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장 나사로야나오라.doc

 

58 장 “나사로야 나오라”*

[187] Luke 10:38~42

가장 확고한 그리스도의 제자들 가운데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가 있었다. 그는 그리스도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에 대하여 믿음이 강했고 사랑이 깊었으며 또한 구주의 총애를 받고 있었다. 그리스도의 가장 큰 이적은 나사로를 위하여 행해졌다. 구주께서는 당신의 도움을 구한 모든 사람을 축복하셨다. 그는 모든 인간 가족을 사랑하셨으나 특별히 친근한 교제를 나누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스도께서는 베다니에 사는 한 가족과 두터운 정분으로 연결되어 있었으며 그 가족 중의 한 사람을 위하여 가장 놀라운 일을 행하셨다.

예수께서는 때때로 나사로의 가정에서 휴식을 얻으셨다. 구주께서는 집이 없으셨기 때문에 친구들과 제자들의 후한 대접에 의존하셨으며, 가끔 피로하고 인간의 우정이 갈급될 때에는 분노한 바리새인들의 의심과 질투에서 벗어나 이 평화스러운 가족에게로 피하기를 즐기셨다. 이 곳에서 그는 진심어린 환영과 순결하고 거룩한 우정을 발견하셨다. 그의 말씀이 이해되고 소중히 간직 될 것을 아셨기 때문에 그는 여기서는 단순하고도 완전히 자유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말씀하실 수 있었다.

 

우리 구주께서는 조용한 가정과 흥미를 가지고 듣는 사람들을 높이 평가하셨다. 예수께서는 인간의 상냥한 마음, 예의와 애정을 사모하셨다. 하늘에서 주신 교훈을 받아들이는 자들에게 그는 언제나 큰 축복을 나누어 주시려고 하셨다. 군중들이 야외에서 그리스도를 따라다닐 때에 그는 그들에게 자연계의 아름다움을 나타내 보이셨다. 예수께서는 군중들의 이해의 눈을 열어 저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손길이 어떻게 세상을 붙드시는가를 깨닫도록 노력하셨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자비하심을 옳게 평가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예수께서는 선한 사람에게나 악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주시는 고요히 내리는 이슬과 촉촉히 적시는 소낙비와 밝은 햇빛에 청중들의 관심이 집중되도록 하셨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관심을 사람들이 더욱 충분히 깨닫기를 원하셨다. 그러나 청중들은 잘 듣지 않았다. 그리스도께서는 공중 생애의 피곤한 투쟁에서 떠나 베다니에 있는 그 가정에서 휴식처를 찾으셨다. 이 곳에서 그는 들어서 식별할 줄 아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섭리의 책을 공개하셨다. 잡다한 군중에게는 이야기하려고 하지 않았던 것을 그는 이런 개인적인 회합에서 말씀하셨다. 그는 당신의 친구들에게 비유로 말씀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놀라운 교훈을 주실 때에 존경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듣는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발 앞에 앉아 있었다. 그 때에 음식 준비하는 일로 당황한 마르다가 예수께 나아와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지 아니하시나이까 저를 명하사 나를 도와 주라 하소서”라고 말하였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베다니에 처음 방문하셨을 때의 일이다. 구주와 그의 제자들이 여리고로부터 도보로 수고스러운 여행을 한 직후였다. 마르다는 그들을 대접하기 위한 준비를 염려하는 나머지 손님에게 베풀어야 할 예의를 잊어버렸다. 예수께서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는 온화하고 참을성 있는 말씀으로 마르다에게 대답하셨다. 마리아는 세상에서 가장 값진 보석보다도 자기에게 더 귀중한 말씀 곧 구주의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귀중한 말씀을 그의 심령에 채우고 있었다.

마르다에게 필요되는 “한 가지”는 침착하고 헌신적인 정신과 장래와 영생에 관한 지식을 깊이 갈망하는 마음과 영적으로 향상하는 데 필요한 은혜였다. 마르다는 잠시 후에 지나가버릴 일을 위해서 덜 염려하고 영원히 존속하는 일을 위하여 더욱 염려할 필요가 있었다. 예수께서는 그의 자녀들에게 저들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만들어 줄 그러한 지식을 얻을 수 있는 모든 기회를 붙잡도록 가르치고자 하셨다. 그리스도의 사업에는 주의성 깊고 정열적인 일꾼이 필요하다. 마르다와 같은 사람들에게 활동적인 종교 사업에 저희 열심을 다할 넓은 분야가 있다. 그러나 그들로 먼저 마리아처럼 예수의 발 앞에 앉게 하라. 근면과 기민성과 정력이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성화되게 하라. 그리하면 그 생애는 선을 위한 무적의 능력이 될 것이다.

[188] John 11:1~16

예수께서 쉬시곤 하셨던 평화스러운 가정에 슬픔이 찾아왔다. 나사로가 갑자기 병에 걸렸다. 그리하여 그의 누이들은 구주께 사람을 보내어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는 자가 병들었나이다”란 말을 전하였다. 그들은 저희 오라비에게 무서운 병이 들린 것을 알았으나 그리스도께서 각종 질병을 치료할 수 있음을 보이신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고민 가운데 빠진 저희를 예수께서 동정하시리라고 믿었다. 그러므로 곧 오시라는 긴급한 요구를 하지 않고 다만 “사랑하는 자가 병들었나이다”라고 알리는 기별을 보냈다. 그들은 예수께서 저희 기별에 즉시 응답하여 베다니에 도착하시자마자 그들에게로 오시리라고 믿었다.

그들은 근심스럽게 예수에게서 오는 소식을 기다렸다. 저희 오라비가 아직 살아서 목숨이 붙어 있는 동안 저들은 기도하며 예수께서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사자는 예수를 모시고 돌아오지 못했다. 다만 그는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는 기별을 가져왔다. 그들은 나사로가 살게 되리라는 희망에 굳게 매달렸다. 그들은 거의 의식이 없는 환자에게 부드럽게 희망과 격려의 말을 하려고 애썼다. 나사로가 죽었을 때 그들은 크게 실망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그리스도의 붙들어 주시는 은혜를 느꼈기 때문에 이것이 그들로 하여금 구주를 비난하는 말을 하지는 않게 하였다.

그리스도께서 기별을 들으셨을 때 제자들은 그가 기별을 냉정하게 받아들인다고 생각하였다. 예수께서는 그가 나타내리라고 제자들이 기대한 슬픔을 나타내지 않으셨다. 제자들을 바라보시면서 예수께서는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셨다. 이틀 동안 그는 계시던 그곳에 머무르셨다. 이렇게 지체하시는 까닭을 제자들은 알 수 없었다. 예수께서 가셨더라면 고통당하는 가족들에게 얼마나 큰 위안이 되었을까 하고 그들은 생각하였다. 베다니에 사는 가족에 대한 예수의 큰 애정을 제자들은 잘 알고 있었으므로 예수께서 “사랑하는 자가 병들었나이다”하는 슬픈 소식에 응답하시지 않는 것을 보고 놀랐다.

