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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장 레위 마태*

[110] Mark 2:13~17

팔레스틴에 있던 로마 관리 중에 세리보다 더 미움을 받은 자는 없었다. 외세에 의하여 세금이 부과되고 있다는 사실은 그들의 독립이 떠나갔다는 것을 생각나게 하는 것이었으므로 유대인들을 계속적으로 자극하였다. 그리고 세금을 징수하는 자들은 단순히 로마의 압박의 도구가 아니라 자신을 위하여 사람들을 희생시켜서 치부하는 착취자였다. 로마 사람들의 지배 아래 이 직책을 맡은 유대인은 국가의 명예를 배신하는 자로 여겨졌다. 그는 배신자로서 멸시를 받았고 사회의 가장 비열한 계층으로 분류되었다.

 

레위 마태는 이 계층에 속한 사람으로 게네사렛에서 부름을 입은 네 제자 다음으로 그리스도의 사업에 부르심을 받을 사람이었다. 바리새인들은 마태를 그의 직업에 따라 판단하였으나 예수께서는 이 사람의 마음이 진리를 받아들이기 위해 열려 있는 것을 아셨다. 마태는 구주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였다. 자각시키는 하나님의 영이 그의 죄악 됨을 드러냈을 때에 그는 그리스도에게서 도움을 구하기를 갈망하였다. 그러나 그는 랍비들의 배척에 익숙해져 있었으므로 이 크신 교사께서 자기를 주목해 보시리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어느 날 세관에 앉아 있을 때에 세리 마태는 예수께서 가까이 오시는 것을 보았다. 자기를 향하여 “나를 좇으라”고 하신 말씀을 듣고 그는 매우 놀랐다.

마태는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좇”았다. 마태의 마음에는 주저함이나 의심도 없었고 이익이 남는 사업이 가난과 곤란으로 바뀌어지리라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예수와 함께 있어서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의 사업에서 그분과 연합할 수가 있다는 것으로 그는 족하였다.

이전에 부름을 받은 제자들 역시 그러하였다. 예수께서 베드로와 그의 동료들에게 자기를 따르라고 명령하시자 즉시 그들은 배와 그물을 버렸다. 이 제자 중의 어떤 이들에게는 생계를 그들에게 의존하는 친구가 있었으나 구주의 초청을 받았을 때에 머뭇거리거나 내가 어떻게 생활하며 가족을 부양해야 할까 하고 묻지 않았다. 그들은 부르심에 순종하였다. 예수께서 후에 그들에게“내가 너희를 전대와 주머니와 신도 없이 보냈었을 때에 부족한 것이 있더냐”고 물으셨을 때에 그들은 “없었나이다”라고 대답할 수 있었다( 22:35).

부유하던 마태에게나 가난하던 안드레와 베드로에게 똑같은 시험이 이르렀으며, 똑같은 헌신이 각 사람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그물에 고기가 가득 차고 옛 생애에 대한 충동이 가장 강하던 성공의 순간에 예수께서는 바다에서 일하던 제자들에게 복음 사업을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리라고 요구하셨다. 이와 같이 각 사람이 세상의 재물에 대한 욕심이나 그리스도와 친분을 맺고자 하는 욕망 중에 어느 쪽이 더 강한지에 대해 시험을 받고 있다.

원칙은 항상 가혹하다. 하나님의 사업에 전심을 다하고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하여 모든 것을 해로 여기지 않으면 그 누구도 그분의 사업에 성공할 수 없다. 전적으로 바치지 않는 사람은 어떤 사람도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수 없으며 예수의 동역자가 되기는 더더욱 어렵다. 사람들이 위대한 구원을 인식할 때에 그리스도의 생애에서 나타난 자아 희생은 그들의 생애에서도 나타날 것이다. 그들은 예수께서 어느 길로 인도하시든지 즐겨 따라갈 것이다.

마태를 불러서 그리스도의 제자 중 하나가 되게 하신 것은 큰 분노를 일으켰다. 한 종교적 교사가 직접 수종하는 자로서 세리를 택한다는 것은 종교적·사회적 및 민족적 관습에 위반되는 행위였다. 바리새인들은 백성들의 편견에 호소함으로써 여론의 흐름이 예수를 반대하기를 원하였다.

 

세리들 간에는 광범위한 관심이 일어났다. 그들의 마음은 하늘의 교사에게로 이끌렸다. 마태는 새로운 제자가 된 기쁨에 이전의 친구들을 예수께 데려오기를 원하였다. 그래서 그는 자기 집에서 잔치를 베풀고 친척과 친구들을 함께 불렀다. 세리들만이 포함된 것이 아니라 의심스러운 평판을 받고, 보다 철두철미한 그들의 이웃 사람들에게 배척을 받던 많은 다른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잔치는 예수에게 경의를 표하는 뜻으로 배설되었으며 예수께서는 이 호의를 받아들이기를 주저하지 않으셨다. 예수께서는 이 호의를 받으시는 것이 바리새파를 성나게 하리라는 것과 또한 이 행위가 백성들 앞에서 자신의 명성을 저락시키는 일이 될 것을 잘 아셨다. 그러나 어떤 정치적 문제도 예수의 행동에 영향을 줄 수 없었다. 예수에게는 외형적인 차별은 가치가 없었다. 예수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생수를 갈급하는 심령이었다.

