John the Baptist, and therefore is said to have been greater than 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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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rough the vast throngs that had listened to John’s preaching, his fame had spread throughout the land. A deep interest was felt as to the result of his imprisonment. Yet his blameless life, and the strong public sentiment in his favor, led to the belief that no violent measures would be taken against him.

Herod believed John to be a prophet of God, and he fully intended to set him at liberty. But he delayed his purpose from fear of Herodias.

Herodias knew that by direct measures she could never win Herod’s consent to the death of John, and she resolved to accomplish her purpose by stratagem. On the king’s birthday an entertainment was to be given to the officers of state and the nobles of the court. There would be feasting and drunkenness. Herod would thus be thrown off his guard, and might then be influenced according to her will.

When the great day arrived, and the king with his lords was feasting and drinking, Herodias sent her daughter into the banqueting hall to dance for the entertainment of the guests. Salome was in the first flush of womanhood, and her voluptuous beauty captivated the senses of the lordly revelers. It was not customary for the ladies of the court to appear at these festivities, and a flattering compliment was paid to Herod when this daughter of Israel’s priests and princes danced for the amusement of his guests.

The king was dazed with wine. Passion held sway, and reason was dethroned. He saw only the hall of pleasure, with its reveling guests, the banquet table, the sparkling wine and the flashing lights, and the young girl dancing before him. In the recklessness of the moment, he desired to make some display that would exalt him before the great men of his realm. With an oath he promised to give the daughter of Herodias whatever she might ask, even to the half of his kingdom.

Salome hastened to her mother, to know what she should ask. The answer was ready,?the head of John the Baptist. Salome knew not of the thirst for revenge in her mother’s heart, and she shrank from presenting the request; but the determination of Herodias prevailed. The girl returned with the terrible petition, “I will that thou forthwith give me in a charger the head of John the Baptist.” Mark 6:25, R. V.

Herod was astonished and confounded. The riotous mirth ceased, and an ominous silence settled down upon the scene of revelry. The king was horror-stricken at the thought of taking the life of John. Yet his word was pledged, and he was unwilling to appear fickle or rash. The oath had been made in honor of his guests, and if one of them had offered a word against the fulfillment of his promise, he would gladly have spared the prophet. He gave them opportunity to speak in the prisoner’s behalf. They had traveled long distances in order to hear the preaching of John, and they knew him to be a man without crime, and a servant of God. But though shocked at the girl’s demand, they were too besotted to interpose a remonstrance. No voice was raised to save the life of Heaven’s messenger. These men occupied high positions of trust in the nation, and upon them rested grave responsibilities; yet they had given themselves up to feasting and drunkenness until the senses were benumbed. Their heads were turned with the giddy scene of music and dancing, and conscience lay dormant. By their silence they pronounced the sentence of death upon the prophet of God to satisfy the revenge of an abandoned wo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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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od waited in vain to be released from his oath; then he reluctantly commanded the execution of the prophet. Soon the head of John was brought in before the king and his guests. Forever sealed were those lips that had faithfully warned Herod to turn from his life of sin. Never more would that voice be heard calling men to repentance. The revels of one night had cost the life of one of the greatest of the prophets.

Oh, how often has the life of the innocent been sacrificed through the intemperance of those who should have been guardians of justice! He who puts the intoxicating cup to his lips makes himself responsible for all the injustice he may commit under its besotting power. By benumbing his senses he makes it impossible for him to judge calmly or to have a clear perception of right and wrong. He opens the way for Satan to work through him in oppressing and destroying the innocent. “Wine is a mocker, strong drink is raging: and whosoever is deceived thereby is not wise.” Prov. 20:1. Thus it is that “judgment is turned away backward, . . . and he that departeth from evil maketh himself a prey.” Isa. 59:14, 15. Those who have jurisdiction over the lives of their fellow men should be held guilty of a crime when they yield to intemperance. All who execute the laws should be lawkeepers. They should be men of self-control. They need to have full command of their physical, mental, and moral powers, that they may possess vigor of intellect, and a high sense of justice.

The head of John the Baptist was carried to Herodias, who received it with fiendish satisfaction. She exulted in her revenge, and flattered herself that Herod’s conscience would no longer be troubled. But no happiness resulted to her from her sin. Her name became notorious and abhorred, while Herod was more tormented by remorse than he had been by the warnings of the prophet. The influence of John’s teachings was not silenced; it was to extend to every generation till the close of time.