그리스도께서는 마치 그의 마음에서 그 소식을 깨끗이 잊으신 것처럼 보였다. 왜냐하면 이틀 동안 나사로에 대하여 한 말씀도 하지 않으셨기 때문이었다. 제자들은 예수의 선구자인 침례 요한을 생각하였다. 제자들은 놀라운 이적을 행하실 수 있는 예수께서 어찌하여 요한을 옥에서 신음하게 하고 마침내 참혹한 죽음을 당하도록 허락하셨는지 의심하였었다. 그와 같은 능력을 가지고도 왜 그리스도께서는 요한의 생명을 구원하지 않으셨을까? 이 질문을 바리새인들은 때때로 묻곤 했는데 그들은 이것이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주장을 꺾는 반박할 수 없는 논증이라고 제시하였다. 구주께서는 제자들에게 시련과 손실과 핍박에 관하여 경고하셨었다. 시련이 닥칠 때에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버리실 것인가? 제자들 중 어떤 이들은 저들이 예수의 사명을 잘못 이해한 것이 아닌가 의심하였다. 그들은 모두가 심각한 고민 가운데 있었다.

이틀을 기다린 후에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유대로 다시 가자”고 말씀하셨다. 제자들은 예수께서 유대로 가실 양이면 왜 이틀 동안이나 기다리셨을까 하고 의아하게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와 자신들을 위한 염려가 가장 먼저 저희의 마음에 떠올랐다. 제자들은 예수께서 가시려고 하는 행로에서 위험 밖에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제자들은 “랍비여 방금도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 하였었는데 또 그리로 가시려 하나이까”라고 물었다. 이에 예수께서는 낮이 열 두시가 아니냐고 하셨다. 나는 아버지의 지도 아래 있다. 내가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한 내 생명은 안전하다. 내 날의 열 두 시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나는 내 날의 마지막 남은 부분에 이르렀으나 이 나머지 부분이 있을 동안은 내 생명은 안전하다.

예수께서는 계속해서 “사람이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길을 걷는 자는 실족하여 넘어지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영의 빛은 그의 의무에 대한 분명한 깨달음을 줄 것이며 그의 사업이 마칠때까지 바른길로 인도하실 것이다. “밤에 다니면 빛이 그 사람 안에 없는고로 실족하느니라.”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지 않으신 곳 즉 자기 자신이 선택한 길로 행하는 자는 실족하게 될 것이다. 그에게는 낮이 밤으로 변했으므로 어느 곳에 있든지 그는 안전하지 못할 것이다.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또 가라사대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얼마나 감동적인 말씀인가! 얼마나 동정심이 가득 찬 말씀인가! 제자들은 저희 주께서 예루살렘에 가심으로 입게 될 위험을 생각하여 베다니의 유가족을 거의 잊어버렸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렇지 않으셨다. 제자들은 책망을 받은 것으로 생각했다. 그리스도께서 좀 더 빨리 그 기별에 응하지 않으신 까닭에 제자들은 실망하였다. 제자들은 예수께서 가지셨다고 그들이 생각했던 나사로와 그의 누이들에 대한 그윽한 사랑을 갖고 계시지 않으셨다고 생각하도록 유혹을 받았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그는 서둘러 기별자와 함께 돌아가셨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는 말씀은 제자들의 마음에 올바른 생각을 일깨웠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고통당하는 친구들을 잊지않고 계셨음을 확신하였다.

“제자들이 가로되 주여 잠들었으면 낫겠나이다 하더라 예수는 그의 죽음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나 저희는 잠들어 쉬는 것을 가리켜 말씀하심인줄 생각하는지라.” 그리스도께서는 그를 믿는 자녀들에게 죽음을 잠자는 것으로 묘사하신다. 그들의 생명은 하나님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감추인 바 되며 마지막 나팔 소리가 날 때까지 그분 안에서 잠잘 것이다.

 

“이에 예수께서 밝히 이르시되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 하”셨다. 도마는 유대로 가는 경우 그의 주님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오직 죽음밖에 없음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다른 제자들에게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고 말하였다. 도마는 그리스도께 대한 유대인들의 증오심을 알고 있었다. 예수를 죽이는 것이 유대인들의 목적이었으나 그를 위하여 할당된 때가 아직도 남아 있었기 때문에 이 목적은 성공하지 못했었다. 이 때까지 예수께서는 하늘 천사들의 보호를 받으셨으므로 랍비들이 그를 어떻게 잡아서 죽일 것인가를 음모하던 바로 그 유대 지방에서도 예수께 아무런 해도 끼칠 수 없었다.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기뻐하노니”란 예수의 말씀을 듣고 제자들은 이상히 여기었다. 구주께서는 과연 고통받는 그의 친구들의 가정을 고의로 피하셨을까? 마리아와 마르다 그리고 죽어가는 나사로는 분명히 버림받은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들은 혼자만 있지 않았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광경을 다 보셨고 나사로가 죽은 후 그 남은 누이들은 그의 은혜로 격려함을 받았다. 예수께서는 강한 원수인 죽음과 더불어 투쟁하는 오빠를 보고 마음이 찢어지듯이 슬퍼하는 그들을 목격하셨다. “나사로가 죽었느니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실 때에 그는 말할 수 없는 고통과 괴로움을 맛보셨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베다니에 있는 사랑하는 그들만을 생각하지는 않으셨다. 그는 제자들의 교육도 생각하셔야 하였다. 제자들은 아버지의 축복이 모든 사람을 포섭할 수 있도록 그의 대리자로서 세상에 보내심을 받을 것이었다. 제자들을 위하여 그는 나사로를 죽도록 허락하셨다. 만일 예수께서 나사로를 병에서 회복시키셨더라면 예수의 신적인 신분을 가장 명확하게 증거하는 그 이적은 행하실 수 없었을 것이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그 병실에 계셨더라면 사단이 그를 이길 힘이 없었을 것이므로 나사로는 죽지 않았을 것이다. 생명의 시여자 앞에서 죽음은 그의 창을 나사로에게 던지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고로 그리스도께서는 멀리 떠나 계셨다. 원수가 그의 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허락하신 것은 그가 정복한 원수로부터 나사로를 다시 찾아오시기 위함이었다. 그는 나사로가 죽음의 지배 아래에 들어가도록 허락하셨으며, 고통받는 누이들은 저희 오빠가 무덤에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이 오라비의 죽은 얼굴을 바라볼 때에 구주에 대한 믿음이 격렬하게 시험 받을 것을 아셨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이 겪는 투쟁으로 말미암아 저희 믿음이 더욱 큰 능력으로 빛나게 될 것을 아셨다. 예수께서는 그들이 당한 모든 슬픔의 고통을 경험하셨다. 예수께서 지체하는 것은 그들을 덜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예수께서는 그들과 나사로와 자신과 제자들을 위하여 승리를 얻어야 한다는 것을 아셨다.