예수께서는 세리들의 식탁에 귀빈으로 앉으시고 당신의 동정심과 사교적인 친절한 행위로 인간의 존엄성을 인정하신다는 것을 보이셨다. 그리고 사람들은 예수의 신임을 받을 만한 사람이 되기를 갈망하였다. 갈급한 심령에 예수의 말씀은 축복과 생명을 주는 능력으로 임하였다. 새로운 충동이 일깨워지고 새 생애에 대한 가능성이 사회의 버림을 받은 이 사람들에게 열려졌다.

이와 같은 회합들에서, 예수께서 승천하실 때까지 예수를 시인하지 않던 사람들 중에 구주의 교훈에 감명을 받은 사람이 적지 않았다. 성령이 부어져 하루에 3천명이 회개하였을 때에 이들 가운데는 세리들의 식탁에서 처음으로 진리를 들었던 사람들이 많았으며, 이 중에 얼마는 복음의 기별자들이 되었다. 연회석상에서의 예수의 모본은 마태 자신에게 끊임없는 교훈이 되었다. 멸시당하던 세리가 주님의 발자취를 열심히 따르며 자기의 맡은 일에 있어서 가장 헌신한 복음 전도자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다.

랍비들은 마태의 집에서 베푼 잔치에 예수께서 참석하신 것을 알자 예수를 비난할 기회를 포착했다. 그러나 그들은 제자들을 통하여 그렇게 하기로 택하였다. 그들은 제자들의 편견을 일으킴으로 그들과 그들의 선생을 이간시키기를 원했다. 제자들에게 그리스도에 대하여 비난하고 그리스도에게 제자들에 대하여 비난을 퍼붓고 그들이 상처를 받을 성싶은 곳에 그들의 화살을 겨누는 것이 랍비들의 책략이었다. 이것이 곧 사단이 하늘에서 불만을 품은 이래로 일하여 온 방법이며 불화와 이간을 일으키려고 애쓰는 자들은 모두 사단의 정신에 자극되어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질투심이 많은 랍비들은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고 물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그 비난에 답변하기를 기다리지 않으시고 친히 대답하셨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은 영적으로 건강하므로 의사가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 반면 세리들과 이방인들은 영혼의 질병으로 말미암아 죽어간다고 생각하였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의사로서 당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계층의 사람들에게 가시는 것은 그가 하실 일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바리새인들이 자신들을 높이 평가하였을지라도 사실은 그들이 멸시하던 자들보다 더 중병에 걸린 상태에 있었다. 세리들은 고집과 자부심이 덜했으므로 진리의 감화에는 마음 문이 더 열려 있었다. 예수께서는 랍비들에게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고 말씀하셨다. 이와 같이 예수께서는 랍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설명한다고 주장하면서도 말씀의 정신에는 전혀 무지하다는 것을 보여 주셨다.

바리새인들은 잠시 잠잠하였으나 그들 마음속의 적의는 더욱 굳어졌다. 그들은 다음으로 침례 요한의 제자들을 찾아내어 그들에게 구주를 대적하게 하려고 애썼다. 이 바리새인들은 침례 요한의 사명을 받아들이지 않았었다. 그들은 침례 요한의 절제의 생활, 그의 단순한 습관, 초라한 의복을 경멸하면서 지적하였고 그를 광신자라고 선언했었다. 요한이 그들의 위선을 규탄하였으므로 그들은 요한의 말을 반대하였고 백성들이 그를 반대하도록 부추기려고 힘썼었다. 하나님의 영이 이 조롱하는 자들의 마음을 움직여서 그들에게 죄를 깨닫게 하였으나 그들은 하나님의 권고를 거절하였으며 요한이 사귀에 들렸다고 말했었다.

 

 

이제 예수께서 백성들과 섞여서 그들의 식탁에서 잡수시고 마시자 바리새인들은 예수가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자라고 비난하였다. 이런 비난을 하는 자들 자신이 죄를 범한 자들이었다. 하나님께서 사단에 의해 잘못 나타내지고 사단 자신의 속성을 가지신 분으로 묘사되신 것처럼 주의 기별자들도 이 사악한 사람들에 의해 왜곡되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께서 흑암 가운데 있는 자들에게 하늘의 빛을 주시기 위하여 세리들과 죄인들과 더불어 잡수시고 계신 것을 고려하지 않으려고 하였다. 그들은 하늘의 교사에게서 나오는 모든 말씀은 싹이 터서 하나님의 영광의 열매를 맺을 산 씨임을 보지 못했다. 그들은 빛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결심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침례 요한의 전도를 반대했었지만 이제는 예수를 반대하는 일에 협력을 얻기를 원하여 요한의 제자들의 우정을 살 준비를 갖추었다. 그들은 예수께서 고대의 유전들을 무시하고 있다고 말하고 침례 요한의 준엄한 경건성과 세리나 죄인들과 더불어 잡수시는 예수의 행동을 대조시켰다.