Herod’s sin was ever before him. He was constantly seeking to find relief from the accusings of a guilty conscience. His confidence in John was unshaken. As he recalled his life of self-denial, his solemn, earnest appeals, his sound judgment in counsel, and then remembered how he had come to his death, Herod could find no rest. Engaged in the affairs of the state, receiving honors from men, he bore a smiling face and dignified mien, while he concealed an anxious heart, ever oppressed with the fear that a curse was upon him.

Herod had been deeply impressed by the words of John, that nothing can be hidden from God. He was convinced that God was present in every place, that He had witnessed the revelry of the banqueting room, that He had heard the command to behead John, and had seen the exultation of Herodias, and the insult she offered to the severed head of her reprover. And many things that Herod had heard from the lips of the prophet now spoke to his conscience more distinctly than had the preaching in the wilderness.

When Herod heard of the works of Christ, he was exceedingly troubled. He thought that God had raised John from the dead, and sent him forth with still greater power to condemn sin. He was in constant fear that John would avenge his death by passing condemnation upon him and his house. Herod was reaping that which God had declared to be the result of a course of sin,?“a trembling heart, and failing of eyes, and sorrow of mind: and thy life shall hang in doubt before thee; and thou shalt fear day and night, and shalt have none assurance of thy life: in the morning thou shalt say, Would God it were even! and at even thou shalt say, Would God it were morning! for the fear of thine heart wherewith thou shalt fear, and for the sight of thine eyes which thou shalt see.” Deut. 28:65-67. The sinner’s own thoughts are his accusers; and there can be no torture keener than the stings of a guilty conscience, which give him no rest day nor night.

 

To many minds a deep mystery surrounds the fate of John the Baptist. They question why he should have been left to languish and die in prison. The mystery of this dark providence our human vision cannot penetrate; but it can never shake our confidence in God when we remember that John was but a sharer in the sufferings of Christ. All who follow Christ will wear the crown of sacrifice. They will surely be misunderstood by selfish men, and will be made a mark for the fierce assaults of Satan. It is this principle of self-sacrifice that his kingdom is established to destroy, and he will war against it wherever manifested.

 

The childhood, youth, and manhood of John had been characterized by firmness and moral power. When his voice was heard in the wilderness saying, “Prepare ye the way of the Lord, make His paths straight” (Matt. 3:3), Satan feared for the safety of his kingdom. The sinfulness of sin was revealed in such a manner that men trembled. Satan’s power over many who had been under his control was broken. He had been unwearied in his efforts to draw away the Baptist from a life of unreserved surrender to God; but he had failed. And he had failed to overcome Jesus. In the temptation in the wilderness, Satan had been defeated, and his rage was great. Now he determined to bring sorrow upon Christ by striking John. The One whom he could not entice to sin he would cause to suffer.

Jesus did not interpose to deliver His servant. He knew that John would bear the test. Gladly would the Saviour have come to John, to brighten the dungeon gloom with His own presence. But He was not to place Himself in the hands of enemies and imperil His own mission. Gladly would He have delivered His faithful servant. But for the sake of thousands who in after years must pass from prison to death, John was to drink the cup of martyrdom. As the followers of Jesus should languish in lonely cells, or perish by the sword, the rack, or the fagot, apparently forsaken by God and man, what a stay to their hearts would be the thought that John the Baptist, to whose faithfulness Christ Himself had borne witness, had passed through a similar experience!

Satan was permitted to cut short the earthly life of God’s messenger; but that life which “is hid with Christ in God,” the destroyer could not reach. Col. 3:3. He exulted that he had brought sorrow upon Christ, but he had failed of conquering John. Death itself only placed him forever beyond the power of temptation. In this warfare, Satan was revealing his own character. Before the witnessing universe he made manifest his enmity toward God and man.

Though no miraculous deliverance was granted John, he was not forsaken. He had always the companionship of heavenly angels, who opened to him the prophecies concerning Christ, and the precious promises of Scripture. These were his stay, as they were to be the stay of God’s people through the coming ages. To John the Baptist, as to those that came after him, was given the assurance, “Lo, I am with you all the days, even unto the end.” Matt. 28:20, R. V., margin.

 

God never leads His children otherwise than they would choose to be led, if they could see the end from the beginning, and discern the glory of the purpose which they are fulfilling as co-workers with Him. Not Enoch, who was translated to heaven, not Elijah, who ascended in a chariot of fire, was greater or more honored than John the Baptist, who perished alone in the dungeon. “Unto you it is given in the behalf of Christ, not only to believe on Him, but also to suffer for His sake.” Phil. 1:29. And of all the gifts that Heaven can bestow upon men, fellowship with Christ in His sufferings is the most weighty trust and the highest hon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