“너희를 위하여”,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손길이 미치고 있음을 느끼려고 노력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낙담의 순간은 바로 하나님의 도움이 가장 가까이에 있는 때이다. 그들은 저희 길의 어두운 부분을 감사함으로 돌아볼 것이다.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벧후 2:9) 어떻게 건지실 줄을 아신다. 모든 시험과 시련을 통하여 그들을 더욱 굳건한 믿음과 더욱 풍성한 사람으로 만들어 내실 것이다.

[189] John 11:17~32

나사로에게 가는 것을 지체하심으로써 그리스도께서는 그를 영접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려고 하셨다. 예수께서 지체하심은 나사로를 죽음에서 부활시킴으로 말미암아 완고하고 불신하는 백성들에게 그가 과연 “부활이요 생명이라”는 또 다른 증거를 보이시기 위함이었다. 그는 이스라엘 집의 방황하는 가련한 양들의 모든 희망을 좌절 시키기를 원하지 않으셨다. 그리스도의 마음은 그들이 회개하지 않기 때문에 찢어지는 듯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자비스러운 마음으로 당신은 만물의 회복자시요 생명과 불멸을 가져올 수 있는 분이시라는 또 하나의 확증을 주시기로 계획하셨다. 이것은 제사장들이 결코 잘못 해석할 수 없는 증거가 될 것이었다. 그가 베다니에 가기를 지체하신 이유는 이것이었다. 나사로를 살리는 이 최고의 이적은 그의 사업과 신성에 대한 그의 주장에 하나님의 인을 찍는 일이었다.

베다니로 여행하시는 도중에 예수께서는 여느 때처럼 병들고 곤궁한 자들에게 봉사하셨다. 마을에 도착하자 그는 사자를 보내어 그가 도착했다는 기별을 누이들에게 전하게 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곧 집에 들어가지 않으시고 길가의 조용한 곳에 머물러 계셨다. 친구나 친척이 죽었을 때에 유대인들이 행하는 큰 허례 허식은 그리스도의 정신과 일치하는 바가 아니었다. 예수께서는 고용된 애곡자들의 통곡하는 소리를 들으시고 그런 혼란한 분위기 속에서 그 누이들을 만나고 싶지 않으셨다. 통곡하는 친구들 가운데는 가족의 친척들과 예루살렘에서 중요한 지위를 가진 사람들도 있었다. 그 가운데는 그리스도의 가장 큰 원수들도 있었다. 그리스도는 그들의 의도를 아셨으므로 즉시 자신을 알리지는 않으셨다.

 

매우 조용하게 기별이 전하여졌으므로 방안에 있는 다른 사람들은 듣지 못하였다. 슬픔에 잠겨 있던 마리아도 그 말을 듣지 못하였다. 마르다는 곧 일어나 주님을 영접하러 나갔으나 마리아는 마르다가 나사로를 장사한 그곳에 간 줄로 생각하면서 소리 내어 울지 않고 슬픔에 싸여 조용히 앉아 있었다.

마르다는 예수를 영접하고자 서둘렀으나 그의 마음은 엇갈리는 감정들 때문에 흔들리었다. 예수의 얼굴 표정에서 그는 항상 나타내시던 똑같은 친절과 사랑을 읽을 수 있었다. 예수께 대한 마르다의 신뢰심은 깨어지지 않았으나 그는 예수께서 또한 사랑하셨던 자기의 극진히 사랑하던 오빠를 생각하였다. 그리스도께서 일찍 오시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가슴에 깊은 비통함이 있었으나 이제라도 그리스도께서 저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어떤 일을 행하시리라는 희망으로 마르다는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라고 말하였다. 애곡자들 때문에 떠들썩한 가운데 이 누이들은 여러 번 이 말을 되풀이하였다.

인간적인 동정과 천래의 동정으로 예수께서는 슬픔에 가득 차고 근심으로 여윈 마르다의 얼굴을 바라보셨다. 마르다는 지난 일을 되풀이하여 이야기하려 하지 않고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란 비애에 가득 찬 말로 모든것을 표시하였다. 그러나 사랑의 얼굴을 바라보며 덧붙여 말하기를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라고 하였다.

예수께서는 마르다의 믿음을 격려하시면서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고 말씀하셨다. 예수의 대답은 즉시 변화된다는 희망을 주려는 의도가 아니었다. 예수께서는 마르다의 생각을 그의 오라비의 현재의 부활을 넘어서 의인의 부활로 이끄셨다. 이 일로 그는 마르다가 나사로의 부활을 통하여 모든 죽은 의인의 부활에 대한 보증과 구주의 능력이 이를 이루시리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게 하셨다.

 

마르다는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 줄을 내가 아나이다”고 대답하였다.

마르다의 신앙에 참된 방향을 주시려고 더욱 노력하시면서, 예수께서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라”고 선언하셨다. 그리스도에게는 최초부터 있고 빌려오지 않고 다른 곳에서 파생(派生)되지 않은 생명이 있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요일 5:12). 그리스도의 신성은 믿는 자에게 영생에 대한 보증이다. 예수께서는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고 말씀하셨다. 이 곳에서 그리스도는 당신의 재림의 때를 내다보신다. 그때 죽은 의인이 썩지 않을 몸으로 부활하겠고 살아 남은 의인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데려감을 받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나사로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키심으로 곧 행하시려는 이적은 죽은 모든 의인의 부활을 대표한 것이다. 그의 말씀과 행하신 일로써 예수께서는 자신이 부활의 창시자이심을 선언하셨다. 미구에 몸소 십자가에서 죽으실 그는 사망의 열쇠를 잡으시고 무덤의 정복자로 서셔서 영생을 주실 수 있는 그의 권리와 능력을 주장하실 분이었다.

“네가 믿느냐”는 구주의 말씀에 마르다는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라고 대답하였다. 마르다는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말씀의 깊은 뜻을 모두 이해할수는 없었으나 그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믿는 믿음과 그가 하시기를 기뻐하시는 일은 무엇이든지 행하실 수 있다는 자기의 신념을 고백하였다.

“이 말을 하고 돌아가서 가만히 그 형제 마리아를 불러 말하되 선생님이 오셔서 너를 부르신다 하니.” 제사장들과 율법사들이 기회만 오면 예수를 잡으려고 준비하고 있었으므로 마르다는 할 수 있는 대로 조용히 그의 기별을 전달하였다. 곡하는 이들의 울음 소리가 그녀의 말소리가 들리는 것을 막았다.