 

[111] Mark 2:18~20

요한의 제자들은 이 때에 큰 슬픔에 빠져 있었다. 이 때는 그들이 요한의 기별을 가지고 예수를 방문하기 이전이었다. 그들의 사랑하는 선생은 감옥에 갇히고 그들은 슬픈 나날을 보냈다. 더구나 예수께서는 요한을 석방시키기 위하여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으시고 심지어 그의 교훈을 불신하시는 듯이 보였다. 요한이 하나님께로부터 보냄을 받은 자였다면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왜 그렇게 크게 다른 길을 가고 있는가?

요한의 제자들은 그리스도의 사업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지 못했다. 바리새인들의 비난에 무슨 근거가 있으리라고 그들은 생각하였다. 그들은 랍비들이 규정한 많은 규칙들을 지켰으며 심지어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기를 원하였다. 유대인들은 금식을 공로가 있는 행동으로 실행하였다. 그 중에서도 가장 엄격한 자들은 매주 이틀을 금식하였다.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께 와서 “우리와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고 물었을 당시 바리새인들과 요한의 제자들은 금식 중이었다.

예수께서는 매우 부드럽게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예수께서는 금식에 대한 그들의 그릇된 관념을 시정하려고 하지 않으시고 다만 당신의 사명에 관하여 그들에게 올바르게 설명하시고자 하셨다. 그리하여 예수께서는 침례 요한 자신이 예수를 증언할 때에 사용하던 비유와 같은 비유를 사용하심으로 이것을 설명하셨다. 요한은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이 충만하였노라”( 3:29)고 말했었다. 예수께서 그 예증을 드시면서 “혼인 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너희가 그 손님으로 금식하게 할 수 있느뇨”라고 말씀하셨을 때에 요한의 제자들은 그들의 선생이 하신 이 말들을 회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늘의 임금이 당신의 백성 가운데 계셨다. 하나님의 가장 큰 선물이 세상에 주어졌었다. 가난한 자들에게 기쁨이 되었으니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을 당신의 나라의 후사로 삼기 위하여 오셨던 것이다. 부자들에게 기쁨이 되었으니 그리스도께서 영원한 재물을 얻는 방법을 그들에게 가르치실 것이기 때문이다. 무지한 자들에게 기쁨이 되었으니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지혜롭게 하시어 구원을 얻게 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학자들에게 기쁨이 되었으니 그리스도께서 그들이 일찍이 탐색하였던 어떤 신비보다도 더 깊은 신비를 그들에게 공개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창세로부터 감추어졌었던 진리들이 구주의 전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에게 공개될 것이다.

침례 요한은 구주를 바라보고 기뻐했었다. 하늘의 주재 되신 분과 함께 행하고 이야기할 특권을 누린 제자들은 얼마나 기뻐할 기회를 가졌던가! 지금은 그들이 슬퍼하고 금식할 때가 아니었다. 그들은 흑암과 사망의 그림자 속에 있는 자들에게 빛을 비추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빛을 받아들이기 위해 마음 문을 열어야 하였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불러일으켰던 것은 빛나는 광경이었다. 그러나 그 광경 저편에는 그리스도의 눈만이 식별하신 무거운 그림자가 놓여 있었다. 예수께서는 “그날에 이르러 저희가 신랑을 빼앗기리니 그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고 말씀하셨다. 주께서 팔려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것을 볼 때에 제자들은 슬퍼하며 금식할 것이었다. 다락방에서 제자들에게 마지막 말씀을 남기실 때에 예수께서는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리니 세상이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16:19, 20)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무덤에서 나오실 때에 그들의 슬픔은 기쁨으로 변할 것이었다. 승천하신 후에 육체로 계시지는 않지만 보혜사를 통하여 여전히 그들과 함께 계실 것이므로 그들은 슬퍼하는 중에 시간을 보내지 말아야 했다. 사단이 원하던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사단은 제자들이 속임을 당했으며 실망당했다는 인상을 세상에 주기를 바랬으나 그들은 예수께서 그들을 위하여 봉사하시고 계시는 하늘의 성소를 믿음으로 바라보아야 했다. 그들은 예수의 대리자인 성령을 받기 위하여 마음 문을 열고 예수의 임재의 빛 가운데서 기뻐해야 했다. 그러나 이 세상의 통치자들과 흑암의 왕국의 지도자들과 투쟁하게 되며 그리스도께서 몸소 그들과 함께 계시지 않으시고 그들이 보혜사를 식별하지 못하는 시험과 시련의 날들이 이르러 올 때 그들이 금식하는 것은 더욱 적당한 일이 될 것이었다.