 

기별을 듣자 마리아는 급히 일어나 그의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보고는 방에서 나왔다. 마리아가 곡하러 무덤에가는 줄 알고 조문객들은 그를 따라갔다. 마리아는 예수께서 기다리고 계신 곳에 오자 그의 발 앞에 엎드리어 떨리는 입술로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라고 말하였다. 애곡자들의 울음 소리는 마리아에게 심한 괴로움을 주었다. 왜냐하면 그는 조용히 예수와 따로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 곳에 있던 어떤 사람들이 예수에 대하여 질투심과 증오심을 품고 있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의 슬픔을 다 표시하기를 삼갔다.

[190] John 11: 33~37

“예수께서 그의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의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통분히 여기시고 민망히 여기”셨다. 예수께서는 거기 모인 모든 사람의 마음을 읽으셨다. 그는 슬픔을 표명하는 것처럼 행하던 많은 사람들의 행동이 가면에 불과하다는 것을 아셨다. 그는 지금 짐짓 슬픔을 나타내고 있는 무리 중에 얼마는 멀지 않아 능력 있는 이적을 행하시는 분 뿐만 아니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림을 받을 자도 죽일 계획을 세울 것을 아셨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의 꾸며낸 슬픔의 옷을 그들에게 벗길 수 있으셨다. 그러나 그는 의분을 참으셨다. 모두가 사실인 말씀을 그는 하실 수 있었지만 말씀하지 않으신 것은 당신을 참으로 믿은 사랑하는 사람이 슬퍼서 그의 발 앞에 엎드려 있기 때문이었다.

 

“그를 어디 두었느냐”고 예수께서 물으실 때에 그들은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고 말하였다. 그들은 함께 무덤으로 나아갔다. 슬픈 장면들이었다. 크게 사랑을 받아온 나사로의 친구였던 이들이 그의 누이들과 함께 눈물을 흘리는데 그의 누이들은 그를 위하여 가슴이 찢어지듯이 울었다. 이 인간의 고통, 그리고 이 세상의 구주께서 곁에 서 계시는데도 불구하고 괴로움을 당한 친구들이 죽은 자에 대하여 슬퍼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시고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었다.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그는 인성을 쓰셨으며 따라서 인간의 슬픔에 감응되셨다. 그의 부드럽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언제나 고통받는 자에게 동정을 느꼈다. 그는 우는 자와 같이 우시고 기뻐하는 자와 같이 기뻐하신다.

 

그러나 예수께서 우신 것은 다만 마리아와 마르다를 동정하는 인간적인 동정심 때문만이 아니었다. 예수의 눈물에는 하늘이 땅보다 높은 것처럼 인간적인 슬픔보다 더 높은 슬픔이 있었다. 그리스도께서는 나사로를 위하여 울지 않으셨다. 그 까닭은 그를 무덤에서 곧 불러 일으키실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지금 나사로를 위하여 슬피 울고 있는 자들 중의 여러 사람이 부활이요 생명이신 당신을 죽일 계획을 곧 세우게 될 것이기 때문에 우신 것이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유대인들이 예수의 눈물을 올바르게 해석하기란 얼마나 불가능한 일이었는가! 그의 슬픔의 원인에 대하여 그의 앞에 나타난 장면의 외부적인 사정 밖에는 알지 못하는 자들 가운데 어떤 사람은 “보라 그를 어떻게 사랑하였는가.” 소근소근 말하면서 모여 있는 사람들의 마음에 불신의 씨를 떨어뜨릴 기회를 엿보면서 “소경의 눈을 뜨게한 이 사람이 그 사람은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더냐”고 비웃었다. 만일 나사로를 구원할 수 있는 능력이 그리스도에게 있었다면 왜 그는 그 때에 나사로를 죽게 내버려 두셨는가?

예언적 안목으로 그리스도께서는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증오심을 보셨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이 당신을 죽이기 위하여 계획하고 있는 것을 아셨다. 그는 지금 겉으로 매우 동정하는 듯이 보이는 자들이 얼마 안 있어 희망의 문과 하나님의 도성의 문을 스스로 닫으리라는 것을 아셨다. 예수께서 욕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박히심으로 한 새로운 장면이 일어나려고 하였는데 그 결과로 예루살렘은 멸망하게 될 것이요 그 때에는 아무도 죽은 자를 위하여 슬퍼하지 않을 것이다. 예루살렘에 다가올 징벌이 예수 앞에 분명하게 그려졌다.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이 로마의 군대에 의하여 포위당하는 것을 보셨다. 그는 지금 나사로를 위하여 울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그 도성이 포위될 때에 죽게 될것이며, 저희의 죽음에는 희망이 없을 것을 아셨다.

그리스도께서 우신 것은 그의 앞에 전개되는 장면 때문만이 아니었다. 무거운 각 시대의 모든 슬픔의 짐이 그의 위에 놓여졌다. 그는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범법의 무서운 결과를 보셨다. 예수께서는 아벨의 죽음에서 시작하여 세상 역사에는 선과 악의 투쟁이 간단없이 계속되어 왔음을 보셨다. 미래를 내려다 보실 때에 그는 고통과 슬픔, 눈물과 죽음이 사람들의 운명임을 보셨다. 각 시대와 각 나라에 사는 인간 가족들의 고통으로 말미암아 예수의 가슴은 찢어지는 듯하였다. 죄 많은 인간의 재난은 예수의 심령을 무겁게 짓눌렀고 그가 그들의 모든 고통을 덜어 주시려고 하실 때에 그의 눈물의 샘이 터졌던 것이다.

[191] John 11: 38~44

“이에 예수께서 다시 속으로 통분히 여기시며 무덤에 가시니.” 나사로는 바위 동굴 속에 안치되어 있었으며 그 출입구는 큰 돌로 막혀 있었다. 예수께서는 “돌을 옮겨 놓으라”고 말씀하셨다. 마르다는 예수께서 시체를 단지 한 번 보시고자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장사한 지가 나흘이나 지나 시체가 벌써 썩기 시작했다는 말로써 거절하였다. 나사로를 부활시키시기 전에 한 이 말은 그리스도의 원수들로 하여금 기만을 당했다고 말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지 않았다. 지난 번에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능력이 가장 기이하게 나타난 데 대하여 거짓된 소문을 퍼뜨렸다. 야이로의 딸을 살리실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5:39)고 말씀하셨었다. 그녀는 다만 잠깐 동안만 앓았으며 죽었다가 곧 살아났으므로 바리새인들은 그리스도 자신이 그녀가 다만 잔다고 하신 것처럼 그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었다고 선언하였다. 바리새인들은 그리스도께서 병을 고칠 수 없으며 그의 이적에는 부정 행위가 있었던 것처럼 나타내려고 애썼다. 그러나 이번 경우에는 나사로가 죽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주께서 어떤 일을 행하시려고 하실 때에 사단은 어떤 사람들을 움직여서 반대하게 한다. “돌을 옮겨 놓으라”고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다. 가능한 한 내가 일할 수 있도록 길을 준비하여라. 그러나 마르다의 적극적이며 지기 싫어하는 성질은 그 주장을 고집하였다. 마르다는 썩고 있는 시체를 보이고 싶지 않았다. 인간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빨리 깨닫지 못한다. 따라서 마르다의 신앙은 그분의 약속의 참뜻을 깨닫지 못하였다.

그리스도는 마르다를 책망하셨지만 그러나 그의 말씀은 아주 부드러웠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말을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왜 그대는 나의 권능을 의심하는가? 왜 나의 요구를 반대하여 이론을 붙이는가? 그대는 내 말을 이미 들었다. 만일 그대가 믿으면 그대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자연의 이치대로의 불가능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막을 수 없다. 회의와 불신은 겸손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참된 겸손이며 참된 자기 포기이다.

“돌을 옮겨 놓으라.” 그리스도께서는 돌을 명하여 옮겨지게 할 수 있었으며 돌은 그리스도의 음성에 순종했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곁에 가까이에 있는 천사들을 명하여 이일을 하실 수 있었다. 그의 명령을 듣고 보이지 않는 손이 돌을 옮겨 놓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돌은 인간의 손으로 옮겨져야만 하였다. 이와 같이하여 그리스도께서는 인성이 신성과 협력해야 한다는 것을 보이고자 하셨다. 인간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위하여 신성의 능력이 소집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도움없이 일하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그 주어진 능력과 역량을 사용할 때에 그에게 힘을 주시고 그와 협력하신다.

명령은 순종되었다. 돌은 옮겨졌다. 모든 일은 다 공개적으로 그리고 신중하게 이루어졌다. 모두들 어떤 속임수도 행해지지 않음을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바위로 된 무덤 가운데 나사로의 시체가 놓여 있었는데 죽음으로 차디차고 움직이지 않았다. 애곡자들의 울음소리가 그치었다. 놀라움과 기대로 찬 무리들은 무덤 주위에 서서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를 주목하고 있었다.

그리스도는 조용히 무덤 앞에 서셨다. 신성하고 엄숙함이 참석한 모든 사람에게 임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무덤에 더 가까이 걸어가서 하늘을 쳐다보시면서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이 일이 있기 얼마 전, 그리스도의 원수들은 참람되다고 그를 비난한 바 있었으며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는 까닭으로 그에게 돌을 던졌었다. 그들은 사단의 권세로 이적을 행한다고 예수를 비난하였다. 그러나 이 곳에서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을 그의 아버지라고 주장하시면서 완전한 확신 가운데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선언하신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행하신 모든 일에서 당신의 아버지와 협력하셨다. 언제나 그는 홀로 일하지 않으셨으며 이적을 행하신 것이 믿음과 기도로써 이루셨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하시려고 매우 주의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와 당신의 관계를 모든 사람들이 알기를 원하셨다. 예수께서는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저희로 믿게하려 함이니이다”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제자들과 백성들에게 그리스도와 하나님 사이에 있는 관계에 대한 가장 분명한 증거가 주어질 것이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주장이 기만이 아니었음을 보게 될 것이었다.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셨다. 맑고 드높은 예수의 음성이 죽은 자의 귀를 울렸다.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신성은 인성을 통하여 번쩍거렸다. 하나님의 영광으로 빛난 얼굴에서 백성들은 예수의 능력의 확실함을 알 수 있었다. 모든 눈은 동굴의 입구로 쏠렸고 모든 귀는 가장 작은 소리라도 들으려고 기울여졌다. 열렬하고도 근심스러운 호기심으로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그리스도의 주장을 실증하던지 혹은 희망을 영원히 잃게 할 증거, 즉 그의 신성에 대한 한 시험의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고요한 무덤 속에서 한 움직임이 일어났고 죽었던 자가 무덤의 문 곁에 섰다. 그의 동작은 그에게 입혀진 수의 때문에 방해를 받았다. 그리스도께서는 놀라서 보고 있는 자들에게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다시 인간의 일꾼이 하나님과 협력해야 한다는 것을 보았다. 인간은 인간을 위하여 일해야 한다. 나사로는 자유롭게 되어 병으로 쇠약해진 사람처럼 연약하고 비틀거리는 다리로 서 있는 것이 아니라 혈기 왕성한 건강한 사람의 활력으로 무리들 앞에 섰다. 그의 눈은 총명과 구주에 대한 사랑으로 빛났다. 그는 예수의 발 앞에 엎드려서 경배하였다.

 

 

이를 보고 있던 사람들은 놀라움으로 처음엔 아무 말도 못하였다. 그러나 다음 순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과 감사의 장면이 벌어졌다. 누이들은 하나님의 선물로서 저희 오라비의 생명을 도로 찾게 되자 기쁨의 눈물에 목메인 음성으로 구주께 감사를 표시하였다. 오라비와 누이들과 친구들이 재회를 기뻐하고 있는 동안 예수께서는 그 장소에서 떠나셨다. 그들이 생명을 주신 분을 찾았을 때에 그분은 이미 거기 계시지 아니하셨다.

58 Lazarus, Come Forth”*

 

Among the most steadfast of Christ’s disciples was Lazarus of Bethany. From their first meeting his faith in Christ had been strong; his love for Him was deep, and he was greatly beloved by the Saviour. It was for Lazarus that the greatest of Christ’s miracles was performed. The Saviour blessed all who sought His help; He loves all the human family, but to some He is bound by peculiarly tender associations. His heart was knit by a strong bond of affection to the family at Bethany, and for one of them His most wonderful work was wrought.

At the home of Lazarus, Jesus had often found rest. The Saviour had no home of His own; He was dependent on the hospitality of His friends and disciples, and often, when weary, thirsting for human fellowship, He had been glad to escape to this peaceful household, away from the suspicion and jealousy of the angry Pharisees. Here He found a sincere welcome, and pure, holy friendship. Here He could speak with simplicity and perfect freedom, knowing that His words would be understood and treasured.