 

바리새인들은 마음은 질투와 분쟁심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 엄격한 형식을 지킴으로 자신을 높이려고 힘썼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보라 너희가 금식하면서 다투며 싸우며 악한 주먹으로 치는도다 너희의 오늘 금식하는 것은 너희 목소리로 상달케 하려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어찌 나의 기뻐하는 금식이 되겠으며 이것이 어찌 사람이 그 마음을 괴롭게 하는 날이 되겠느냐 그 머리를 갈대같이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펴는 것을 어찌 금식이라 하겠으며 여호와께 열납될 날이라 하겠느냐”( 58:4, 5).

 

참된 금식은 단순한 형식적인 의식이 아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으며”,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을 동하며 괴로워하는 자의 마음을 만족케”( 58:6, 10) 하는 것이라고 묘사한다. 여기에 그리스도께서 하신 사업의 정신과 성격이 설명되어 있다. 예수의 전 생애는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신 생애였다. 시험의 광야에서 금식하시면서, 혹은 마태가 베푼 잔치에서 세리들과 함께 잡수시면서 예수께서는 잃은 자를 구속하시기 위하여 당신의 생명을 바치고 계셨다. 참 헌신의 정신은 쓸데없이 슬퍼하는 일에나 단순히 육체를 괴롭히며 많은 재물을 바치는 일 가운데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자원하는 봉사에 자신을 바치는 가운데 나타난다.

[112] Mark 2:21~22

요한의 제자들에게 대답을 계속하시면서 예수께서는 한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새 옷에서 한 조각을 찢어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옷을 찢을 뿐이요 또 새 옷에서 찢은 조각이 낡은 것에 합하지 아니하리라.” 침례 요한의 기별은 유전과 미신으로 더불어 섞여서는 안 될 것이었다. 바리새인들의 가식을 요한의 헌신에 혼합시키려는 시도는 이들 사이의 간격을 더욱 분명하게 해줄 뿐이었다.

 

그리스도의 교훈의 원칙도 바리새주의적 형식과 결합될 수 없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요한의 가르침으로 말미암아 생긴 간격을 막지 않으실 것이었다. 그리스도께서는 낡은 것과 새것 사이의 분리를 더욱 분명히 하셨다. 예수께서는 이 사실을 더 깊이 예증하셨다.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가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되리라.” 새 포도주를 담는 용기로 사용되던 가죽 부대는 얼마 후에는 말라 부숴지기 쉽게 된다. 그리하여 다시 포도주를 넣는 데는 쓸모 없이 되어버린다. 이 잘 아는 실례로 예수께서는 유대 지도자들의 상태를 나타내셨다. 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관원들은 의식과 유전의 틀에 고착되어 있었다. 그들의 심령은 예수께서 비유하여 말씀하신 말라붙은 포도주 부대와 같이 위축되어 있었다. 그들이 율법주의적 신앙에 만족하는 상태에 있을 동안은 하늘의 산 진리의 위탁자가 될 수가 없었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의가 매우 충분하다고 생각하였으므로 새로운 요소가 그들의 신앙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들은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그들 자신들과는 거리가 먼 어떤 것으로 생각하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들은 그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그들의 선행으로 말미암는 자신의 공로와 연결시켰다. 사랑으로 행하며 심령을 정결하게 하는 믿음은 의식과 사람의 교훈으로 된 바리새인들의 신앙과는 결합할 여지를 찾을 수 없었다. 예수의 교훈과 기성의 종교와를 결합시키려는 노력은 수포로 돌아갈 것이었다. 발효시키는 포도주와 같이 하나님의 생명의 진리는 낡고 쇠해져가는 바리새인의 유전의 가죽 부대를 터뜨릴 것이었다.

 

바리새인들은 그들이 교훈을 필요로 하기에는 너무 현명하고, 구원을 필요로 하기엔 너무 의로우며, 그리스도께로부터 오는 존귀함을 필요로 하기에는 너무나 큰 존귀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구주께서는 하늘의 기별을 받고자 하는 다른 무리들을 찾기 위하여 그들에게서 돌아서셨다. 예수께서는 무식한 어부와 장터에 앉은 세리와 사마리아 여인과 당신의 말씀을 기쁘게 듣는 백성들 가운데서 새 포도주를 담을 새 부대를 발견하였다. 복음 사업에 쓰이는 도구는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빛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이런 영혼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진리의 지식을 세상에 전하는 그리스도의 대리자들이다. 만일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새 가죽 부대가 된다면 그리스도께서 새 포도주로 그들을 채워주실 것이다.

그리스도의 교훈이 비록 새 포도주로 표상되기는 하였지만 그것은 새로운 교리가 아니라 태초부터 가르치셨던 교훈의 계시였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진리는 원래의 의미와 아름다움을 잃어버렸다. 그리스도의 교훈은 거의 모든 면에서 그들에게 새 것으로 보였고 시인할 수 없고 인정할 수 없는 것이었다.