Our Saviour appreciated a quiet home and interested listeners. He longed for human tenderness, courtesy, and affection. Those who received the heavenly instruction He was always ready to impart were greatly blessed. As the multitudes followed Christ through the open fields, He unfolded to them the beauties of the natural world. He sought to open the eyes of their understanding, that they might see how the hand of God upholds the world. In order to call out an appreciation of God’s goodness and benevolence, He called the attention of His hearers to the gently falling dew, to the soft showers of rain and the bright sunshine, given alike to good and evil. He desired men to realize more fully the regard that God bestows on the human instrumentalities He has created. But the multitudes were slow of hearing, and in the home at Bethany Christ found rest from the weary conflict of public life. Here He opened to an appreciative audience the volume of Providence. In these private interviews He unfolded to His hearers that which He did not attempt to tell to the mixed multitude. He needed not to speak to His friends in parab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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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 Christ gave His wonderful lessons, Mary sat at His feet, a reverent and devoted listener. On one occasion, Martha, perplexed with the care of preparing the meal, went to Christ, saying, “Lord, dost Thou not care that my sister hath left me to serve alone? bid her therefore that she help me.” This was the time of Christ’s first visit to Bethany. The Saviour and His disciples had just made the toilsome journey on foot from Jericho. Martha was anxious to provide for their comfort, and in her anxiety she forgot the courtesy due to her Guest. Jesus answered her with mild and patient words, “Martha, Martha, thou art careful and troubled about many things: but one thing is needful: and Mary hath chosen that good part, which shall not be taken away from her.” Mary was storing her mind with the precious words falling from the Saviour’s lips, words that were more precious to her than earth’s most costly jewels.

The “one thing” that Martha needed was a calm, devotional spirit, a deeper anxiety for knowledge concerning the future, immortal life, and the graces necessary for spiritual advancement. She needed less anxiety for the things which pass away, and more for those things which endure forever. Jesus would teach His children to seize every opportunity of gaining that knowledge which will make them wise unto salvation. The cause of Christ needs careful, energetic workers. There is a wide field for the Marthas, with their zeal in active religious work. But let them first sit with Mary at the feet of Jesus. Let diligence, promptness, and energy be sanctified by the grace of Christ; then the life will be an unconquerable power for good.

 

Sorrow entered the peaceful home where Jesus had rested. Lazarus was stricken with sudden illness, and his sisters sent to the Saviour, saying, “Lord, behold, he whom Thou lovest is sick.” They saw the violence of the disease that had seized their brother, but they knew that Christ had shown Himself able to heal all manner of diseases. They believed that He would sympathize with them in their distress; therefore they made no urgent demand for His immediate presence, but sent only the confiding message, “He whom Thou lovest is sick.” They thought that He would immediately respond to their message, and be with them as soon as He could reach Bethany.

Anxiously they waited for a word from Jesus. As long as the spark of life was yet alive in their brother, they prayed and watched for Jesus to come. But the messenger returned without Him. Yet he brought the message, “This sickness is not unto death,” and they clung to the hope that Lazarus would live. Tenderly they tried to speak words of hope and encouragement to the almost unconscious sufferer. When Lazarus died, they were bitterly disappointed; but they felt the sustaining grace of Christ, and this kept them from reflecting any blame on the Saviour.

 

When Christ heard the message, the disciples thought He received it coldly. He did not manifest the sorrow they expected Him to show. Looking up to them, He said, “This sickness is not unto death, but for the glory of God, that the Son of God might be glorified thereby.” For two days He remained in the place where He was. This delay was a mystery to the disciples. What a comfort His presence would be to the afflicted household! they thought. His strong affection for the family at Bethany was well known to the disciples, and they were surprised that He did not respond to the sad message, “He whom Thou lovest is sick.”

 

During the two days Christ seemed to have dismissed the message from His mind; for He did not speak of Lazarus. The disciples thought of John the Baptist, the forerunner of Jesus. They had wondered why Jesus, with the power to perform wonderful miracles, had permitted John to languish in prison, and to die a violent death. Possessing such power, why did not Christ save John’s life? This question had often been asked by the Pharisees, who presented it as an unanswerable argument against Christ’s claim to be the Son of God. The Saviour had warned His disciples of trials, losses, and persecution. Would He forsake them in trial? Some questioned if they had mistaken His mission. All were deeply troubled.

 

 

After waiting for two days, Jesus said to the disciples, “Let us go into Judea again.” The disciples questioned why, if Jesus were going to Judea, He had waited two days. But anxiety for Christ and for themselves was now uppermost in their minds. They could see nothing but danger in the course He was about to pursue. “Master,” they said, “the Jews of late sought to stone Thee; and goest Thou thither again? Jesus answered, Are there not twelve hours in the day?” I am under the guidance of My Father; as long as I do His will, My life is safe. My twelve hours of day are not yet ended. I have entered upon the last remnant of My day; but while any of this remains, I am safe.

 

If any man walk in the day,” He continued, “he stumbleth not, because he seeth the light of this world.” He who does the will of God, who walks in the path that God has marked out, cannot stumble and fall. The light of God’s guiding Spirit gives him a clear perception of his duty, and leads him aright till the close of his work. “But if a man walk in the night, he stumbleth, because there is no light in him.” He who walks in a path of his own choosing, where God has not called him, will stumble. For him day is turned into night, and wherever he may be, he is not secure.

These things said He: and after that He saith unto them, Our friend Lazarus sleepeth; but I go that I may awake him out of sleep.” “Our friend Lazarus sleepeth.” How touching the words! how full of sympathy! In the thought of the peril their Master was about to incur by going to Jerusalem, the disciples had almost forgotten the bereaved family at Bethany. But not so Christ. The disciples felt rebuked. They had been disappointed because Christ did not respond more promptly to the message. They had been tempted to think that He had not the tender love for Lazarus and his sisters that they had thought He had, or He would have hastened back with the messenger. But the words, “Our friend Lazarus sleepeth,” awakened right feelings in their minds. They were convinced that Christ had not forgotten His suffering friends.

Then said His disciples, Lord, if he sleep, he shall do well. Howbeit Jesus spake of his death: but they thought that He had spoken of taking of rest in sleep.” Christ represents death as a sleep to His believing children. Their life is hid with Christ in God, and until the last trump shall sound those who die will sleep in H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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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n said Jesus unto them plainly, Lazarus is dead. And I am glad for your sakes that I was not there, to the intent ye may believe; nevertheless let us go unto him.” Thomas could see nothing but death in store for his Master if he went to Judea; but he girded up his spirit, and said to the other disciples, “Let us also go, that we may die with Him.” He knew the hatred of the Jews toward Christ. It was their purpose to compass His death, but this purpose had not succeeded, because some of His allotted time still remained. During this time Jesus had the guardianship of heavenly angels; and even in the regions of Judea, where the rabbis were plotting how they might take Him and put Him to death, no harm could come to Him.

The disciples marveled at Christ’s words when He said, “Lazarus is dead. And I am glad . . . that I was not there.” Did the Saviour by His own choice avoid the home of His suffering friends? Apparently Mary and Martha and the dying Lazarus were left alone. But they were not alone. Christ beheld the whole scene, and after the death of Lazarus the bereaved sisters were upheld by His grace. Jesus witnessed the sorrow of their rent hearts, as their brother wrestled with his strong foe, death. He felt every pang of anguish, as He said to His disciples, “Lazarus is dead.” But Christ had not only the loved ones at Bethany to think of; He had the training of His disciples to consider. They were to be His representatives to the world, that the Father’s blessing might embrace all. For their sake He permitted Lazarus to die. Had He restored him from illness to health, the miracle that is the most positive evidence of His divine character, would not have been performed.

 

Had Christ been in the sickroom, Lazarus would not have died; for Satan would have had no power over him. Death could not have aimed his dart at Lazarus in the presence of the Life-giver. Therefore Christ remained away. He suffered the enemy to exercise his power, that He might drive him back, a conquered foe. He permitted Lazarus to pass under the dominion of death; and the suffering sisters saw their brother laid in the grave. Christ knew that as they looked on the dead face of their brother their faith in their Redeemer would be severely tried. But He knew that because of the struggle through which they were now passing their faith would shine forth with far greater power. He suffered every pang of sorrow that they endured. He loved them no less because He tarried; but He knew that for them, for Lazarus, for Himself, and for His disciples, a victory was to be gained.

For your sakes,” “to the intent ye may believe.” To all who are reaching out to feel the guiding hand of God, the moment of greatest discouragement is the time when divine help is nearest. They will look back with thankfulness upon the darkest part of their way. “The Lord knoweth how to deliver the godly,” 2 Peter 2:9. From every temptation and every trial He will bring them forth with firmer faith and a richer experience.

 

In delaying to come to Lazarus, Christ had a purpose of mercy toward those who had not received Him. He tarried, that by raising Lazarus from the dead He might give to His stubborn, unbelieving people another evidence that He was indeed “the resurrection, and the life.” He was loath to give up all hope of the people, the poor, wandering sheep of the house of Israel. His heart was breaking because of their impenitence. In His mercy He purposed to give them one more evidence that He was the Restorer, the One who alone could bring life and immortality to light. This was to be an evidence that the priests could not misinterpret. This was the reason of His delay in going to Bethany. This crowning miracle, the raising of Lazarus, was to set the seal of God on His work and on His claim to divinity.

On His journey to Bethany, Jesus, according to His custom, ministered to the sick and the needy. Upon reaching the town He sent a messenger to the sisters with the tidings of His arrival. Christ did not at once enter the house, but remained in a quiet place by the wayside. The great outward display observed by the Jews at the death of friends or relatives was not in harmony with the spirit of Christ. He heard the sound of wailing from the hired mourners, and He did not wish to meet the sisters in the scene of confusion. Among the mourning friends were relatives of the family, some of whom held high positions of responsibility in Jerusalem. Among these were some of Christ’s bitterest enemies. Christ knew their purposes, and therefore He did not at once make Himself known.

The message was given to Martha so quietly that others in the room did not hear. Absorbed in her grief, Mary did not hear the words. Rising at once, Martha went out to meet her Lord, but thinking that she had gone to the place where Lazarus was buried, Mary sat still in her sorrow, making no outcry.

Martha hastened to meet Jesus, her heart agitated by conflicting emotions. In His expressive face she read the same tenderness and love that had always been there. Her confidence in Him was unbroken, but she thought of her dearly loved brother, whom Jesus also had loved. With grief surging in her heart because Christ had not come before, yet with hope that even now He would do something to comfort them, she said, “Lord, if Thou hadst been here, my brother had not died.” Over and over again, amid the tumult made by the mourners, the sisters had repeated these words.

 

With human and divine pity Jesus looked into her sorrowful, careworn face. Martha had no inclination to recount the past; all was expressed by the pathetic words, “Lord, if Thou hadst been here, my brother had not died.” But looking into that face of love, she added, “I know, that even now, whatsoever Thou wilt ask of God, God will give it Thee.”

 

 

Jesus encouraged her faith, saying, “Thy brother shall rise again.” His answer was not intended to inspire hope of an immediate change. He carried Martha’s thoughts beyond the present restoration of her brother, and fixed them upon the resurrection of the just. This He did that she might see in the resurrection of Lazarus a pledge of the resurrection of all the righteous dead, and an assurance that it would be accomplished by the Saviour’s power.

Martha answered, “I know that he shall rise again in the resurrection at the last day.”

Still seeking to give a true direction to her faith, Jesus declared, “I am the resurrection, and the life.” In Christ is life, original, unborrowed, underived. “He that hath the Son hath life.” 1 John 5:12. The divinity of Christ is the believer’s assurance of eternal life. “He that believeth in Me,” said Jesus, “though he were dead, yet shall he live: and whosoever liveth and believeth in Me shall never die. Believest thou this?” Christ here looks forward to the time of His second coming. Then the righteous dead shall be raised incorruptible, and the living righteous shall be translated to heaven without seeing death. The miracle which Christ was about to perform, in raising Lazarus from the dead, would represent the resurrection of all the righteous dead. By His word and His works He declared Himself the Author of the resurrection. He who Himself was soon to die upon the cross stood with the keys of death, a conqueror of the grave, and asserted His right and power to give eternal life.

To the Saviour’s words, “Believest thou?” Martha responded, “Yea, Lord: I believe that Thou art the Christ, the Son of God, which should come into the world.” She did not comprehend in all their significance the words spoken by Christ, but she confessed her faith in His divinity, and her confidence that He was able to perform whatever it pleased Him to do.

And when she had so said, she went her way, and called Mary her sister secretly, saying, The Master is come, and calleth for thee.” She delivered her message as quietly as possible; for the priests and rulers were prepared to arrest Jesus when opportunity offered. The cries of the mourners prevented her words from being heard.

On hearing the message, Mary rose hastily, and with an eager look on her face left the room. Thinking that she had gone to the grave to weep, the mourners followed her. When she reached the place where Jesus was waiting, she knelt at His feet, and said with quivering lips, “Lord, if Thou hadst been here, my brother had not died.” The cries of the mourners were painful to her; for she longed for a few quiet words alone with Jesus. But she knew of the envy and jealousy cherished in the hearts of some present against Christ, and she was restrained from fully expressing her gri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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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n Jesus therefore saw her weeping, and the Jews also weeping which came with her, He groaned in the spirit, and was troubled.” He read the hearts of all assembled. He saw that with many, what passed as a demonstration of grief was only pretense. He knew that some in the company, now manifesting hypocritical sorrow, would erelong be planning the death, not only of the mighty miracle worker, but of the one to be raised from the dead. Christ could have stripped from them their robe of pretended sorrow. But He restrained His righteous indignation. The words He could in all truth have spoken, He did not speak, because of the loved one kneeling at His feet in sorrow, who truly believed in Him.

Where have ye laid him?” He asked, “They said unto Him, Lord, come and see.” Together they proceeded to the grave. It was a mournful scene. Lazarus had been much beloved, and his sisters wept for him with breaking hearts, while those who had been his friends mingled their tears with those of the bereaved sisters. In view of this human distress, and of the fact that the afflicted friends could mourn over the dead while the Saviour of the world stood by,?“Jesus wept.” Though He was the Son of God, yet He had taken human nature upon Him, and He was moved by human sorrow. His tender, pitying heart is ever awakened to sympathy by suffering. He weeps with those that weep, and rejoices with those that rejoice.