 

예수께서는 거짓 교훈의 능력이 진리에 대한 인식과 그것에 대한 욕망을 파괴시킨다고 지적하셨다. 예수께서는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새 것을 원하는 자가 없나니 이는 묵은 것이 좋다 함이니라”고 말씀하셨다. 부조들과 선지자들을 통하여 세상에서 주셨던 모든 진리는 그리스도의 말씀 가운데서 새로운 아름다움으로 빛났다. 그러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귀중한 새 포도주를 원하지 않았다. 낡은 유전, 습관 및 행동을 비우기 전에는 그들의 정신과 마음에 그리스도의 교훈을 받아들일 여지가 없었다. 그들은 죽은 형식에 집착하였고 산 진리와 하나님의 능력으로부터는 돌아섰다.

 

유대인들의 멸망의 원인은 바로 이것이었으며 그것은 또 오늘날에 있어서도 많은 영혼들의 멸망의 원인이 될 것이다. 허다한 사람들이 그리스도께서 마태의 잔치에서 책망하셨던 바리새인들이 저지른 그 같은 잘못을 범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마음에 품은 어떤 생각을 버리거나 혹은 어떤 우상과 같은 의견을 버리기보다는 오히려 빛 되시는 하늘 아버지께로부터 오는 진리를 거절한다. 그들은 자기를 신뢰하고 자신의 지혜를 의지하며 영적 빈곤을 깨닫지 않는다. 그들은 어떤 중요한 일을 수행하여 구원받는 그런 방식을 고집한다. 자아를 그 사업에 관여시킬 길이 전혀 없음을 볼 때 그들은 준비된 구원을 거절한다.

율법주의적인 종교는 사랑도, 그리스도도 없는 종교이므로 사람을 결코 그리스도께 인도할 수 없다. 스스로 의롭게 여기는 정신에 의해 행해지는 금식이나 기도는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한 것이다. 엄숙한 예배, 집회, 종교적 의식의 반복, 외형적인 겸손, 남의 이목을 끄는 희생 제사 등은 이런 일들을 행하는 자들은 자신을 의롭고 하늘에 들어갈 자격이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고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완전한 기만이다. 우리 자신의 행위로는 결코 구원을 살 수 없다.

그리스도의 시대와같이 오늘날도 그러하다. 바리새인들은 그들의 영적 결핍을 알지 못한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보게 하라”( 3:17, 18)는 기별이 그들에게 임하고 있다. 믿음과 사랑은 불로 연단한 금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의 금은 빛을 잃었고 부요한 보화는 잃어버린 바 되었다. 그리스도의 의는 그들에게는 입지 않은 두루마기와 손대지 않은 샘과 같다.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2:4, 5)는 말씀이 그들에게 말해지고 있다.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51:17). 사람이 온전한 의미에서 그리스도를 믿는 자가 될 수 있기 전에 자아를 비우지 않으면 안 된다. 자아가 포기될 때 주께서 사람을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실 수 있으시다. 새 가죽 부대가 새 포도주를 담을 수 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신자에게 새 생명을 불어넣을 것이다. 우리의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를 바라보는 사람에게서 그리스도의 품성이 나타날 것이다.

28 Levi-Matthew*

 

Of the Roman officials in Palestine, none were more hated than the publicans. The fact that the taxes were imposed by a foreign power was a continual irritation to the Jews, being a reminder that their independence had departed. And the taxgatherers were not merely the instruments of Roman oppression; they were extortioners on their own account, enriching themselves at the expense of the people. A Jew who accepted this office at the hands of the Romans was looked upon as betraying the honor of his nation. He was despised as an apostate, and was classed with the vilest of society.

To this class belonged Levi-Matthew, who, after the four disciples at Gennesaret, was the next to be called to Christ’s service. The Pharisees had judged Matthew according to his employment, but Jesus saw in this man a heart open for the reception of truth. Matthew had listened to the Saviour’s teaching. As the convicting Spirit of God revealed his sinfulness, he longed to seek help from Christ; but he was accustomed to the exclusiveness of the rabbis, and had no thought that this Great Teacher would notice him.

Sitting at his toll booth one day, the publican saw Jesus approaching. Great was his astonishment to hear the words addressed to himself, “Follow Me.”

 

Matthew “left all, rose up, and followed Him.” There was no hesitation, no questioning, no thought of the lucrative business to be exchanged for poverty and hardship. It was enough for him that he was to be with Jesus, that he might listen to His words, and unite with Him in His work.

So it was with the disciples previously called. When Jesus bade Peter and his companions follow Him, immediately they left their boats and nets. Some of these disciples had friends dependent on them for support; but when they received the Saviour’s invitation, they did not hesitate, and inquire, How shall I live, and sustain my family? They were obedient to the call; and when afterward Jesus asked them, “When I sent you without purse, and scrip, and shoes, lacked ye anything?” they could answer, “Nothing.” Luke 22:35.