But it was not only because of His human sympathy with Mary and Martha that Jesus wept. In His tears there was a sorrow as high above human sorrow as the heavens are higher than the earth. Christ did not weep for Lazarus; for He was about to call him from the grave. He wept because many of those now mourning for Lazarus would soon plan the death of Him who was the resurrection and the life. But how unable were the unbelieving Jews rightly to interpret His tears! Some, who could see nothing more than the outward circumstances of the scene before Him as a cause for His grief, said softly, “Behold how He loved him!” Others, seeking to drop the seed of unbelief into the hearts of those present, said derisively, “Could not this Man, which opened the eyes of the blind, have caused that even this man should not have died?” If it were in Christ’s power to save Lazarus, why then did He suffer him to die?

 

 

With prophetic eye Christ saw the enmity of the Pharisees and the Sadducees. He knew that they were premeditating His death. He knew that some of those now apparently so sympathetic would soon close against themselves the door of hope and the gates of the city of God. A scene was about to take place, in His humiliation and crucifixion, that would result in the destruction of Jerusalem, and at that time none would make lamentation for the dead. The retribution that was coming upon Jerusalem was plainly portrayed before Him. He saw Jerusalem compassed by the Roman legions. He knew that many now weeping for Lazarus would die in the siege of the city, and in their death there would be no hope.

It was not only because of the scene before Him that Christ wept. The weight of the grief of ages was upon Him. He saw the terrible effects of the transgression of God’s law. He saw that in the history of the world, beginning with the death of Abel, the conflict between good and evil had been unceasing. Looking down the years to come, He saw the suffering and sorrow, tears and death, that were to be the lot of men. His heart was pierced with the pain of the human family of all ages and in all lands. The woes of the sinful race were heavy upon His soul, and the fountain of His tears was broken up as He longed to relieve all their distress.

 

Jesus therefore again groaning in Himself cometh to the grave.” Lazarus had been laid in a cave in a rock, and a massive stone had been placed before the entrance. “Take ye away the stone,” Christ said. Thinking that He only wished to look upon the dead, Martha objected, saying that the body had been buried four days, and corruption had already begun its work. This statement, made before the raising of Lazarus, left no room for Christ’s enemies to say that a deception had been practiced. In the past the Pharisees had circulated false statements regarding the most wonderful manifestations of the power of God. When Christ raised to life the daughter of Jairus, He had said, “The damsel is not dead, but sleepeth.” Mark 5:39. As she had been sick only a short time, and was raised immediately after death, the Pharisees declared that the child had not been dead; that Christ Himself had said she was only asleep. They had tried to make it appear that Christ could not cure disease, that there was foul play about His miracles. But in this case, none could deny that Lazarus was dead.

When the Lord is about to do a work, Satan moves upon someone to object. “Take ye away the stone,” Christ said. As far as possible, prepare the way for My work. But Martha’s positive and ambitious nature asserted itself. She was unwilling that the decomposing body should be brought to view. The human heart is slow to understand Christ’s words, and Martha’s faith had not grasped the true meaning of His promise.

Christ reproved Martha, but His words were spoken with the utmost gentleness. “Said I not unto thee, that, if thou wouldest believe, thou shouldest see the glory of God?” Why should you doubt in regard to My power? Why reason in opposition to My requirements? You have My word. If you will believe, you shall see the glory of God. Natural impossibilities cannot prevent the work of the Omnipotent One. Skepticism and unbelief are not humility. Implicit belief in Christ’s word is true humility, true self-surrender.

Take ye away the stone.” Christ could have commanded the stone to remove, and it would have obeyed His voice. He could have bidden the angels who were close by His side to do this. At His bidding, invisible hands would have removed the stone. But it was to be taken away by human hands. Thus Christ would show that humanity is to co-operate with divinity. What human power can do divine power is not summoned to do. God does not dispense with man’s aid. He strengthens him, co-operating with him as he uses the powers and capabilities given him.

 

The command is obeyed. The stone is rolled away. Everything is done openly and deliberately. All are given a chance to see that no deception is practiced. There lies the body of Lazarus in its rocky grave, cold and silent in death. The cries of the mourners are hushed. Surprised and expectant, the company stand around the sepulcher, waiting to see what is to follow.

Calmly Christ stands before the tomb. A sacred solemnity rests upon all present. Christ steps closer to the sepulcher. Lifting His eyes to heaven, He says, “Father, I thank Thee that Thou hast heard Me.” Not long before this, Christ’s enemies had accused Him of blasphemy, and had taken up stones to cast at Him because He claimed to be the Son of God. They accused Him of performing miracles by the power of Satan. But here Christ claims God as His Father, and with perfect confidence declares that He is the Son of God.

 

In all that He did, Christ was co-operating with His Father. Ever He had been careful to make it evident that He did not work independently; it was by faith and prayer that He wrought His miracles. Christ desired all to know His relationship with His Father. “Father,” He said, “I thank Thee that Thou hast heard Me. And I knew that Thou hearest Me always: but because of the people which stand by I said it, that they may believe that Thou hast sent Me.” Here the disciples and the people were to be given the most convincing evidence in regard to the relationship existing between Christ and God. They were to be shown that Christ’s claim was not a dece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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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when He thus had spoken, He cried with a loud voice, Lazarus, come forth.” His voice, clear and penetrating, pierces the ear of the dead. As He speaks, divinity flashes through humanity. In His face, which is lighted up by the glory of God, the people see the assurance of His power. Every eye is fastened on the entrance to the cave. Every ear is bent to catch the slightest sound. With intense and painful interest all wait for the test of Christ’s divinity, the evidence that is to substantiate His claim to be the Son of God, or to extinguish the hope forever.

There is a stir in the silent tomb, and he who was dead stands at the door of the sepulcher. His movements are impeded by the graveclothes in which he was laid away, and Christ says to the astonished spectators, “Loose him, and let him go.” Again they are shown that the human worker is to co-operate with God. Humanity is to work for humanity. Lazarus is set free, and stands before the company, not as one emaciated from disease, and with feeble, tottering limbs, but as a man in the prime of life, and in the vigor of a noble manhood. His eyes beam with intelligence and with love for his Saviour. He casts himself in adoration at the feet of Jesus.

The beholders are at first speechless with amazement. Then there follows an inexpressible scene of rejoicing and thanksgiving. The sisters receive their brother back to life as the gift of God, and with joyful tears they brokenly express their thanks to the Saviour. But while brother, sisters, and friends are rejoicing in this reunion, Jesus withdraws from the scene. When they look for the Life-giver, He is not to be found.