To Matthew in his wealth, and to Andrew and Peter in their poverty, the same test was brought; the same consecration was made by each. At the moment of success, when the nets were filled with fish, and the impulses of the old life were strongest, Jesus asked the disciples at the sea to leave all for the work of the gospel. So every soul is tested as to whether the desire for temporal good or for fellowship with Christ is strongest.

Principle is always exacting. No man can succeed in the service of God unless his whole heart is in the work and he counts all things but loss for the excellency of the knowledge of Christ. No man who makes any reserve can be the disciple of Christ, much less can he be His colaborer. When men appreciate the great salvation, the self-sacrifice seen in Christ’s life will be seen in theirs. Wherever He leads the way, they will rejoice to follow.

 

The calling of Matthew to be one of Christ’s disciples excited great indignation. For a religious teacher to choose a publican as one of his immediate attendants was an offense against the religious, social, and national customs. By appealing to the prejudices of the people the Pharisees hoped to turn the current of popular feeling against Jesus.

Among the publicans a widespread interest was created. Their hearts were drawn toward the divine Teacher. In the joy of his new discipleship, Matthew longed to bring his former associates to Jesus. Accordingly he made a feast at his own house, and called together his relatives and friends. Not only were publicans included, but many others who were of doubtful reputation, and were proscribed by their more scrupulous neighbors.

The entertainment was given in honor of Jesus, and He did not hesitate to accept the courtesy. He well knew that this would give offense to the Pharisaic party, and would also compromise Him in the eyes of the people. But no question of policy could influence His movements. With Him external distinctions weighed nothing. That which appealed to His heart was a soul thirsting for the water of life.

 

Jesus sat as an honored guest at the table of the publicans, by His sympathy and social kindliness showing that He recognized the dignity of humanity; and men longed to become worthy of His confidence. Upon their thirsty hearts His words fell with blessed, life-giving power. New impulses were awakened, and the possibility of a new life opened to these outcasts of society.

At such gatherings as this, not a few were impressed by the Saviour’s teaching who did not acknowledge Him until after His ascension. When the Holy Spirit was poured out, and three thousand were converted in a day, there were among them many who first heard the truth at the table of the publicans, and some of these became messengers of the gospel. To Matthew himself the example of Jesus at the feast was a constant lesson. The despised publican became one of the most devoted evangelists, in his own ministry following closely in his Master’s steps.

When the rabbis learned of the presence of Jesus at Matthew’s feast, they seized the opportunity of accusing Him. But they chose to work through the disciples. By arousing their prejudices they hoped to alienate them from their Master. It was their policy to accuse Christ to the disciples, and the disciples to Christ, aiming their arrows where they would be most likely to wound. This is the way in which Satan has worked ever since the disaffection in heaven; and all who try to cause discord and alienation are actuated by his spirit.

Why eateth your Master with publicans and sinners?” questioned the envious rabbis.

Jesus did not wait for His disciples to answer the charge, but Himself replied: “They that be whole need not a physician, but they that are sick. But go ye and learn what that meaneth, I will have mercy, and not sacrifice: for I am not come to call the righteous, but sinners to repentance.” The Pharisees claimed to be spiritually whole, and therefore in no need of a physician, while they regarded the publicans and Gentiles as perishing from diseases of the soul. Then was it not His work, as a physician, to go to the very class that needed His help?

 

But although the Pharisees thought so highly of themselves, they were really in a worse condition than the ones they despised. The publicans were less bigoted and self-sufficient, and thus were more open to the influence of truth. Jesus said to the rabbis, “Go ye and learn what that meaneth, I will have mercy, and not sacrifice.” Thus He showed that while they claimed to expound the word of God, they were wholly ignorant of its spirit.

 

The Pharisees were silenced for the time, but only became more determined in their enmity. They next sought out the disciples of John the Baptist, and tried to set them against the Saviour. These Pharisees had not accepted the mission of the Baptist. They had pointed in scorn to his abstemious life, his simple habits, his coarse garments, and had declared him a fanatic. Because he denounced their hypocrisy, they had resisted his words, and had tried to stir up the people against him. The Spirit of God had moved upon the hearts of these scorners, convicting them of sin; but they had rejected the counsel of God, and had declared that John was possessed of a dev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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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w when Jesus came mingling with the people, eating and drinking at their tables, they accused Him of being a glutton and a winebibber. The very ones who made this charge were themselves guilty. As God is misrepresented, and clothed by Satan with his own attributes, so the Lord’s messengers were falsified by these wicked men.

The Pharisees would not consider that Jesus was eating with publicans and sinners in order to bring the light of heaven to those who sat in darkness. They would not see that every word dropped by the divine Teacher was a living seed that would germinate and bear fruit to the glory of God. They had determined not to accept the light; and although they had opposed the mission of the Baptist, they were now ready to court the friendship of his disciples, hoping to secure their co-operation against Jesus. They represented that Jesus was setting at nought the ancient traditions; and they contrasted the austere piety of the Baptist with the course of Jesus in feasting with publicans and sinners.

The disciples of John were at this time in great sorrow. It was before their visit to Jesus with John’s message. Their beloved teacher was in prison, and they passed their days in mourning. And Jesus was making no effort to release John, and even appeared to cast discredit on his teaching. If John had been sent by God, why did Jesus and His disciples pursue a course so widely different?

 

The disciples of John had not a clear understanding of Christ’s work; they thought there might be some foundation for the charges of the Pharisees. They observed many of the rules prescribed by the rabbis, and even hoped to be justified by the works of the law. Fasting was practiced by the Jews as an act of merit, and the most rigid among them fasted two days in every week. The Pharisees and John’s disciples were fasting when the latter came to Jesus with the inquiry, “Why do we and the Pharisees fast oft, but Thy disciples fast not?”

Very tenderly Jesus answered them. He did not try to correct their erroneous conception of fasting, but only to set them right in regard to His own mission. And He did this by employing the same figure that the Baptist himself had used in his testimony to Jesus. John had said, “He that hath the bride is the bridegroom: but the friend of the bridegroom, which standeth and heareth him, rejoiceth greatly because of the bridegroom’s voice: this my joy therefore is fulfilled.” John 3:29. The disciples of John could not fail to recall these words of their teacher, as, taking up the illustration, Jesus said, “Can ye make the children of the bridechamber fast, while the bridegroom is with them?.

The Prince of heaven was among His people. The greatest gift of God had been given to the world. Joy to the poor; for Christ had come to make them heirs of His kingdom. Joy to the rich; for He would teach them how to secure eternal riches. Joy to the ignorant; He would make them wise unto salvation. Joy to the learned; He would open to them deeper mysteries than they had ever fathomed; truths that had been hidden from the foundation of the world would be opened to men by the Saviour’s mission.

 

 

 

John the Baptist had rejoiced to behold the Saviour. What occasion for rejoicing had the disciples who were privileged to walk and talk with the Majesty of heaven! This was not a time for them to mourn and fast. They must open their hearts to receive the light of His glory, that they might shed light upon those who sat in darkness and in the shadow of death.

It was a bright picture which the words of Christ had called up, but across it lay a heavy shadow, which His eye alone discerned. “The days will come,” He said, “when the bridegroom shall be taken away from them, and then shall they fast in those days.” When they should see their Lord betrayed and crucified, the disciples would mourn and fast. In His last words to them in the upper chamber, He said, “A little while, and ye shall not see Me: and again, a little while, and ye shall see Me. Verily, verily, I say unto you, That ye shall weep and lament, but the world shall rejoice: and ye shall be sorrowful, but your sorrow shall be turned into joy.” John 16:19, 20.

When He should come forth from the tomb, their sorrow would be turned to joy. After His ascension He was to be absent in person; but through the Comforter He would still be with them, and they were not to spend their time in mourning. This was what Satan wanted. He desired them to give the world the impression that they had been deceived and disappointed; but by faith they were to look to the sanctuary above, where Jesus was ministering for them; they were to open their hearts to the Holy Spirit, His representative, and to rejoice in the light of His presence. Yet days of temptation and trial would come, when they would be brought into conflict with the rulers of this world, and the leaders of the kingdom of darkness; when Christ was not personally with them, and they failed to discern the Comforter, then it would be more fitting for them to fast.

The Pharisees sought to exalt themselves by their rigorous observance of forms, while their hearts were filled with envy and strife. “Behold,” says the Scripture, “ye fast for strife and debate, and to smite with the fist of wickedness: ye shall not fast as ye do this day, to make your voice to be heard on high. Is it such a fast that I have chosen? a day for a man to afflict his soul? is it to bow down his head as a bulrush, and to spread sackcloth and ashes under him? wilt thou call this a fast, and an acceptable day to the Lord?” Isa. 58:4, 5.

The true fast is no mere formal service. The Scripture describes the fast that God has chosen,?“to loose the bands of wickedness, to undo the heavy burdens, and to let the oppressed go free, and that ye break every yoke;” to “draw out thy soul to the hungry, and satisfy the afflicted soul.” Isa. 58:6, 10. Here is set forth the very spirit and character of the work of Christ. His whole life was a sacrifice of Himself for the saving of the world. Whether fasting in the wilderness of temptation or eating with the publicans at Matthew’s feast, He was giving His life for the redemption of the lost. Not in idle mourning, in mere bodily humiliation and multitudinous sacrifices, is the true spirit of devotion manifested, but it is shown in the surrender of self in willing service to God and man.

 

Continuing His answer to the disciples of John, Jesus spoke a parable, saying, “No man putteth a piece of a new garment upon an old; if otherwise, then both the new maketh a rent, and the piece that was taken out of the new agreeth not with the old.” The message of John the Baptist was not to be interwoven with tradition and superstition. An attempt to blend the pretense of the Pharisees with the devotion of John would only make more evident the breach between them.

Nor could the principles of Christ’s teaching be united with the forms of Pharisaism. Christ was not to close up the breach that had been made by the teachings of John. He would make more distinct the separation between the old and the new. Jesus further illustrated this fact, saying, “No man putteth new wine into old bottles; else the new wine will burst the bottles, and be spilled, and the bottles shall perish.” The skin bottles which were used as vessels to contain the new wine, after a time became dry and brittle, and were then worthless to serve the same purpose again. In this familiar illustration Jesus presented the condition of the Jewish leaders. Priests and scribes and rulers were fixed in a rut of ceremonies and traditions. Their hearts had become contracted, like the dried-up wine skins to which He had compared them. While they remained satisfied with a legal religion, it was impossible for them to become the depositaries of the living truth of heaven. They thought their own righteousness all-sufficient, and did not desire that a new element should be brought into their religion. The good will of God to men they did not accept as something apart from themselves. They connected it with their own merit because of their good works. The faith that works by love and purifies the soul could find no place for union with the religion of the Pharisees, made up of ceremonies and the injunctions of men. The effort to unite the teachings of Jesus with the established religion would be vain. The vital truth of God, like fermenting wine, would burst the old, decaying bottles of the Pharisaical tradition.

The Pharisees thought themselves too wise to need instruction, too righteous to need salvation, too highly honored to need the honor that comes from Christ. The Saviour turned away from them to find others who would receive the message of heaven. In the untutored fishermen, in the publican at the market place, in the woman of Samaria, in the common people who heard Him gladly, He found His new bottles for the new wine. The instrumentalities to be used in the gospel work are those souls who gladly receive the light which God sends them. These are His agencies for imparting the knowledge of truth to the world. If through the grace of Christ His people will become new bottles, He will fill them with new wine.

The teaching of Christ, though it was represented by the new wine, was not a new doctrine, but the revelation of that which had been taught from the beginning. But to the Pharisees the truth of God had lost its original significance and beauty. To them Christ’s teaching was new in almost every respect, and it was unrecognized and unacknowled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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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sus pointed out the power of false teaching to destroy the appreciation and desire for truth. “No man,” He said, “having drunk old wine straightway desireth new: for he saith, The old is better.” All the truth that has been given to the world through patriarchs and prophets shone out in new beauty in the words of Christ. But the scribes and Pharisees had no desire for the precious new wine. Until emptied of the old traditions, customs, and practices, they had no place in mind or heart for the teachings of Christ. They clung to the dead forms, and turned away from the living truth and the power of God.

It was this that proved the ruin of the Jews, and it will prove the ruin of many souls in our own day. Thousands are making the same mistake as did the Pharisees whom Christ reproved at Matthew’s feast. Rather than give up some cherished idea, or discard some idol of opinion, many refuse the truth which comes down from the Father of light. They trust in self, and depend upon their own wisdom, and do not realize their spiritual poverty. They insist on being saved in some way by which they may perform some important work. When they see that there is no way of weaving self into the work, they reject the salvation provided.

A legal religion can never lead souls to Christ; for it is a loveless, Christless religion. Fasting or prayer that is actuated by a self-justifying spirit is an abomination in the sight of God. The solemn assembly for worship, the round of religious ceremonies, the external humiliation, the imposing sacrifice, proclaim that the doer of these things regards himself as righteous, and as entitled to heaven; but it is all a deception. Our own works can never purchase salvation.

As it was in the days of Christ, so it is now; the Pharisees do not know their spiritual destitution. To them comes the message, “Because thou sayest, I am rich, and increased with goods, and have need of nothing; and knowest not that thou art wretched, and miserable, and poor, and blind, and naked: I counsel thee to buy of Me gold tried in the fire, that thou mayest be rich; and white raiment, that thou mayest be clothed, and that the shame of thy nakedness do not appear.” Rev. 3:17, 18. Faith and love are the gold tried in the fire. But with many the gold has become dim, and the rich treasure has been lost. The righteousness of Christ is to them as a robe unworn, a fountain untouched. To them it is said, “I have somewhat against thee, because thou hast left thy first love. Remember therefore from whence thou art fallen, and repent, and do the first works; or else I will come unto thee quickly, and will remove thy candlestick out of his place, except thou repent.” Rev. 2:4, 5.

The sacrifices of God are a broken spirit: a broken and a contrite heart, O God, Thou wilt not despise.” Ps. 51:17. Man must be emptied of self before he can be, in the fullest sense, a believer in Jesus. When self is renounced, then the Lord can make man a new creature. New bottles can contain the new wine. The love of Christ will animate the believer with new life. In him who looks unto the Author and Finisher of our faith the character of Christ will be manif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